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에서 바라본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상고대가 피어 있다.
뭍에서 멀리 떨어진 외로운 섬 제주도는 원래 최적의 유배지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쓴 지리책 <택리지>에는 “조정에 벼슬하던 사람이 여기로 귀양을 많이 왔다”는 대목이 나온다. 대표적 유배객은 조선 후기 대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다. 김정희는 1840년부터 9년간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는데 이때 추사체를 완성했다. 또 ‘세한도’(국보 제180호)라는 역작을 남겼다. 서귀포에는 그의 삶과 학문, 예술 세계를 기리는 추사관이 있다.
한때 대역죄인의 유배지였던 제주도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관광지로 변모한 것은 세월의 아이러니다. 국제항공운송협회에 따르면 한 해 동안 무려 약 1022만 명이 제주를 드나들었다. 공식 통계를 집계한 1962년 제주도 방문자가 약 1만 4000명이었으니 60년이 흐르는 동안 1000배 가까이 이용객이 늘어난 셈이다.
유네스코 타이틀 총 5개 보유
사실 제주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문화유산이다. 세계문화유산 올림픽이 있다면 제주도는 ‘유네스코 5관왕’이란 수식어가 달렸을 것이다. 제주도는 인류무형문화유산 2건(해녀 문화, 칠머리당영등굿), 자연과학 분야 3건(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전지역) 등 유네스코 타이틀을 총 5개 보유하고 있다. 특히 세계자연유산으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정된 곳이다.
제주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명칭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다.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와 성산일출봉 응회구, 한라산이다. 지형적으로 보면 이 세 공간은 인접해 이어지는 연속 유산이다.
우선 거문오름이 있는 제주 북동쪽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1만 년 전 이곳에서는 작은 화산이 여러 차례 폭발했다. 분화구에서 나온 용암이 지표면을 따라 흘러내려 북동쪽 조천읍 해안선에 이르러서야 차가운 바닷물을 만나 굳어졌다. 그렇게 구불구불 용암이 지나간 자리는 동굴로 흔적이 남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에 숲이 우거져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됐는데 이곳이 바로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다.
현재 370여 개의 오름이 확인되는 제주도에서도 거문오름은 독특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길이 7.4㎞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굴인 만장굴, 큰 구렁이가 살았다고 해서 김녕사굴로도 불리는 김녕굴, 벵뒤굴 등 8개의 동굴을 거문오름이 품고 있는 모양새다. 이 동굴계는 용암이 지나간 자리라고 해서 ‘불의 숨길’로도 불린다. 만장굴 일부 구간 외에는 평소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돼 원시 자연 그대로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건물들 뒤로 성산일출봉이 자리 잡고 있다.│ 한겨레
제주의 지붕과 같은 존재 ‘한라산’
성산일출봉 응회구는 바다에서 솟아올라 극적인 장관을 연출하는 요새 모양을 하고 있다. 제주도 관광의 필수 코스인 성산일출봉이란 지명은 분화구를 바위봉우리 99개가 둘러싼 모습이 성과 같아서 ‘성산’으로 불렀는데 이곳에서 바라본 해 뜨는 경관이 빼어나다는 뜻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응회는 화산재가 엉겨 뭉쳐진 덩어리이고 구는 구멍이다. 그래서 응회구는 ‘화산재 덩어리의 구덩이’를 의미한다. 성산일출봉은 약 5000년 전 수심이 깊지 않은 바다에서 화산이 폭발할 때 생긴 크고 작은 파편이 물기를 머금은 상태에서 겹겹이 쌓여 이뤄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라산은 화산섬인 제주도의 지붕과 같은 존재다. 제주도는 ‘한라산이 빚어낸 작품’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계절 색과 풍경이 달라지는 한라산은 수려한 폭포와 다양한 형상의 암석, 주상절리 절벽, 분화구에 호수를 안고 우뚝 솟은 정상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비경을 자랑한다. 한라산 하나만 보더라도 인류가 보호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뛰어난 세계자연유산 리스트에 제주도가 2007년에야 오른 것은 한참 뒤늦은 감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제주도는 ‘삼다(三多)·삼무(三無)의 섬’으로 불린다. 돌과 바람, 여자가 많지만 도둑과 대문, 거지가 없다고 해서 붙은 별칭이다. 그 옛날 도민의 근심을 샀던 유배객은 없고 세계자연유산을 보러 오는 관광객은 많아졌기에 이제는 ‘사다(四多)·사무(四無)의 섬’으로 바꿔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제주도를 다시 방문한다면 한라산에서 내려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거쳐 성산일출봉으로 이어지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코스’로 발걸음을 옮겨 보면 어떨까?
김정필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