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코앞이다. 설의 추억을 여니 눈송이처럼 풀풀 날아오른다. 살기 위해 어디선가 잘라낸 혹은 잘려나간 그간의 아픈 팔들을 이어 멀리 뻗어본다. 그 팔들을 아주 멀리 뻗으면 긴 간짓대로 따뜻하고 싱싱한 햇덩이 감을 따서 바구니 가득 담을 것 같아서다.
세상의 가장 어두운 시간들을 마시고 삼키고 놀다 쟁여지는, 이제는 식량이 된 울음처럼 그동안 먹은 떡국들이 아름다운 시간들을 토해낸다. 그 아련한 시간들이 해 지는 금강 들녘보다 아름답다. 이 세상은 가난이 존재하는 한 존재하며, 그래서 아름다운 것일까? 50년 전의 설날 풍경이 옆구리를 쿡 찌르자 코끝이 아리다.
모두 목욕탕에 갔다. 깨끗해진 몸으로 동네를 나서면 햇살은 얼마나 환했던가? 새벽부터 가래떡 빚는 행렬이 이어지는 방앗간 골목. 옷과 신은 사주실까 잠을 설쳤지. 때때옷 입은 행렬은 겨울꽃이었다. 왁자지껄 설날의 콧노래에 밀려 근심은 도망쳐버린 줄 알았을 것이다.
어르신께 큰절 올리면 정성껏 빚은 음식을 차려 주시고 주머니를 털어 설렘을 나눠주셨다. 철없는 아이들에게 설처럼 반가운 시간대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왜 10원짜리 한장보다 덜 반가웠을까? 부자인데도 멀뚱멀뚱 바라만 보시면 왜 그리 섭섭했을까? 그래서 어린이들에게는 후하게 세뱃돈을 주는 마음을 안다.
보따리에 싼 음식을 따뜻하게 전하려고 바삐 뛰던 시간들을 후손에게 나눠주고 싶다. 가래떡을 늦게 빼는 집안 사정이 야속하던, 기계 속에서 천천히 빠져 나오던 가래떡을 재빨리 뜯어 달아나던 그 빠른 손까지 선물하고 싶다.
세배를 하면 그 귀한 방패연을 나눠 주시던 동네 할아버지네 대문으로 달려가 새벽부터 줄 서서 기다리던 추억, 좋은 것만 실컷 먹고 입지 못해 더욱 튼실해진 유년도 넘겨주고 싶다.
가족과 이웃 곁에서 명절을 보내려고 도로를 온통 주차장으로 바꾸기도 하는 코리아의 설풍경을 보따리에 넣어서 말이다.
쉽게 주머니에 넣을 수 없는 구슬이나 딱지·사탕처럼 손에 쥔 감촉만으로도 흡족해지는 이 설날의 추억을 더듬다 보니 잊은 일이 떠오른다. 졸업 후였다. 너무 따뜻하신 P선생님께 드릴 선물이 없어 쓸쓸한데 어머니가 떡국을 끓여 주전자에 넣어 싸고 또 싸고 또 싸서 주셨다. 10리 길을 얼마나 빨리 걸었던지 도착했을 때는 숨쉬기가 어려웠다.
그 마음을 읽으신 선생님의 어머님께서는 싸고 또 싼 보따리를 금방 꿰매 자루를 만드셨다. 그 자루들을 찹쌀과 팥으로 채워 동구밖까지 이고 나오시어 차표를 끊어주시며 “어릴 적 고생은 사서도 한단다. 꼭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 나의 이 자리는 설날의 주전자 속 내 어머니의 떡국, 그날 들려주신 선생님 어머님의 덕담 때문이었구나! 폐가에 홀로 남겨진 큰 장독 대신 그 옛날의 설 풍경이 다시 붐비는 우리 고향을 내가 찾아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글·박라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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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