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귀지가 왜 가루야?” 백인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 E씨는 귀지 때문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먼저 깜짝 놀란 건 E씨의 귀지를 파주던 백인 남편이었다.
“왜? 그게 어때서? 뭐가 문제야?” 하며 반문하던 E씨는 남편의 귀지를 보고서는,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경악’했다. 남편의 귀에서는 끈적끈적한 노란색의 귀지가 면봉에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 다 건강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귀에 염증이 있거나 다른 질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종에 따라 귀지의 형태나 색깔 등이 다르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국인들의 귀지는 E씨처럼 건조하고 옅은 회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국인들 가운데도 E씨의 남편, 즉 백인들처럼 귀지가 젖어 있고 색깔 또한 노랗거나 갈색인 사람들이 소수이긴 하지만 꽤 된다.
귀지는 드물게 단 한 개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신체적 특징 중 하나이다. 개인 간 혹은 인종 간 신체적 차이는 보통 여러 개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관여한 결과물인 예가 흔한데, 귀지는 예외적인 셈이다.
귀지는 평소 별 관심을 못 받는 존재다. 혹 이목을 끈다 해도 ‘더럽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그러니 “귀지가 젖어 있든 말라 있든 무슨 상관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학자나 전문가들은 귀지를 예의 주시한다. 귀지에 담긴 정보가 엄청난 까닭이다. 단순한 흥밋거리로만 접근한다면, 젖은 귀지가 나오는 한국인들 가운데는 조상 중에 시쳇말로 ‘물 건너’ 오신 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실제 통계를 보면 귀지의 ‘동서 차이’가 너무도 확연하다. 한국인이나 중국인 중 마른 귀지를 가진 사람의 비율을 많게는 95~100퍼센트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반면 흑인과 백인은 99퍼센트 이상이 젖은 귀지라는 통계도 있다.
권위 있는 학술지 <네이처 제네틱스>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일본인은 70퍼센트 정도가 마른 귀지를 갖고 있고 인도 사람들은 50퍼센트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반면 러시아 사람은 1퍼센트에 불과했고 흑인들은 아예 전무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30~50퍼센트 수준이라는 보고가 많다. 그러나 학자들도 왜 인종에 따라 젖은 귀지 혹은 마른 귀지를 갖게 된 것인지는 밝혀내지 못한 상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귀지가 최근 들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 땀샘 분비선 때문이다. 우리 몸에는 크게 두 종류의 땀샘 분비선이 있다. 가슴이나 등, 손바닥 등 전신에 분포하는 땀샘 분비선이 한 종류이고, 다른 한 종류는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주로 밀집해 있다. 귀에 있는 분비선은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분포한 분비선과 같은 계통이다.
코가 예민한 사람들은 이들 2개 종류의 분비선 때문에 생기는 땀내를 어렵지 않게 구분한다. 팔뚝이나 얼굴 같은 데서 나는 땀냄새는 고약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에서 나는 땀냄새는 대체로 역겹다. 귀지의 냄새도 사타구니 등과 같은 계통이므로 좋게 느껴질 수는 없다.
샤워나 수영을 자주 한다고 해서 마른 귀지가 젖은 귀지로 바뀌지는 않는다. 반대로 평소에 귀를 건조하게 유지해도 귀지의 형태가 마른 쪽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체질인 까닭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귀지는 자신의 인체 특성을 파악하는 길잡이 가운데 하나가 될 수도 있다.
글·김창엽(자유기고가) 2014.01.20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