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향해 3대의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차례로 이륙했다. 오후 4시 10분 출발 타이항공, 4시 30분 이륙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7시 50분 날아오른 대한항공 여객기가 그들이다. 이들이 LA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각각 10시간 18분, 10시간 20분, 10시간 15분으로 엇비슷했다. 그러나 비행 거리는 대한항공 1만2,178킬로미터, 아시아나항공 1만2,058킬로미터, 타이항공 1만853킬로미터로 천차만별이었다.
3개 비행편 모두 북태평양항로(PACOTS)를 비행 코스로 선택했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타이항공의 비행 거리는 1,300킬로미터 이상 차이가 났다. 대륙간 비행이라도 1,300킬로미터는 전체 거리의 10퍼센트 안팎에 해당하니,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다.
그러나 엔진출력 속도를 알고 나면 고개를 갸우뚱할 가능성이 높다.
운항 속도는 오히려 대한항공이 시속 883킬로미터로 가장 느렸고, 타이항공은 888킬로미터, 아시아나항공이 905킬로미터로 가장 빨랐다.
“느린 속도로 더 먼 거리를 날고도 가장 짧은 시간에 도착한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비행 방정식’이다. 이같이 알쏭달쏭한 비행의 열쇠는 제트 기류(Jet Stream)에 있다.
제트 기류는 지구상의 바람들 가운데 여러모로 ‘형님’ 바람이다. 고도 10킬로미터 내외의 저 ‘위쪽‘에서 고고하게 거동하는 모양새부터가 그렇다. 매일매일 접하는 날씨가 ‘깃털’이라면 제트 기류는 ‘몸통’ 격이다.
제트 기류는 크게 보면 서에서 동으로 부는데, 직진하는 게 아니라 뱀처럼 구불구불 전진한다. 제트 기류의 평균 시속은 150킬로미터(최대 400킬로미터) 정도이고, 제트 여객기의 순항 속도는 900킬로미터 안팎이다. 이러니 제트 기류가 뒤에서 불 때와 이에 맞서야 할 때의 상황은 판이하다. 눈썰미 있는 승객들은 인천~LA 왕복편을 한번만 타봐도, 오갈 때 항로가 딴판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LA로 갈 때는 북태평양 항로가, 돌아올 때는 북극 쪽의 베링해 부근을 지나는 루트가 선호된다. 돌아오는 경로는 제트 기류의 도움이 없어 비행 시간이 갈 때에 비해 최대 두 시간 가까이 더 걸리곤 한다. 느린 속도로 더 먼저 도착하는 비결은 제트 기류를 얼마나 잘 이용하며 비행했느냐인 셈이다.
항공사 사람들은 항로를 놓고 시시각각 치열하게 ‘계산 싸움’을 한다.
국제선 비행이라는 게 1만원짜리 지폐를 1~2초에 한 장씩 공중에 뿌리는 것과 같다. 예컨대 보잉747 여객기는 10시간 비행에 15만리터에 육박하는 엄청난 기름을 소모한다. 편의상 리터당 기름값을 1천원으로 잡고 15만리터를 소모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1억5천만원이다.
하지만 경제성보다 더 중요한 건 안전성이다. 보다 눈이 예리한 승객들은 인천~LA 왕복 항로가 직선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해 낸다. 제트기류 영향이 없다 해도 여객기는 태평양 상공을 직선으로 날지 않는다.
비상착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는 까닭이다. 비상착륙까지 허용되는 시간은 180분(일부 기종 207분)이다. 망망대해 태평양을 가로지를 때, 항로상 어느 지점에서든 세 시간 안에 비상착륙 가능한 활주로를 끼고 날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니 여객기는 허공에서도 직진할 수 없다.
글·김창엽(자유기고가) 2014.01.27
도움말 국토교통부 곽영필 사무관, 대한항공 박강희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