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 ‘해파랑길 21코스’
만산홍엽(萬山紅葉), 온 대지가 알록달록하다. 이른 아침에 내려앉는 몽환적인 안개는 또 어떠한가? 일교차가 큰 이 무렵에 만날 수 있는 자연의 조화다.
한마디로 운치 있는 시절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시기도 1~2주 후면 훌쩍 지나게 된다. 이후 계절은 빠르게 겨울로 접어들 것이다.
이무렵 동해안은 또 다른 분위기를 담아낸다. 차가워진 바다는 더욱 또렷해지며 강렬한 색상을 담아낸다. 물 빛깔도, 하늘도, 일출도 더 짙게 채색된다.
그래서 여행 마니아들은 초겨울 동해안을 즐겨 찾는다. 그중 해파랑길 21코스가 지나는 경북 영덕은 바다와 나란히 굽이치는 명품 걷기길이 펼쳐져 일상탈출의 묘미에 푹 빠져 들 수가 있다. 절경을 따라 이어지는 해안 길은 자리만 펴면 둘도 없을 멍때리기 명소가 되고 포구에는 동해안 겨울별미 삼총사 대게, 도루묵, 곰치가 대기 중이다.
해파랑길 21코스 영덕 해맞이공원에서 축산항까지 12.2km, 쉬엄쉬엄 5시간이면 동해안의 비경 속에 일상탈출을 만끽할 수 있다.
바다와 나란히 굽이치는 호젓한 걷기길
영덕 해맞이공원~오보해변
경북 영덕에 위치한 블루로드 가운데 바다와의 동행 구간이 가장 긴 길이 있다. 블루로드 제B코스가 그곳이다. 코리아둘레길로 치자면 해파랑길 21코스(12.2㎞) 영덕 해맞이공원~오보해변~경정해변~축산항에 이르는 루트다. 길은 영덕 해맞이공원에서 바닷가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작은 산을 하나 넘으면 시작되는데 그야말로 하늘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호젓한 길이 이어진다.
해파랑길 21코스의 시작점 격인 영덕 해맞이공원은 말 그대로 장쾌하게 떠오르는 동해의 일출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공원의 상징인 창포말등대는 대게 집게다리가 마치 해를 드는 듯 한 독특한 형상을 갖추고 있다. 대게의 고장 영덕과 일출의 명소 동해안을 함께 아우르는 조형물이다. 해돋이 감상 포인트는 공원 위쪽으로 난 계단으로 올라서면 나선다.
공원 위로는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돼 있다. 동해안의 대표적인 바람독이라는 환경을 활용했다. 거대한 날개가 ‘휙휙’ 거리며 돌아가는 위압적인 모습이 장관이다. 이곳에는 캠핑장, 비행기전시장, 신재생에너지전시관 등도 함께 갖추고 있다.
해맞이공원 아래로 해파랑길의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길은 오보해수욕장을 향한다. 멀리 대탄항 방파제가 눈에 들어오고 오보교를 건넌다. 다리와 오보방파제 사이에 오보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후 노물방파제가 나서고 방파제와 파랑-주황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담한 노물리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장쾌한 파도소리와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감상하며 해변 길을 걷게 되는데 노물항포구는 돌미역이 유명한 곳이다.
길은 경정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해변은 고운 모래와 잔잔한 파도가 일품인 작은 백사장을 품고 있다. 이 같은 호젓한 해변 풍광은 방탄소년단(BTS) 뮤직비디오 촬영장소로도 활용 됐다. 빨간 등대가 서있는 방파제가 뮤비촬영 장소였다.
아쿠아빛 청량한 동해 바다 풍광이 한눈에
경정해변~축산항
차유(車踰)마을로도 불리는 경정리 동네어귀에는 ‘대게 원조마을’ 비석이 세워져 있다. 고려 29대 충목왕 때 정방필이 영해부사로 부임해 대게의 산지인 이곳을 순시했는데 영해부사 일행이 수레를 타고 고개를 넘어 왔다고 해서 수레 ‘차(車)’, 넘을 ‘유(踰)’를 써서 ‘차유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대게 원조마을’ 비석에는 90년대 말 영덕과 울진 사이 대게원조 논쟁의 사연도 담고 있다. 울진은 대게 조업량이 가장 많고, 영덕은 최고의 대게 집산지이다 보니 서로 원조 논쟁을 벌일 법도 했다.
마을을 빠져 나오며 멋진 해안 풍광이 길 따라 이어진다. 본래 이곳은 해안 경비 철조망이 둘러쳐진 곳을 걷기길로 개방한 경우다. 그리하여 해안 갯바위를 끼고 이어지는 오솔길도 열렸고 해솔숲과 바다를 함께 감상하며 걷는 명품길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오솔길을 지나 바다로 향하는 나무데크와 기암괴석 갯바위길을 지나면 길 따란 백사장과 함께 푸른 동해가 눈앞에 펼쳐진다. 모래사장의 끝자락에는 죽산천 하구를 건너 죽도산 쪽으로 건너가는 현수교 ‘블루로드’가 세워져 있다. 블루로드교 주변 백사장은 ‘신 정동진’이라는 이름이 따를 만큼 유명세를 타는 곳이다.
블루로드 다리를 건너면 죽도산이다. 죽도(竹島)산은 축산항 뒤에 병풍처럼 서있는 작은 산(해발 78m)이다. 지금은 내륙과 연결됐지만 한때는 대나무가 우거진 섬이었다. 정상 죽도산 전망대에서면 축산항의 전경과 블루로드가 지나온 영덕의 해안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죽도산의 비경은 바다를 끼고 이어진 데크길에서 볼 수 있다. 아쿠아빛 물빛깔이 청량한 동해의 바다 풍광을 담아낸다.
죽도산을 벗어나면 해파랑길 21코스의 종점, 축산항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항구는 당시 여객선이 부산, 원산, 울릉도를 오갔을 만큼 성시를 이뤘다.
초겨울 영덕 최고의 별미 ‘대게’
초겨울(11월 중순)부터 동해안은 장쾌한 일출 감상에 맛있는 식도락 기행까지 겸할 수 있어 인기 여행 코스로 통한다. 그중 경북 영덕은 해돋이의 벅찬 감동에 겨울별미, 대게까지 맛볼 수 있어 금상첨화다.
동해안의 초겨울~봄철 별미로는 단연 대게를 꼽을 수 있다. 대게는 통상 12월부터 5월까지 조업이 이뤄지는데, 그 이전에도 영덕 강구, 축산항 등에서는 대게와 홍게, 청게 등 동해의 게맛을 볼 수 있다.
대게는 짭짤 고소한 특유의 풍미에 지방질도 적어 그 맛이 담백 쫄깃하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게를 쪄 살을 발라 먹고 등딱지에 밥을 비며 먹는 맛이 일품이다.
영덕 강구항 대게거리에는 영덕대게 전문점 수십 곳이 몰려 있다. 이들 식당에서는 속살이 꽉 찬 싱싱한 대게 찜과 전골 등 다양한 대게요리를 맛볼 수 있다. 어물전에서는 대게도 구입할 수 있는데, 대게를 고를 때에는 배 아랫부분을 눌러봐야 한다. 속이 덜 찬 물빵은 쉽게 꺼진다.
‘대게’는 크다(大)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다리의 마디 형상이나 누르스름한 빛깔이 마른 대나무(竹)와 비슷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특히 대게라고 다 같지 않다. 대게 중에서도 속이 꽉 찬 놈은 ‘박달게’라는 별칭을 지녔다. 박달나무처럼 단단하다고 해서 박달게, 참대게로 부르는 것이다. 반대로 속이 물렁하고 텅 빈 놈은 수게, 혹은 물게 라고 부른다.
동해안에서 잡히는 게는 대략 대게, 청게, 홍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울진-영덕에서는 대게보다 저렴한 홍게도 먹을 만하다. 속이 꽉 찬 중간 것으로 서너 마리만 먹으면 포만감이 든다. 대게와 홍게 사이에 청게라는 것도 있다. 크기도 생김새도 대게와 비슷해 구별이 쉽지 않다. 굳이 차이점을 들자면 대게의 등은 갈색 빛이 돌고 청게의 것은 불그스름하다. 청게는 특히 대게가 나지 않는 여름-가을철에 맛 볼 수 있어 인기다.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청게를 ‘너도 대게’라고 부른다.
대게는 우리나라 동해안 전역에서 잡힌다. 밑으로는 경북 경주 감포 앞바다에서부터 위로는 함경북도 근해까지가 서식지이다. 유독 ‘영덕 대게’가 유명한 것은 영덕이 대게의 집산지이자 주요 조업지이기 때문이다.
여행메모
가는 길
승용차
경부고속도로~신갈분기점~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당진·영덕고속도로(상주-영덕)~영덕~영덕 해맞이공원
대중교통
서울고속버스터미널~영덕시외버스터미널(4시간 20분 소요)~영덕 해맞이공원(거리7.3km<택시 10분 소요, 1만 원>)
뭘 먹을까
도루묵 이무렵 강원권 동해안 최고의 별미로는 ‘도루묵’을 꼽을 수 있다. 비록 폼 나는 어종은 아니지만 추억의 맛을 지닌 그런 녀석이다. 갯내음 물씬 풍기는 포구 주변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것들을 굽고 끓여 먹는 맛이 각별하다. 강원도와 경북 북부 해안 등 산지에서는 도루묵이 얕은 바다의 바닥이나 바위틈에 산란하기 위해 연안으로 몰려오는 11월, 수심 10m 안팎에서 잡히는 ‘알배기’ 도루묵을 제일로 친다. 몸에 영양을 비축해 맛과 영양이 최고조에 이르고, 무엇보다 쫀득하게 씹히는 도루묵 알 때문이다. 도루묵은 잡아온 즉시 싱싱한 상태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잡은 지 오래되거나 냉동을 하게 되면 알이 굳어져 맛이 떨어진다. 알이 실하게 밴 것들을 굵은 소금 흩뿌려 석쇠에 구워주는 게 별미다. 간이 살짝 밴 야들야들한 속살과 잘 익어 쫄깃한 알을 터뜨려 먹는 재미가 독특하다. 또 둥글납작한 냄비에 무나 감자를 깔고 얼큰 달큰 칼칼하게 찌개로 끓여낸 것도 밥반찬, 술안주로 그만이다. 영덕의 주요 포구에서 맛볼 수 있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관광경영학 박사)_ 신문사에서 20년 동안 관광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전 세계 50여 개국, 전국 각지의 문화관광자원 현장과 정책을 취재했다. 지금은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을 통해 대한민국관광 명품화 작업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