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건국은 정치·사회·경제·문화의 여러 분야에 걸쳐 고려시대와는 다른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성문 법전의 편찬이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즉위 후 내린 교서에서 ‘의장(儀章)과 법제는 고려의 것을 따르되 법률을 정하여 모두 율문(律文)에 따라 처리함으로써 고려의 폐단을 밟지 않을 것’을 천명하였다.
즉위 교서에 나타난 이러한 방침은 조선 건국의 주역 정도전(鄭道傳·1342~1398)에 의해 즉시 수행되었다. 1394년(태조 3년)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여 태조에게 바쳤다. <조선경국전>은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정보위(正寶位)·국호·정국본(定國本)·세계(世系)·교서(敎書)의 5항이 있으며, 다음에 본편 격인 치전(治典)·부전(賦典)·예전(禮典)·정전(政典)·헌전(憲典)·공전(工典)의 6전 체제로 구성되었다.
<조선경국전>에 피력된 정도전의 정치사상은 600여 년 전의 인물이 제시한 정책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시대를 앞서간 내용들이 많다. 부전(賦典)의 ‘판적(版籍)’에서는 “대개 임금은 나라에 의존하고 나라는 백성에게 의존하는 것이니, 백성이란 나라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례(周禮)>에서는 인구 수를 왕에게 바치면 왕은 절하면서 받았으니, 이것은 그 하늘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인군이 된 사람이 이러한 뜻을 안다면 백성을 사랑함이 지극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백성이 근본이 됨을 무엇보다 강조하였다.
정도전은 재상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조선경국전> 총서에서 밝힌 재상의 역할 부분을 보자.
“총재(재상)에 그 훌륭한 사람을 얻으면 6전(典)이 잘 거행되고 모든 직책이 잘 수행된다. 그러므로 ‘인주(人主)의 직책은 한 사람의 재상을 논정(論定)하는 데 있다’ 하였으니, 바로 총재를 두고 한 말이다. 총재는 위로 군주를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여 만민을 다스리는 것이니, 그 직책이 매우 큰 것이다. 또 인주의 자질에는 어리석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하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으니, 총재는 인주의 아름다운 점을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인주로 하여금 대중(大中)의 지경에 들게 해야 한다.”
위 글의 핵심은 조선시대 재상은 가장 능력 있는 자가 선발될 수 있기 때문에 재상 중심의 국정 운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통해 재상 중심의 국정 운영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조선경국전>에는 정치·경제·사회적 측면에서 고려왕조의 통치체제를 뛰어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치전에서는 임금과 신하의 직능과 관리 선발 방법을 항목별로 제시하고 있는데, 관리선발이 고시제도에 의거하여 능력 본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조선경국전>에서 제시한 내용들 대부분이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에 반영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정도전을 일컬어 ‘조선 건국의 설계자’라 불러도 결코 과장됨이 없을 것이다.
새해를 맞아 KBS에서는 새로운 대하사극 <정도전>을 선보였다. 정도전이 구상한 조선 건국의 정책 방향을 이해하면서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글·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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