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만 바다를 못 봐도 입이 마르고 몸이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 태생이 섬이어서 그럴까? 바다를 보면 물 먹은 건해삼이 부풀어 오르듯 몸도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거제의 섬, 외도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외도 바로 옆의 섬 내도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과 밖이 있듯 거제에는 내도와 외도가 있다. 거제 구조라 마을에서 바깥쪽에 있는 섬이 외도고 안쪽에 있는 섬이 내도다.
외도 너머로는 해금강이 굽이굽이 흐른다. 사람이 가꾼 섬이 외도라면 내도는 자연이 기른 섬이다. 원시림이 살아 있는 내도는 개발하지 않은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온몸으로 보여준다.
동백나무·편백나무·구실잣밤나무·감탕나무·까마귀쪽나무·소나무 거목들로 가득 찬 내도의 숲에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넘친다.
2011년 처음 내도 숲길을 걸으며 이 작은 섬에서 어떻게 원시림 보존이 가능했는지 궁금했다.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문득 단서 하나를 발견했다. 내도는 예부터 물이 부족했다. 숲이 무성하면 대체로 물이 풍부한 법인데, 내도는 땅을 파도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섬사람들은 물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물이 부족하니 섬에는 언제나 소수의 사람밖에 살지 못했다. 사람이 적게 산 까닭에 숲이 보존될 수 있었으리라. 많은 사람들로 섬이 복작거렸더라면 원시의 숲은 진작 사라지고 말았을지 모른다.
오전 11시 구조라항에서 내도행 여객선에 올랐다. 겨울이어서인지 여객이 드물다. 세 명의 낚시꾼과 함께 배를 탔다. 여객 입출항 현황판을 보니 오전 9시 첫 배를 탄 여객은 고작 7명뿐이다. 방문객이 적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다. 섬의 숲길을 온전히 혼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숲을 전부 내 차지로 삼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기회다.
내도 숲길 입구에는 오래된 동백나무들이 신장처럼 숲을 호위하고 서 있다. 기나긴 세월 모진 바닷바람을 견디며 속이 단단해진 동백나무는 도끼 날로도 뚫을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철갑으로 무장한 동백나무 방어선을 뚫을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숲길 초입은 약간 가파른 편이다. 그러나 나무와 흙으로 만든 계단 덕분에 비탈을 오르는 어려움을 덜 수 있다. 호흡을 가라앉히고 계단을 오르자면 오른쪽 비탈에 편백나무가 등장한다.
하늘을 뚫을 기세로 솟아오른 모습으로 내도 숲의 위용을 과시한다. 숲이 마치 “평생을 살아오면서 대체 몇 사람의 목숨이나 살려봤느냐”고 묻는 듯하다.
울창한 숲 1헥타르가 1년 동안 생산하는 산소는 5톤에 달한다. 사람 18명이 1년 동안 숨쉴 수 있는 양이다. 사람을 살려내는 숲은 제 한 목숨 부지하는 데 급급한 인간들을 타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험한 세상 살아내느라 수고했다. 어서 오라”며 품을 열어 감싸주고 등을 다독인다.
나무는 나쁜 세균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테르펜이라는 방어물질을 뿜어낸다. 이를 통칭해 피톤치드(phytoncide)라고 일컫는다. 피톤치드는 그리스어의 ‘식물(phyton)’과 ‘죽인다(cide)’가 합쳐진 단어다. 피톤치드는 인체에 기생하는 나쁜 병원균과 해충, 곰팡이를 퇴치하는 효능이 있다. 인체가 피톤치드를 받아들이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향상된다.
나무 중에서 피톤치드를 가장 활발히 생산하는 1인자는 편백나무다. 소나무 등 다른 침엽수보다 세 배 이상 많은 피톤치드를 뿜어낸다. 내도 숲에서 편백나무는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에 시달린 도시인의 몸과 머리를 정화해주기에는 충분하다.
이 아름다운 원시의 숲을 오래 즐기고 싶다면 걸음을 최대한 늦추기를 권한다. 섬이 작으니 내도의 숲길은 모두 걸어도 3킬로미터에 불과하다. 급하게 걸으면 숲길이 금방 끝나고 만다.
내도 숲에서는 달팽이나 거북이처럼 느리게 걸어야 한다. 느리게 걸을수록 숲이 주는 혜택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다. 천천히 걷는 동안 몸속의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고 숲의 정령이 불어 넣는 맑은 기운을 받아 정신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미끈하면서도 우람한 근육을 지닌 동백나무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겨울에 핀다고 해서 동백(冬柏)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상 한겨울 혹한을 뚫고 꽃을 피우는 동백은 많지 않다. 한동안 추위가 계속된 탓에 동백은 아직 피지 않았다. 동백 꽃망울은 숨죽이고 날이 풀리기만 기다린다.
대부분의 동백꽃은 늦가을부터 초겨울 사이에 살짝 피었다 지고 봄에 만개한다. 하지만 가을이나 봄에 피는 동백은 진짜 동백이 아니다. 눈밭에서 피어나는 설중매가 진정한 매화인 것처럼 엄동의 추위를 뚫고 피어야만 진정한 동백이다. 혹한을 뚫고 피어난 내도의 동백은 진정한 동백인 만큼, 숲 속에서 동백을 만난다면 찬찬히 살펴볼 일이다.
잠시 숲이 일렁인다. 바다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몰려온 바람이 내도의 숲을 흔든다. 오수에 빠졌던 나무들이 흠칫 놀라 잠을 깬다. 섬이나 바닷가 숲의 생태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더러 바닷바람에 숲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파도소리로 착각하기도 한다. 섬의 숲을 흔드는 바람에는 바다의 소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내도의 바다와 숲은 바람의 도움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서로 안부를 묻고 또 묻는다.
가파른 계단의 끝자락, 구실잣밤나무 아래 사람 형상의 바위 하나가 서 있다. 마치 아이를 업은 모습이다. 애기업은바위라고 이름을 붙여보았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나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면 사랑이 샘물처럼 퐁퐁 솟아나는 걸 느낄 수 있다.
이제 숲길의 막바지다. 동백나무가 만든 터널을 빠져나오면 오래된 소나무가 도열해 있다. 솔밭 사이 비탈진 언덕 양지 녘에는 무덤 몇 기가 나란히 누웠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살다 죽어간 이들의 무덤. 봉분은 일제히 해변을 향해 봉긋하게 솟아올랐다.
해변의 묘지 앞에서 세 갈래 길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선택은 여행객의 몫이다.
누구나 가슴속 문제를 하나씩 안고 섬을 찾는다. 내도의 숲을 걷다 보면 자신과 대면하며 문제를 풀어나갈 기회를 얻게 된다. 동백나무 터널을 빠져나가면 숲길은 끝나고, 나룻배는 여행객을 다시 뭍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숲의 정령이 속삭인다. 절망을 이고 온 자 절망을 털어버리고, 슬픔을 안고 온 자 슬픔을 날려보내고, 고통을 이고 온 자 고통을 벗어버리고 다시 길을 떠나라고.
시인 발레리는 해변의 묘지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노래했다. 바람이 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내도의 숲 끝자락으로부터 밝은 빛이 쏟아지고 흐릿한 길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글과 사진·강제윤 (시인·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