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을 처음 오른 것은 15년 전 겨울이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심기일전이 필요해 무작정 태백산을 찾았다.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고 무릎까지 빠지는 깊은 눈길을 헤쳐 올라간 산행.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산을 내려올 때 내 가슴은 희망과 다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후 매년 태백산을 찾는다.
겨울 설산은 이태에 한 번쯤 가니 꽤나 자주 찾는 편이다. 이제 태백산은 십 수년 동안의 추억만으로도 내게 유의미한 산이 됐다. 왜일까? 지리산은 왠지 슬프다. 지리산이 품은 역사 때문일 것이다. 설악산도 발걸음이 쉬 향하지 않는다. 몇 해 전 만난 풍수 전문가 최창조 씨는 “설악산은 이성계처럼 야망을 품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산”이라고 말했다. 야망이 없는 남자여서인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설악산의 기암괴석은 왠지 버겁다.
반면 태백산은 영적인 힘이 있다. 산세는 펑퍼짐하고 정상 또한 하늘 아래 뫼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산이 주는 경이로움은 덜하다. 그러나 산 아래 사람들이 가까이할 만한 산이다.
정상에 놓인 봉우리의 이름 장군봉·부소봉·천제단도 친숙하다. 단군신화를 배경으로 지은 이름들이다.
새해 첫 주말인 지난 1월 5일 태백산을 찾았다. 태백산을 오르는 산행객은 대부분 유일사매표소나 당골을 들머리로 잡는다. 주차장에서 가깝고 오르막이 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유일사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른 뒤 천제단을 거쳐 당골이나 백단사로 하산하는 길에 사람이 가장 많다. 유일사매표소에서 유일사까지 2.5킬로미터는 1톤 트럭이 지나가도 될 만큼 널찍하다.
주말에 이 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헤드랜턴 불빛으로 장관을 이룬다. 이 때문에 번잡한 산행이 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찾는 이가 많다. 어둑한 새벽 아스라이 퍼지는 헤드랜턴 불빛 행렬은 비구니 사찰의 새벽 안행만큼이나 경건하다.
서울에서 태백산의 장엄한 일출을 보고 싶다면 오후 11시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는 것이 좋다. 열차는 오전 3시가 채 못돼 태백 시내에 닿는다. 근처 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잰 걸음으로 올라가면 태백산 정상에서 해돋이를 맞을 수 있다. 열차가 불편하면 차를 몰고 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38번 4차선 국도를 타면 서울에서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이 길이 없을 때는 족히 5시간은 걸렸다.
이번 산행은 느긋했다. 전세버스에 몸을 싣고 서울에서 태백까지 늘어지게 잠을 청하며 편히 갔다. 한갓진 여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전세버스가 닿는 주차장마다 사람이 차고 넘쳤다. 눈은 많이 내렸지만 눈길은 없었다. 사람들이 나다니는 길은 눈이 다져져 아스팔트 위에 밀가루 반죽을 발라놓은 듯했다. 응달은 반질반질할 얼음길이었다.
대부분 차에서 내리자마자 등산화에 아이젠을 끼우고 산으로 들어섰다. 몇 시간 동안 차에서 다리를 오므리고 있다 곧바로 산으로 향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다. 겨울에는 더욱 그렇다. 춥고 귀찮더라도 충분한 준비운동을 한 후 출발하는 것이 좋다. 배낭 속 장비를 꼼꼼히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두툼한 다운재킷과 여분의 장갑, 여분의 양말 등 보온의류는 겨울산행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장비다.
들머리를 유일사가 아니라 화방재(950미터)로 잡는다면 번잡함을 조금은 덜 수 있다. 화방재는 유일사매표소에서 영월 방향으로 조금 위쪽에 있다. 꽃방석이라는 뜻의 화방재는 태백산과 함백산(1,573미터)을 가르는 고갯마루다. 또한 백두대간이 흐르는 마루금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능선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봉화산, 북쪽으로 함백산을 향한다. 화방재로 들어서서 옛 사길 치매표소를 지나면 비로소 산행의 시작이다. 화방재는 이야기가 있는 길이다. 이 길을 즐겨 찾는 이유다.
“보부상들이 동해의 해산물을 싣고 봉화 춘양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길이 나기 전에는 태백산 정상을 관통해 봉화로 갔다.
그래서 이 길의 이름이 새 길이라는 뜻의 새길치, 사길치가 됐다.” 태백시에서 ‘산 지킴이’이자 숲해설사로 일하는 김부래 씨의 말이다.
그의 설명 덕분에 눈과 앙상한 나무만 있는 작은 길에 옛사람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사길치매표소를 지나면 산령각이다. 신령각이 아닌 산령각이다. 이 역시 예전에 이 길을 다니던 보부상들이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산을 경외하는 마음은 현재까지 이어져 매년 음력 4월15일이면 이곳에서 제를 올린다.
사길치 산령각에서 40∼50분 더 올라가면 유일사매표소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한다. 겨울철 등산객이 가장 많이 찾는 천제단 가는 길이다.
유일사에서 주목 군락지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리지만 등산객이 많아 정체되면 족히 2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그래도 천천히 가는 게 답이다. 눈 쌓인 길에서 앞사람을 제치고 갈라치면 자칫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보다 체온 유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겨울 산행에서 한번 체온이 내려가면 다시 몸을 덥히기가 쉽지 않다. 저체온증이 무서운 이유다. 땀이 나도록 걷다 길이 정체돼 걸음이 늦춰지면 땀이 식어 체온이 떨어질 수 있다. 항상 배낭 맨 위에 다운재킷 등 두툼한 상의를 챙겨두는 것이 좋다.
중턱에서 정상까지는 주목에 핀 눈꽃이 환상적이다. 흔히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수식으로 유명한 주목은 1,3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 군락을 이룬다. 그 자태가 범상치 않아 산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주목 군락지 부근에는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천연 전망대가 있다. 북쪽으로는 눈 쌓인 함백산의 남면이 병풍처럼 버티고 서 있다. 남쪽으로는 매봉산·두타산·청옥산·고적대 능선이 힘차게 뻗어 있다. 금대봉에서 낙동강 발원지를 따라 산줄기를 잇댄 낙동정맥의 능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은 키 작은 철쭉과 진달래 군락지여서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다.
장군봉에서 천제단까지 약 300미터 능선길은 살을 에는 칼바람이 몰아치는 곳이다. 산행 시작 전 유일사매표소 앞에 세워진 온도계는 섭씨 영하 8도를 가리켰다. 이곳은 해발 1,500미터 지점, 기온은 영하 13도 정도. 바람이 초속 5미터로 불었으니 체감온도는 영하 18도 정도 될 것이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돌풍은 천제단에서 장군봉으로 가는 사람이든 반대로 가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얼굴을 할퀴었다.
옷을 헐겁게 입은 사람은 이곳이 지옥으로 느낄 수 있다. 다행히 능선은 길지 않아 10분이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 능선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다만 능선에 오르기 전 옷 매무새를 가다듬을 뿐이다. 땀이 나 두꺼운 우모복을 벗었다면 다시 꺼내 입고 바람막이 재킷으로 바람을 막아야 한다.
천제단은 삼배를 올리는 이들로 항상 번잡하다. 장갑을 벗으면 손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춥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꺼이 무릎을 꿇고 바위로 쌓은 단 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혹자는 태백의 영험한 기운에 힘입어 기복을 빌고 혹자는 산에 대한 경외심으로 엎드려 절한다. 뜸하게 산에 오르는 사람이라면 기념비적 이벤트가 될 수 있다.
천제단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부소봉(1,546미터)이다. 단군의 아들인 부소왕의 이름에서 따왔다. 여기서 백두대간 능선은 남쪽으로 깃대배기봉·신성봉·구룡산으로 뻗어나간다. 맑은 날은 멀리 희끗한 머리를 얹은 소백산 정상까지 조망할 수 있다.
천제단과 부소봉의 중간 갈림길에서 시내 방향으로 내려서면 이내 망경사가 나온다. 경내 마당에서는 간단한 취사도 가능하다. 매점에서 식수와 부식거리를 구할 수도 있다. 해 뜨기 전 산행을 시작한 사람들은 대부분 정오가 되기 전 망경사를 바람막이 삼아 끼니를 해결한다. 새벽녘 시내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올라온 이들에게 망경사는 따사로운 볕이다. 반면 배낭이 버겁다고 식량을 준비하지 않은 산행객들은 이 지점에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백단사 하산로는 당골에 비해 길이 조금 더 수월하다. 20~30분이면 내려갈 수 있다. 경사 또한 완만하다. 다만 산의 북면이어서 항시 눈이 쌓여 있다. 이를 잘 아는 사람들은 미리 배낭 옆구리에 비닐포대를 끼고 올라온다. 그리고 이 길에서 비닐포대 썰매를 타고 하산한다. 물론 도립공원 측에서는 ‘눈썰매 금지’라는 푯말을 세워 말린다. 재미있지만 위험하기 때문이다. 또 걸어 내려오는 것보다 훨씬 더 체력소모가 심하다. 등산객이 많은 주말에는 타인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
글 · 김 영 주 여 행 칼 럼 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