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터너, ‘비, 증기, 속도’, 캔버스에 유화, 91×121.8cm, 1844,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피카소(1881~1973)는 20세기 현대미술의 지배자였다. 피카소의 그늘에 가려진 화가가 어디 한둘이랴. 넘볼 수 없는 일인자의 위엄에 치인 화가 중 영국계 아일랜드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을 빼놓을 수 없다. 베이컨은 피카소만 아니었다면 아마 20세기를 빛낸 가장 위대한 화가로 칭송받았을 만큼 걸출한 예술성의 소유자였다.
베이컨보다 한 세기 훨씬 전에도 독특한 풍경화로 화단을 주름잡은 영국 화가가 있었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1775~1851)다. 1984년에 제정된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이 바로 윌리엄 터너를 기리는 상이다. 터너상 수상은 곧 화가로서 입신양명을 보장받는 보증수표일 정도로 국제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터너는 한 살 아래인 존 컨스터블(1776~1837)과 함께 19세기 영국 풍경화의 양대 산맥이었다. 영국식 전원 풍경의 대명사로 명성을 떨친 컨스터블과 달리 터너는 거친 바다 풍경 그림으로 유명하다. 빛과 색채, 대기의 변화에 주목한 표현주의식 그림에 정통한 터너는 이 때문에 인상주의의 시조로 불린다. 특히 산업혁명을 촉발한 기폭제인 증기기관차가 질주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비, 증기, 속도’(1844)는 인상주의의 창시자 모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75년 이발사인 아버지를 둔 평범한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터너는 14세 때 왕립아카데미 부설 미술 교육기관에 입학해 1년 뒤 전시회를 열 정도로 어린 나이에 혼자만의 힘으로 화가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24세 때 당시 최연소로 왕립아카데미 준회원에 발탁된 데 이어 27세 때 정회원으로 승격되며 미술계의 주류로 급부상했다.
사회의식과 독창적 감각 어우러져
어린 시절 런던 템스강을 수시로 오가며 날씨와 자연을 관찰하기 좋아했던 터너는 풍경화를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답사 여행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성격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나 홀로 스케치 여행에도 제약이 없었다. 유품으로 남긴 2만 점에 가까운 드로잉이 이를 입증한다. 특이한 것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목가적인 풍경은 터너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점이다.
터너는 런던 특유의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기후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사나운 바다 풍경에 흠뻑 빠졌다. 대기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자 늘 현장의 한복판에 있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돛단배에 올라타 밧줄로 몸을 묶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대자연의 외경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약한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뼛속 깊이 체감했는가 하면 노예무역의 부조리를 고발한 역작 ‘노예선’(1840)을 통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터너 이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흐리고 안개 끼고 비가 오는 런던 날씨를 터너만큼 날카롭게 잘 포착해 예술적으로 화폭에 이식한 화가는 일찍이 없었다는 뜻이다.
증기기관차는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산업혁명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터너는 시대상과 사회문제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 화가였다. 만년에 그린 ‘비, 증기, 속도’는 터너의 사회의식과 풍경 화가로서 독창적인 감각이 어우러져 탄생한 걸작이다.
그림 속 형체들은 불분명하거나 흐릿하다. 눈여겨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그냥 뿌연 안개만 보일 뿐이다. 그림 속에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형체가 없이 사방으로 흩어진 구름과 그 사이로 살짝살짝 고개를 내민 푸른 하늘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줄기 소리가 들리는 듯한 왼쪽 돌다리 아래 강물이 빛의 반사로 노랗게 반짝인다.
화면 오른쪽, 뭔가 모를 시커먼 형체가 눈길을 사로잡는데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메이든헤드 철교 위를 달려오는 증기기관차다. 신기한 것은 그리다 만 듯이 거칠고 투박하게 붓 터치를 한 것 같은데 붉은색으로 작열하는 보일러실의 석탄 더미와 굴뚝, 수십 개의 바퀴, 지붕 없는 객차에 빼꼭히 몸을 실은 승객들 모습에서 증기기관차임이 확인된다.
더욱 신기한 점은 거친 비바람과 증기기관차에서 뿜어내는 수증기와 짙은 안개가 한 덩어리가 돼 시야를 심하게 방해하는 심술궂은 날씨 때문에 굉음을 울리며 우리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는 증기기관차의 속도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운무가 자욱한 폭우 속 런던 날씨의 전형과 증기기관차의 운동감, 두 가지를 구체적인 묘사 없이 찰나의 움직임과 빛과 색채만으로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터너는 풍경화의 새 시대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화풍 앞장서 창안한 선구자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터너 이전에 그 누구도 전형적인 런던 날씨를 이렇게 실감 나게 그린 사람이 없으며 산업혁명의 산물인 영국 대서부 철도(The Great Western Railway) 증기기관차의 특성을 오롯이 화폭에 담은 화가도 없었다. 특히 모네가 그린 최초의 인상파 그림이라는 ‘인상, 해돋이’(1872)보다도 거의 30년 앞서 이 작품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터너는 분명 새로운 화풍을 앞장서 창안한 선구자였음이 틀림없다.
현장 답사의 신봉자답게 터너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직접 달리는 증기기관차에 몸을 싣고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비바람과 안개, 구름이 뒤섞인 열차 밖 풍경을 뚫어지게 관찰했다. 영국 대서부 철도는 1833년에 설립돼 1838년 역사적인 첫 열차 개통식을 연 철도 회사다. 메이든헤드 철교도 1838년 축조됐다.
그림 속의 기차는 형체가 뭉개진 듯 흐릿하다. 그리다 만 미완성 그림처럼 보인다. 터너가 묘사하려 한 것이 기차가 아니라 기차의 속도였기 때문이다. 터너 그림에 등장하는 기차의 속도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달린다는 표현이 민망한 시속 20~30km 수준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하게 빠른 획기적인 교통수단이었다.
죽기 전 모든 소장품을 나라에 기증한 터너는 1851년 7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