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전 글에서 석가모니가 그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菩提樹)의 실체가 무화과나무 종류라는 이야기를 얼핏 했는데요, 내친 김에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좀 더 할까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실로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할 식물이랍니다. 동남아시아에 체류하던 시절 저는 여러 곳의 열대림을 돌아다니며 진귀한 동·식물들을 많이 보았습니다만, 누가 제게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대상을 묻는다면 저는 주저없이 무화과나무, 그 중에서도 특히 교살자무화과나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무를 지칭할 때 어떤 나무를 두고 무화과나무(류)라고 하는 걸까요? 분 류학적으로 표 현한다면 무 화과나무란 뽕 나무과(Moraceae) 무화과나무속(Ficus )에 속한 식물들을 말합니다. 무화과나무(류)는 전 세계적으로는 1천여 종, 동남아시아와 호주에는 500여 종, 중국에는 100여 종이 있습니다. 한반도 지역에는 천선과나무, 모람, 왕모람 등 3종의 무화과나무류가 서식하고 있는데 이것 말고도 우리가 과일을 먹기 위해 외국에서 도입해 재배하는 과실수를 우리말 이름으로 그냥 무화과나무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이처럼 그다지 정교하지 못한 한글 이름 때문에 혼란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만, 제 글에서 무화과나무라고 하면 우리가 과일로 먹는 무화과뿐만 아니라 무화과나무류 일반을 지칭한다는 점만 이해해 주세요.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종류에 따라 자라는 방식이 다양해요. 덩굴성이 있는가 하면 아름드리 큰키나무로 자라기도 합니다. 생태에 따라 크게 교살자무화과(strangling fig)와 그렇지 않은 종류로 나누어 볼 수도 있습니다.
교살자무화과는 이름 그대로 숙주가 되는 나무를 죽이며 살아가는 번식 방식이 상당히 살벌하답니다. 무화과나무가 자라는 겉모양이 마치 숙주가 된 나무를 끌어안고 목을 조르는 모습이라 하여 교살자무화과라는 살벌한 이름이 붙은 모양입니다만, 실제로는 목을 졸라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숙주로 갈 햇빛을 차단하여 숙주를 도태시켜 죽이는 것으로 봐야 해요. 이런 까닭에 교살자무화과는 목재 생산업자들에게는 좋은 나무를 망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살자무화과를 포함한 무화과나무들은 실제로 열대우림의 천이 과정에서 숲을 재생시키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유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존재랍니다. 무화과나무는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거든요. 우람한 무화과나무의 그늘이 없다면 햇볕이 강렬한 열대지방의 개활지에서 다른 주요 열대수목들의 씨앗이 제대로 발아할 수도 없을 뿐더러, 열대우림에 사는 수많은 동물들에게 사시사철 풍성한 식사를 제공하는 것도 바로 이 무화과나무들이니까요.
잠시 하늘 위에서 한눈에 열대림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고요. 아마도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떼들과 그 뒤를 쫓는 다양한 원숭이 무리들, 다시 그 뒤를 따르는 거대한 동물들이 끊임없이 나무와 나무 사이로 이동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마치 맥박처럼 펄떡이는 숲속의 대이동을 촉발하는 것도 다름 아닌 풍성하게 결실을 맺는 무화과나무류들이랍니다. 만일 이 세상에 ‘생명의 나무’라는 것이 진짜 있다면, 그 원형은 바로 무화과나무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열대수목인 교살자무화과는 비록 한국에 분포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렇다고 우리에게 전혀 낯선 나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교살자무화과는 의외로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거든요. 흔히 관상용으로 가정집이나 공공장소에서 화분에 키우고 있는 인도고무나무나 벤자민인삼나무 같은 식물들이 다름 아닌 교살자무화과 종류들이랍니다. 물론 야성의 교살자무화과를 직접 알게 된다면, 얌전하게 화분 속에 들어앉은 저 왜소한 나무들을 보면서 기묘하게 뒤틀린 비현실적인 현실에 대해서 살짝 쓴웃음을 짓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글과 사진·김태영(자연생태연구가·<한국의 나무 공저자>) 201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