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길은 평사리마을의 상징인 최참판댁 아래 매표소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리산 둘레길과 일부 겹치는데, 매표소에 가면 두 길이 함께 소개된 약도를 얻을 수 있다. 이즈음 악양면 일대에서는 특산물인 ‘대봉감’이 발갛게 익는다. 마을 어귀에는 어린아이 주먹 만한 대봉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오후 늦게 도착한지라 토지길을 절반으로 갈라 이틀에 걸쳐 나눠 걷기로 했다. 첫날은 최참판댁에서 들판을 가로질러 대축마을 앞까지 간 뒤 논두렁을 따라 취간림(翠澗林)에서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평사리 들녘을 가로지르는 토지길 1코스는 10킬로미터 남짓으로 서너 시간이면 걸을 수 있다. 좀 더 오래 걷고 싶다면, 마을에서 섬진강 방향으로 나가 평사리공원에서 시작하면 한 시간 정도 더 걸린다. 여기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쌍계사 쪽으로 올라가면 총 18킬로미터 남짓이다.
최참판댁은 평사리 들판을 굽어볼 수 있는 상평마을 양지 바른 곳에 있다. 십여 채의 한옥이 탐스럽다. 소설이 유명해지고 난 이후 지은 건물이라 예스러움은 덜하지만, 작고 아담한 건물이 잘 배치돼 있어 전체적으로 푸근하다. 방문객이 많지 않은 평일에 들르면 볕 잘 드는 토방에 앉아 소일하기에 좋은 곳이다.
최참판댁 아래 주차장에서 조금 내려온 지리산 남부능선 자락에는 고소성과 한산사가 자리 잡고 있다. 차로 5분이면 한산사 앞 전망대까지 갈 수 있다. 해가 떨어지기 한두 시간 전이라 발걸음이 급했지만, 그래도 평사리 들판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망대에서 들판을 바라보니 비구름을 잔뜩 머금은 하늘 아래 촉촉이 젖어 있다. 아직 추수가 시작되지 않은 터라 가을 서정이 물씬하다. 매표소에서 받은 약도를 놓고 실제의 길과 대조해봤다. 마을 앞 들판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길을 따라 직진하면 상평마을 앞으로 대축마을이 나오고, 마을 앞에서 왼쪽으로 틀어 악양면사무소 소재지로 향하면 취간림이다.
벼이삭 고개 떨군 논두렁 길엔 가을 서정 물씬
대봉감 과수원을 내려가 아스팔트 길을 건너니 바로 들판이다. 길 양 옆으로 핀 코스모스와 밭두렁 가장자리에 심은 들깨, 콩 등 가을 작물이 반긴다. 들판의 벼는 누렇게 변해 이삭을 떨구고 있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농로는 어림잡아 500미터는 될 것 같았다. 앞으로는 대축마을(축지리), 그리고 마을 뒤로 아미산(678미터)이 구름에 덮여 있었다. 대축마을에는 문암송이라는 기이한 형상의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아미산의 커다란 바위를 뚫고 버티고 있어 마치 큰 바위에 걸터앉은 형국이다.
토지길은 마을로 향하는 축지교 앞에서 개천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진다. 안내판 역할을 하는 말뚝이 약 200미터마다 세워져 있어 길을 놓칠 가능성은 적다. 여기서 길은 마을 앞 개천을 따라 이어진다. 북서쪽으로 지리산 남부능선, 남동쪽으로는 아미산, 그리고 섬진강의 지류를 이루는 개천이 남쪽으로 흐른다.
길은 개천과 들판의 경계를 가르는 둑을 따라 나 있다. 둑 위에서 내려다보니 논 색깔이 붉은색부터 노란색까지 다양하다. 자세히 보니 붉은 빛깔의 논은 멸구가 일었다. 형제봉에 걸린 흰 구름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길은 소축리 앞을 지나 계속해서 개천을 따라 이어진다. 서쪽 형제봉 자락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을 등지고 걷다 보니 어느새 취간림에 이르렀다. 축지교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약 2킬로미터, 해질녘 바삐 걸으니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취간림은 본래 취간정(翠澗亭)이었다고 한다. 숲이라고 하기에는 산림이 빽빽하지 않다. 한자로 물총새 ‘취(翠)’ 산골 물 ‘간(澗)’ 수풀 ‘림(林)’으로, 풀이하자면 ‘물총새가 물가에서 지저귀는 숲’이다. 숲에는 버드나무를 비롯해 느티나무, 벚나무 등 제법 오래된 아름드리나무가 있었다.
뜻밖에도 숲 안쪽에 하동을 비롯한 지리산 자락에서 항일독립 운동을 한 지사들의 기념탑이 있었다. 13기의 개인비와 탑이 있었는데, 모두 경술국치(1910년) 이전에 봉기했던 인물들이다.
또 일본군 위안부로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당당하게 공개 증언한 고(故) 정서운 할머니의 뜻을 기리는 평화의 탑이 세워져 있다.
길손들 반겨주는 상신마을 ‘조씨고가’
이튿날 취간림에 차를 세워두고 이정표를 따라 다시 정서리 상신마을로 향했다. 전날 하동군청 조문환 계장은 “상신마을에 가거든 조씨고가에 꼭 들르라”고 했다. 평소에도 고향에 대한 애정이 가득해 외지에서 찾아온 이들에게 여행 길잡이를 자처한다. 그가 조씨고가를 추천한 이유는 “집 구경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고가를 지키는 종손 “조한승(87) 어른을 만나 보라”는 말이었다.
조씨고가는 마을 위쪽에 있었다. 정서리와 평사리 들판, 그리고 그 너머 아미산 자락을 굽어볼 수 있는 명당이었다. 조씨고가의 집터는 그리 넓지 않았고, 고택 또한 그리 위압적이지 않았다.
대문을 빼꼼히 열고 ‘사람이 있나 없나’ 살펴보려는 찰나 사랑방에서 조한승 어른이 나오면서 방문객을 반겨주었다.
“아침 일찍 나셨네? 이리 와서 차 한잔 하고 가게.”
조씨 어른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는 일면식도 없는 방문객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툇마루로 이끌었다.
“서울에서 왔능가? 커피로 할랑가, 녹차로 할랑가? 수준 있는 사람들은 차를 달라고 하더라고.”
어른은 누군가 선물해 줬다는 하동 발효차를 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달달한 커피를 마셨다.
조씨고가는 평사리 최참판댁을 찾는 여행객에게는 필수 코스다. 주말이면 전세 버스가 마을 앞에 도열하기도 한다. 귀찮을 성싶기도 하지만, 어른은 “찾아주는 이가 있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했다.
한두 시간 자리에 앉아 있으니 낯이 익은 한 배우가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알고 보니 조씨고가는 수개월째 한 종편 채널의 드라마 촬영 장소로 쓰이고 있었다. 어른은 “매일 이놈들 굿하는 것 보는 게 요즘 소일거리”라고 했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 못지않은 풍류다.
조씨고가에서 최참판댁으로 돌아가는 길은 상신마을 중턱에서 시작해 입석리, 그리고 평사리마을 중턱을 잇는다. 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과수원길로 늦가을에 가면 운치가 그만이다. 사실 이 길은 마을 사람들이 걷는 길로 평사리 들판에 비해 훨씬 더 호젓하다. 주말에 가도 번잡하지 않아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조씨고가에서 최참판댁까지는 약 4킬로미터, 슬렁슬렁 걸어도 한 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글과 사진·김영주(여행 칼럼니스트) 2013.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