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있는 남자에 대한 끌림이 단순히 좋은 사람에 대한 호감일까, 아니면 사랑의 시작일까? 지금 연인에 대한 나의 감정은 연민일까, 진짜 사랑일까?”
자신의 감정이 정확히 어떤 성격의 것인지 명확히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잘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아는 것이 삶의 주인이 되는 첫걸음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은 인간의 감정을 48가지로 분류한 철학자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48개의 문학작품을 연결하는 오작교 역할을 한다.
저자에 의하면 사람들이 감정 표현에 인색한 이유는 “억압적인 자본주의와 권위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현대인은 돈 버는 남편으로서, 공손한 며느리로서, 말 잘 듣는 자식과 같은 인습의 노예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내면에 잠들어 있던 감정 세포들을 하나 하나 깨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명문구들이 감정의 실체를 대면하게 하는 매개체다.
질투의 감정을 예로 들어보자. “사랑의 감정은 질투라는 감정을 낳지만, 반대로 질투라는 감정이 사랑의 감정을 낳지는 못한다. 질투는 단지 사랑의 찌꺼기에 해당하는 감정이니까.” 알랭로브그리예의 <질투>를 인용하면서 저자는 질투가 결코 ‘사랑의 증거’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질투의 바닥에는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셈이다. 질투는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드는 감정이다.”
‘야심’은 또 어떤가. 저자는 야심을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정치적·사회적 욕망을 넘어 자신을 객관적으로 자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위험한 감정이라 본다. 스피노자가 야심을 “모든 감정을 키우며 강화하는 욕망”이라고 한 것에 덧붙여 모파상의 소설 <벨아미>의 문장을 빌려온다. “더 위험한 것은, 야심이 커질수록 너무나 다양한 감정들,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감정들이 모조리 고사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야심은 아카시아나무와도 같다. 너무나 생명력이 강하고 뿌리가 깊어서 주변의 다른 나무들을 모조리 파괴하는 아카시아나무 말이다. 그렇지만 아카시아 꽃향기는 어찌나 매혹적인지!”
이외에도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개츠비의 꿈에 숨어 있는 ‘탐욕’을 찾아내고, 조지 오웰의 <1984>에서는 빅브라더의 눈을 피해 사랑을 하는 두 주인공의 ‘대담함’을 발견한다.
48개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껏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여기저기 분출구를 찾아 터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전에 읽어봤던 작품에서는 “그래, 이런 감정이었구나!”라며 무릎을 치게 되고, 아직 접해 본 적이 없는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감정을 더 알고 싶어지는 호기심이 일어난다. 저자가 주장하는 ‘감정 수업’에 충실한 학생이 돼가는 과정이다.
저자는 감정을 꺼내 삶에서 주인이 되라고 강조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무모하게 억누르는 이성이 아닌, 감정을 지혜롭게 발휘하는 스피노자의 이성으로 말이다. 책을 덮고 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좀 명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의 감정은 어떠한가?”
글·박지현 기자 2014.01.27
단신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2만5천원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문집과 일기류, 서지학 자료를 추적해 조선의 책이 조선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문화를 만들어왔는지 살펴본다. 조선시대 책의 인쇄와 유통, 중요한 서적의 탄생과 소멸 등 책과 지식생산의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주제를 망라해 조선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침묵, 삶을 바꾸다
그래엄 터너 지음 | 박은영 옮김 | 열대림 1만6,800원
침묵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 저자는 수도사, 종교 지도자, 작곡가, 배우, 심리치료사, 랍비, 죄수, 평화운동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침묵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바꿔놓았는지를 살펴본다. 불교와 기독교의 침묵 수행에서 인도 비파사나의 명상까지, 이집트 사막의 고요함에서 알프스 산의 위대한 정적까지 다양한 문화로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