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두면 마음이 바빠진다.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줄 세뱃돈을 바꾸려 은행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세뱃돈은 돈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녀들에게 덕담을 건네며 지갑에서 꺼내는 세뱃돈에는 한 해 동안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격려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가끔씩 더 이상 신권이 없다는 은행창구 직원의 말을 듣고서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던 기억도 있으리라. 우리가 평소에 돈을 좀 더 소중히 다뤘더라면 신권이 부족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2013년 한 해 동안 액면 금액으로만 2조2천억원이 넘는 화폐가 훼손되어 폐기되었다. 이 돈을 다시 발행하는 데 500억원이 쓰였다고 한다. 폐기 화폐의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행 광고 ‘1만원권 발행’ 편(동아일보 1972년 4월 15일)은 화폐를 새롭게 발행한다는 내용이다. “당행은 1972년 6월 1일부터 다음과 같이 10,000원권을 새로이 발행하여 현용 화폐와 병용하옵기 이에 공고합니다”라며 신권 발행을 알리고 있다. 화폐 발행의 기본적인 내용을 전하고 난 뒤 호칭·크기·용지·모양·색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요즘 통용되고 있는 1만원권에서는 세종대왕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1972년에 발행된 1만원권의 앞면에는 석굴암의 석가여래좌상이 들어 있고 뒷면에는 불국사 문양이 들어 있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모양과 색채에 대한 설명 부분이다. 즉, 흑갈색·암다색·암록색·등다색·회적다색·황록색·청자색·주적색·적다색·회록색과 같이 한자를 활용한 여러 가지 색채 이름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색채가 그처럼 많았던가 싶어 놀라울 따름이다. 색채의 명칭이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색채전문가를 제외한 일반인들은 너무 단순화된 색채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신권 화폐를 발행하면서 화폐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바꾼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 우리는 ‘돈돈돈’ 하며 돈의 가치를 소중히 하면서도 정작 돈 자체는 소중히 관리하지 않는 것 같다. 접고 구기고 낙서하는 등 돈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행에는 종종 훼손된 지폐를 새 돈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고 한다. 한국은행의 자료를 보면, 훼손된 지폐 가운데 면적의 75퍼센트 이상 남아 있는 지폐는 전액 교환되지만, 40~75퍼센트 사이면 반값만 쳐주고 40퍼센트 미만이면 한푼도 돌려주지 않는 것으로 나와 있다. 훼손된 지폐를 새 돈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런 기준까지 마련했겠는가.
화폐 훼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의 중앙은행은 2016년부터 플라스틱 화폐를 발행한다고 한다. 이로써 300년 이상 사용해 온 종이화폐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는 다소 성급한 진단도 나왔다. 최초 발행 비용이 기존의 지폐보다 50퍼센트 이상 비싸기는 하지만 방수 처리가 돼 있어 구겨지지 않고 쉽게 닳지 않아 발행 후의 관리 비용이 크게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언젠가는 우리도 플라스틱 화폐를 검토해 볼 수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돈을 소중히 관리하는 생활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지갑에서 세뱃돈 꺼내듯, 1년 내내 그렇게 돈을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올 설에는 자녀들에게 세뱃돈을 주면서 돈을 잘 관리하라는 덕담도 곁들이시기를.
글·김병희 (한국PR학회 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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