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시에 자리잡고 있는 경상남도수목원에 들어서면 먼저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게 된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흐드러진 초록에 마음마저 싱그럽다. 수목원이라기보단 거대한 숲이고 자연이다. 숲이자 공원이고 동물원이며 또 박물관이다. 수치상으로만 따져도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자생종과 수입 수종 2,700여 종, 24만여 본이 식재되어 있는 데다 국내 최대 규모 산림박물관과 열대식물원, 야생동물원, 무궁화공원, 화목원 등이 테마별로 조성되어 있다.
워낙 넓은 규모의 수목원이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둘러봐야 할지 막막하다면 숲 해설사를 신청해도 좋다. 숲과 나무의 생태에 대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들으며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1시간에서 4시간까지 다양한 코스가 있다.
숲 해설사와 함께 수목원을 걷다보면 혼자 걸을 때는 미처 몰랐던 온갖 생명들이 말을 걸어온다. 숲에서야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꽃나무들 저마다 자신의 태생과 환경에 맞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또 저 나름대로 진다. 제 갈길을 모르거나 우왕좌왕하는 일도 없이 몇천 년, 혹은 몇만 년 전부터 지켜온 자신들의 습성을 온몸으로 이어나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숲의 세계는 온통 번식을 위한 투쟁이다.
꽃이 작으면 잎을 화려하게 만들어 벌을 유혹하고 번식력이 낮으면 수많은 씨앗으로 그 불리함을 보완한다. 외부 환경에 의한 피해가 잦으면 눈에 띄지 않도록 슬며시 그 꽃의 몸을 숨기고 햇볕을 더 받기 위해 낮에만 입을 벌리기도 한다. 그 모양새마다 나름의 이유와 원인이 있고 신비로운 본능이 있다.
식물에 대해서는 통 모르는 도시 사람이 숲 속에 들어오면 아이가 된다.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되어도 자연 앞에서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깔깔댄다.
촉석루 마룻바닥은 사람들의 자취로 늘 반질반질하다. 한쪽에서 낮잠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책을 읽거나 명상에 잠긴 사람들도 눈에 띈다.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촉석루에 기댄다. 바위 위에 우뚝 선 누각이라 하여 촉석루. 남강변 벼랑 위에 서 있는 촉석루는 옛날 전쟁 중엔 지휘본부로, 평상시엔 향시의 고사장으로 사용되었다는데 현재는 여행자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준다.
남강변 촉석루의 바람과 풍경은 한편의 시
과거 수많은 풍류객들이 촉석루에 올라 읊었던 시구들이 촉석루 곳곳에 편액으로 걸려 있다. 과거나 현재나 풍류를 아는 사람이라면 촉석루에 잠시 걸터앉아 노래를 부르는 일에 인색하지 않다. 시 한 자락, 노래 한가락 읊조릴 수 있다면 어찌 아니 좋을까.
촉석루에 걸려 있는 시 중 조선 중기 학자였던 한몽삼(韓夢參, 1589~1662)의 시 한 편이 눈에 띈다.
“천지지간에 처음으로 특별한 곳 열었으니
어느 해 호사가가 이 다락을 세웠는가
높은 처마에 산 그림자 멀리서 드리우고
채색한 난간 푸른 물에 나지막이 흔들린다
올라보면 갑자기 날개라도 돋는 듯
한평생 불현듯 부평처럼 느껴지네
만호후 높은 벼슬 내 분수가 아니니
바라노니 영전하여 이 고을에 누웠으면”
진주성 안에 있는 촉석루는 예나 지금이나 남강을 끼고 벼랑에 들어선 빼어난 풍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촉석루에 올라서면 한여름에도 더위를 못 느낄 만큼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온다. 남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이 바람을 타고 어디든 날아가고 싶어지는 건 끝내 날지 못하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탓이다. 촉석루에 누워 바람을 맞노라면 지쳤던 몸은 쉬고 탁 트인 풍경에 마음까지 편해진다. 촉석루 바람과 풍경은 여기 드는 그 누구나의 것이다.
진양호 전망대에 서면 ‘진주 8경’의 의미 깨달아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차분해진다.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기도 하고 괜히 화났던 마음이 슬며시 누그러들기도 한다. 어지럽던 정신이 고요해지고 바빴던 마음도 문득 아득해진다. 사람들이 흔히 떠나고 싶어하는 곳으로 자주 바다나 강, 호수를 떠올리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덕천강과 덕유산에서 발원한 경호강이 만나는 곳에 진양호가 있다. 진양호 물결이 고요하다. 진양호 전망대에 올라서면 호수 너머로 첩첩이 쌓인 산들이 장관을 이룬다. 지리산을 시작으로 와룡산, 자굴산, 금오산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시간이나 계절에 관계없이 아무 때고 멋진 풍광을 선사하는 진양호지만 특히 물안개 피어나는 새벽과 노을 지는 저녁은 누구라도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황홀한 풍경을 선물한다. 자연이 내어주는 공평하고도 대가 없는 선물이다. 진양호는 그 자연스럽고도 거대한 모습만 보고는 상상이 잘 안 되지만 실은 인공호수다. 1962년 남강다목적댐을 건설하며 조성되어 1969년에 준공됐다.
전망대에서 진양호를 감상하다가 문득 그 물을 좀 더 가까이 보고 싶다면 전망대 옆으로 난 일년 계단을 이용해 호수 근처까지 내려가볼 수도 있다. 전망대의 다른 한쪽으로는 숲길을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도 이어져 있다. 양마산 가는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숲길의 상쾌함을 맛볼 수 있다. 사람들이 그리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야생의 분위기를 간직한 것도 매력이다.
끝없이 펼쳐진 물길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때론 복잡한 머릿속을 탈탈 털어 비워내고 아무 생각 없고 싶다. 풍경 좋은 곳에서 ‘멍’ 때리고 싶을 때, 그래서 가슴에 멍울진 ‘멍’을 털어버리고 싶을 때, 발길 닿는 곳마다 한적한 여유가 있는 진주를 권한다.
글과 사진·이송이(여행작가)
진주의 맛
진주비빔밥, 진주헛제사밥, 진주냉면, 진주장어골목, 진주실비집
풍류를 아는 고장답게 교방문화가 발달하여 음식문화의 꽃을 피웠던 진주. 예로부터 양반이 많고 물산이 풍부하던 진주는 먹을거리도 풍요로웠다. 삼시 세끼만 먹는 것이 영 부족하다 싶을 정도이다.
전주비빔밥과는 또 다른 진주비빔밥
진주비빔밥은 일단 선짓국과 함께 먹는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서 고기로는 육회를 얹고 그 피로는 선짓국을 끓인다. 진주비빔밥을 칠보화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황색의 놋그릇과 흰 밥, 그리고 다섯 가지 나물이 어우러져 일곱 가지 색을 내어 그 모양이 꽃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보통 숙주나물, 시금치, 고사리, 무채 등을 넣고 가운데에는 참기름과 마늘 등으로 양념한 육회를 얹어 비벼 먹는다.
거짓으로 제사를 지내고 먹는 밥, 진주헛제사밥
헛제사밥은 마치 제사를 지내는 듯 제사 음식을 준비하여 상을 차리는 것으로 몇 가지 전과 조기 등의 생선, 각종 나물 반찬과 제사 때 주로 먹는 반찬들이 상에 올라온다. 진주헛제사밥은 조선시대 유생들이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 허기가 졌는데 가난한 이웃이 마음에 걸려 거짓으로 제사를 지내는 척 제사 음식을 준비하여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헛제사밥정식은 고사리, 도라지를 비롯한 일곱 가지 나물 반찬과 돔, 조기 등의 생선, 육전과 호박전 등 다양한 전류, 선지탕국, 떡과 정과 등으로 푸짐하게 차려진다.
육전 올린 진주냉면과 진주장어골목
진주냉면의 특징은 해산물로 낸 육수와 수제 메밀가루로 뽑은 면 위에 고소한 쇠고기 육전을 올린다는 점이다. 새콤달콤한 냉면과 육전이 맛의 조화를 이룬다. 면은 쫄깃하고 육수는 시원해 자꾸 생각나는 진주의 명물이다.
촉석문 앞으로는 장어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몇십개 장어집이 남강과 나란히 열을 맞춰 있어 남강의 풍광을 보며 식사할 수 있다. 장어는 고추장 양념을 해서 구운 것과 소금 양념을 해서 구운 것 두 가지다.
끝없이 나오는 육해공 안주, 진주실비집
진주 하면 실비집도 빼놓을 수 없다. 술을 시킬 때마다 알아서 안주가 나오는 방식은 통영 다찌집이나 전주 막걸리집과 비슷하다. 진주에서는 술 한 병당 정해진 안주를 내주는 경우도 있지만 손님상에 안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알아서 내줄 만큼 인심이 넉넉하다. 게다가 물산이 풍부한 덕에 해산물을 비롯한 육해공 안주가 다채롭게 나와 술 먹는 맛을 돋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