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식 지역균형발전 분과장이 11월 16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 3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발표하고 있다. | 연합
연초에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고, 최근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1위에 오른 것은 백범 김구가 한없이 가지고 싶어 하던 높은 문화의 힘을 우리나라가 갖춰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0 세계언론자유지수’가 꾸준히 향상해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거나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가 계속 올라 2019년 13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은 나라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여러 지표 중 극히 일부다.
무엇보다 178개국을 대상으로 산출한 민주주의 순위에서 12위를 차지했으나 소득과 인구가 어느 정도 규모에 이른 ‘30-50클럽’ 중에서 1위라는 점은 촛불혁명으로 이룬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볼 수 있다.
코로나19 세계적 유행 상황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고도 감염병 확산을 막은 우리나라에 세계가 찬사를 보냈다. 이러한 성공적 K-방역의 요인으로 민주적인 시민성과 수평적 개인주의가 꼽혔다. 이는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힘으로 성공적인 방역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같은 조사에서 국가의 총체적 역량이나 일반 시민들의 역량이 선진국보다 우수하다는 데 훨씬 많은 응답이 나온 것은 매우 고무적이기까지 하다.
국격 뒤편에 숨은 중앙과 지방의 불평등
이와 같이 떠오르고 있는 국격의 뒤편에는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 중앙과 지방의 불평등한 관계가 숨어 있다. 6·25전쟁 이후 압축적 고속 성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극심한 불균형이 왜 문제가 되는가?
코로나19 위기 이전에도 저출생, 고령화, 양극화를 국내 위기의 주요 현상으로 꼽고 있었다. 분명 건강한 장수는 온 인류의 희망 사항이지만 고령화는 후손들에게 무거운 부양의 짐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명확한 사실은 저출생이 바로 고령화를 가속하는 요인의 하나라는 점이다. 그런데 지방의 젊은이들은 교육과 취업을 이유로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한다.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 수도권에서는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 등으로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되어 서울의 경우 합계 출산율이 0.72에 그칠 정도로 극심한 저출생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저출생의 근본 원인은 바로 교육과 취업 기회에서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를 초래한 불균형 발전인 것이다. 양극화, 수도권 인구 비중 50% 돌파, 수도권 집값 광풍 등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바로 불균형 발전에 기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7월 14일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뉴딜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에 비견될 만큼 작금의 위기로 고통받는 국민을 긴급히 구호(Relief)하고, 산업과 경제의 기반을 회복(Recovery)해 사회시스템 전반을 개혁(Reform)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 등 3대 분야 28개 과제에 2025년까지 160조 원(국비 114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190만 개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이 발표 내용만 보아서는 중앙부처 중심으로 추진체계가 구성되어 지역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수도권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이러한 의문에 답하듯 7월 21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은 수도권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국가발전의 축을 이동시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단기적으로는 지역경제 회복의 발판이 되며, 중장기적으론 국가균형발전을 한 차원 높여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판 뉴딜이 계속 진화해갈 중심에 지역이 있고, 정부는 지역주도형 뉴딜을 추진하고자 하며, 지자체가 한국판 뉴딜을 지역에서 구현하고, 창의적인 지역 뉴딜을 만들어내는 주역”이라며 “중앙과 지방 간 강력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10월 13일에 개최한 2차 한국판 뉴딜 회의에서는 이러한 의지를 구체화해 기존 한국판 뉴딜을 지역 기반으로 확장한 지역균형 뉴딜을 발표했다. 이런 발표가 구체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한국판 뉴딜 관계장관회의 산하에 행정안전부 주관의 지역뉴딜 분과를 신설했으며, 정부와 자치단체는 지역균형 뉴딜의 취지와 목적에 적극 공감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전략을 함께 논의했다.
지역균형 뉴딜은 한국판 뉴딜과 지역경제·균형발전 정책의 연계, 지역 특성에 맞는 양질의 창의적인 사업 발굴 및 추진을 중점 방향으로 하여 지역경제 혁신, 지역주민 삶의 질 개선, 국가균형발전을 정책목표로 설정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이 구호, 회복, 개혁의 과정을 거쳐 번영의 초석을 놓았듯 한국판 뉴딜이 지속적인 번영의 물꼬를 트려면 위기의 근본 원인인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 중앙과 지방의 불평등한 관계를 시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안전망 강화와 지역균형 뉴딜을 묶어보면 어느 누구, 어느 지역도 소외되지 않는 포용국가로 이행하는 ‘소셜 뉴딜’로 개념 지을 수 있다. 소셜 뉴딜은 수도권과 지역, 중앙과 지방의 균형 있는 관계 회복을 거쳐 사회적 통합을 지향한다.
수도권과 지역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어려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지역 주민들이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수도권 중심의 사고를 지역 중심으로 바꾸는 변화는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다. 위기는 곧 기회가 아니라, 위기의 근원을 정확히 인식하는 역량이 받쳐줘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지역이 주도하는 자립적 성장 기반 마련
<주역> 계사전에 ‘역,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易, 窮卽變, 變卽通, 通卽久)’라고 한 것은 궁해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 자아 인식이 자존감 회복의 시작이듯, 지역 주민이 지역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해야 상대적 열등감을 극복하고 균형 있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지역이 지역다워야 지역 고유의 자원을 발굴할 수 있다. 지역에 자원이 없는 게 아니라 자원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자원을 발굴하고 조직을 갖춰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여기서 지역 특성에 맞는 양질의 창의적인 사업 발굴 및 추진의 방향이 나온다. 지역의 자원을 가장 잘 아는 주민 주도로 발굴하되 사회 혁신적 접근 방식을 채택해 지역 주민 스스로 지역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도록 하고, 발굴한 사업은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조직하고 운영해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주민 주도의 접근 방식에 더해 중앙부처가 주도해 하향식, 획일적으로 집행할 때 생기는 중복과 비효율을 줄이려면 지역발전투자협약 방식으로 추진해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좀 더 수평적으로 바꿔갈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극복의 요인으로 꼽히는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시민’을 길러내 지역이 주도하는 자립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면서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더욱 수평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이기원 한림대학교 데이터과학융합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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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