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 부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누런색 전화번호부를 기억하는가? 전화번호를 몰라 다급해질 때 ‘가나다’ 순으로 이름이나 상호를 찾다보면 어느 새 쉽게 해결되고는 했다. 스마트폰에 필요한 번호를 저장해 쓰는 요즘에는 전화번호가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지금도 온·오프라인 전화번호 서비스가 있다. 전화번호부는 100여 년간의 통신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화번호부가 정말로 ‘귀하신 몸’ 대접을 받던 1970년대로 돌아가 보자.
한국전화번호부공사(현 한국전화번호부주식회사)의 ‘광고 모집’ 편(동아일보 1971년 4월 5일)을 보자. 지면을 2등분해서 왼쪽에는 전화번호부 광고의 특성을 설명하고 오른쪽엔 광고 단가를 제시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라는 의문형 헤드라인 아래 기업체가 유명해지기를 원하는지, 상품이 잘 팔리기를 원하는지, 또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전화번호부 광고는 높은 공신력, 많은 이용자, 싼 광고료, 좋은 효과, 긴 수명이 자랑이라고 하면서 500만 서울시민이 주요 고객임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광고 형태도 요금에 따라 다양하다.
‘직업별 중복’ 광고료 600원에서 ‘특대’ 광고료 28만원까지 광고의 크기나 유형별로 광고 요금을 다양하게 제시함으로써 광고주의 형편이나 필요에 따라 알맞게 선택하도록 했다. 더욱이 광고 지면의 중간에 “서울전화번호부 광고모집 개시”라는 카피를 세로로 세워 지면을 좌우로 구분한 레이아웃이 특히 눈길을 끈다. 이렇게 레이아웃을 하면 메시지를 단계적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창의적 광고에 필요한 구성요인의 하나인 명료성을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전화번호부공사는 1966년 출범한 이후 반세기 동안 전화번호를 제공하는 사업의 동반자이자 국민들에게 공공 생활정보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그런데 1997년 전화번호부 시장이 민영화된 이후 전국 각지에 30~40개 사설 전화번호부 업체가 난립해 KT를 사칭한 영업 행태를 보임으로써 무척 혼탁해졌다고 한다. 기간통신 사업자에게서 번호안내 서비스를 위탁받아 전화번호부를 발행하는 번호안내 사업자는 한국전화번호부의 ‘KT전화번호부-슈퍼페이지’가 유일하다. 전화번호 등재를 미끼로 광고비를 받거나 KT 전화번호부라고 속여 영업하거나 자영업자에게 광고 계약을 유도한 다음 마구잡이로 과다 비용을 빼가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귀하신 몸’ 대접을 받던 전화번호부도 이제는 ‘귀하신 몸’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옐로 페이지(yellow page) 광고라는 이름으로 전화번호부 광고가 귀하신 주요 광고 장르로 대접받고 있다. 싼 광고료와 높은 광고 효과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지난 시대의 통신문화 흔적을 추억으로 보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화번호부 시장이 혼탁하다고 하니 안타깝다. 새해에는 말끔히 해소되기를 바란다. 송구영신을 다짐하는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많은 분들이 전화를 주고받을 것이다. 그때마다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며 공중전화기에 동전을 넣던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 시절의 우정과 사랑까지 전해 보는 건 어떨까?
글·김병희(한국PR학회 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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