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국, 일본, 대만 할 것 없이 동북아시아 전체가 뜨거운 가마솥 뚜껑 아래 갇혔다 한다. 중부지방은 칠월까지 장마에 시달렸지만, 남부지방은 칠월 내내, 또 팔월은 한반도 전체가 펄펄 끓고 있다.
삼복더위라 하지만 이번 더위는 그런 평범한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것 같다. 복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개고기를 떠올린다. 그것을 먹고 안 먹고를 떠나 그만큼 더위의 절정과 개고기가 우리의 의식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중국에서 복날은 진나라 때부터 유래된 것이고, 더위에 떨어진 식욕과 체력을 육식으로 보충하는 습속이 생겼다.
나라에 닥칠 재앙을 막기 위해 삼복에 사대문에 개를 매달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그 고기를 먹는 풍습도 이때 생겼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개고기를 제물이나 공물로 이용했다는 것이 민속학자와 역사학자들의 주장이고 보면, 유독 체력이 떨어지는 한여름에 그 짐승을 먹고 싶은 욕구가 컸던 모양이다.
서양에서도 삼복더위를 일컫는 말은 개와 관련이 있다. 라틴어로 개를 canis라 하는데, 거기서 파생된 작은 개 canicula는 큰개자리 중에서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로마시대 때 가장 더운 시기인 대략 7월 24일부터 8월 24일 사이,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알려진 이 별이 태양과 함께 지평선에 떴다가 함께 서쪽으로 지는 데서 삼복이 유래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말을 그대로 쓰고, 프랑스 사람들은 canicule이라 한다. 영국 사람들은 그 뜻만을 가져다 dog days라고 한다. 두 문화권의 삼복더위가 개와 관련이 있다지만 그렇게 된 이유가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런 삼복더위에 보령시 대천에 갈 일이 있었다. 세미나 장소는 해수욕장과 어항을 가르는 언덕 위에 있었다.
해수욕장 쪽 풍경. 긴 백사장과 해변에는 작열하는 태양만큼 젊음을 발산하는 무리들이 모래와 파도와 어우러진다. 민박집 건물 그늘마다 평상이 펼쳐져 있고, 어김없이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다.
썰물이라 수면이 낮아진 항구 쪽 풍경. 부두 한참 아래 정박한 어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멸치 상자를 고물에 빼곡히 쌓아놓고, 하역작업을 준비하는 어부들이 대형 선풍기 아래에 모여 숨을 헐떡거린다. 젊은 어부들은 외국인이고 한국 어부 중에는 선장만 좀 젊어 사십대로 보인다. 한 어부가 스티로폼 박스를 열고, 반쯤 언 페트 물병을 동료들에게 돌린다. 부두에는 멸치를 실을 트럭과 기사, 선주로 보이는 중노인, 그리고 선장의 아내로 보이는 여인이 있다. 구경하는 나를 빼면 한참 떨어진 곳에 정박한 어선의 광경도 똑같다. 삼복더위에도 그들은 늘 그렇듯 노동에 전념했다.
대전으로 돌아오는 직행버스 안. 정류소에 빨리 도착해서 그런지 배정된 좌석이 맨 끝 줄 바로 앞 통로 쪽 자리였다. 시원한 버스 안은 두어 명, 그 동네 주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젊은 피서객들로 꽉 찼다. 정오가 막 지난 시간이라 햇볕이 그다지 들어오지 않을 텐데도 버스 안의 창은 죄다 커튼으로 가려졌다. 스마트폰을 보는 젊은이, 음악을 듣는 젊은이, 잠에 빠져든 젊은이, 그렇게 대전까지 두 시간 넘게 달렸다. 내가 보고 싶었던 들판과 야산과 농촌은 창을 가린 커튼 너머로 펼쳐졌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삼복더위를 탓하며 숨어들고 있었다.
생업에 종사하든 그렇지 않든 더운 삶의 현장에 우리의 젊은이들은 없었다. 그런 곳에 와볼 그들의 호기심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사람마다 삼복더위를 대하는 자세는 달랐다. 그런 노동의 풍경을 가볍게 가려버리는, 이 모두를 그저 삼복더위 탓으로 돌릴 일이다.
글·전광호(부산대 불어불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