▶이주연, ‘Mindscape-11’, 장지 위에 아크릴 채색, 146×206cm, 2022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선은 모두 곡선이다. 그 속에서 직선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수평선이나 지평선은 직선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대답은 분명하다. 그것 역시 직선이 아니다.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수평선이나 지평선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멀리서 볼 때만 인식된다. ‘허구의 풍경’이다.
반면 직선은 철저히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선이다. 두 점 사이를 잇는 가장 짧은 선, 조금이라도 휘어지거나 굽어지면 직선이 아니다. 이때 ‘거리’와 ‘속력’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된다. 직선은 인간이 고안해낸 가장 ‘짧고’ 가장 ‘빠른’ 장치다. 좋은 예가 기찻길, 즉 철도다. 기차는 서구 근대의 서막을 연 교통수단이다. 철로는 직선을 추구한다. 곡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산을 만나면 에둘러 돌아가지 않는다. 터널을 뚫어 산맥을 관통한다. 강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건너간다. 이처럼 기찻길은 곡선으로 이루어진 자연 지형을 직선으로 바꿔버렸다. 이때부터 자연처럼 구불구불했던 지도 위에 직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근대적 시·공간의 개념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서구의 근대화 과정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간중심주의 프로젝트였다.
같은 맥락에서 20세기 서구 모더니즘 미술은 추상을 지향하는 역사다. 자연에 대한 1차원적인 모방, 현실에 대한 객관적 묘사를 거부하는 도전이다. 대상의 닮음을 재현하는 것을 초월한다. 비가시적 영역, 즉 마음의 눈으로 포착한 심상을 추상 이미지로 재구현하는 프로젝트다.

▶이주연, ‘Mindscape-18’, 장지 위에 아크릴 채색, 122×86cm, 2022
장식성을 겸비한 건축적 회화
직선이 많아서 인공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건축적이고 도시적인 느낌이다. 이주연 작품에서 받는 첫인상이다. 덧붙이자면 칸딘스키 같은 ‘뜨거운 추상’ 또는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 즉 그래픽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에 가깝다. 프레임을 가로지르는 직선의 움직임은 과감하다. 직선으로 분할된 화면은 해체되며 사각 캔버스라는 정형성에서도 크게 벗어난다.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이렇게 밝혔다.
“일상적 풍경과 소소한 하루가 스며든 물리적 시간을 기하추상 구조의 작업 공간 속에서 어떤 식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지를 탐문한다.”
이런 문장을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추상회화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직선으로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어쩌면 애초부터 자연과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일에 관심이 없을는지도 모른다. 이어서 그는 “…다양한 재료적 특성이 적극적으로 부각되도록 기존 화면의 틀을 더욱 구조화하고 확장시켰다. 그리고 근원적인 직선의 조형적 구조와 무채색적인 정제된 컬러가 이어지는 공간에 도시적이고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다층적 시각요소를 혼합하여 공간의 단면을 풍부하게 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도 자연에 대한 단순한 묘사가 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도시공간에서 체험한 미의식을 순수추상 조형 작업으로 구현하겠다는 의도를 유추할 수 있다.

▶이주연, ‘Mindscape33-34’, 장지 위에 아크릴 채색, 130×380cm, 2022
작품의 근원에 자리한 대도시의 풍경
이화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이주연은 1993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앞둔 시기에 고국을 떠나 미국 시카고로 갔다. 10여 년 동안 그곳에서 지냈던 경험이 이후 작업 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작품의 특성을 직선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 근원에 대도시의 풍경이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여느 대도시가 그렇듯 시카고 중심지는 수직으로 곧추선 고층 빌딩이 빼곡하다. 도시의 하늘지붕선(스카이라인)은 특유의 상승감과 기하학적 실루엣으로 드러난다. 수없이 많은 직선이 교차하며 복잡한 기하학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도시는 부분과 전체의 구분이 모호하며 수직선과 수평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공간이다. 이런 감각이 그림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결론적으로 이주연의 추상회화는 도시의 감각을 표현한 ‘심상의 풍경(Mind-scape)’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조각보나 한옥 문창살 같은 우리 전통문화의 이미지를 패턴화한 구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 역시 작품 속에 한국적 정서가 일부분 은유적으로 담겨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작품을 한국적이라고만 규정짓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통은 한국성을 합리적으로 풀어낼 최소한의 근거가 될 순 있다. 하지만 한국성이란 주제만을 고집한다면 전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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