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귀촌이라는 말이 흔해지기 전, 일찌감치 귀향한 친구가 있었다. 명문대 나와 그럭저럭 서울살이에 정착한 친구가 느닷없이 귀향한다고 했을 때 다들 소매를 붙잡았다. 내심 이 친구는 이렇게 세상에서 도태될 모양인가 하는 안타까움도 없지 않았다.
“야, 대기업 직원이란 게 몸 파는 창녀보다 못하다. 걔네는 산뜻하기라도 하지. 지식 팔고 시간 팔고 양심 팔고 마음 팔고, 서울살이 17년에 강남 아파트 겨우 전세 산다. 이리 살아 뭐하냐. 이제부터 편히 살란다.”
이게 귀향의 마지막 변이었다. 다들 씁쓸하여 아무 소리 못했다. 구구절절이 맞는 소리였지만 그래도 우리가 내려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무에 그리 바빠 친구가 고향에 살고 있는데도 쏘가리 잡았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겨우 얼굴을 보았다. 귀한 쏘가리회에 소주를 마시면서 친구는 난생 처음 말이 많았다. 대학 갈 생각도 별로 없는 시골 아이들 상대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친구는 밤 9시면 일찌감치 학원 문을 닫고 아들놈 친구 삼아 섬진강 아무 데나 쏘다니며 달빛 아래 낚시를 한다고 했다. 낚시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어 식구끼리 처리하지 못한 것들은 인근 매운탕집에 넘기기도 하고 것도 귀찮아 집에 떡하니 수족관까지 마련해 두고 있었다. 부럽기 그지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래도 반 서울것이 된 우리들은 자식 교육이 마음에 걸렸다. 친구는 그 또한 태평이었다.
“명문대 나오면 뭐하냐. 어차피 월급쟁이지. 요즘 우리 애 신났다, 노느라.”
노느라 방학 숙제도 못한 아들이 개학을 앞두고 오만상을 쓰고 있더란다. 그래 친구가 참으로 현명한 답을 제시했다.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일번, 숙제 안 하고 신나게 혼난다. 이번, 오늘부터 죽어라 숙제한다. 삼번, 전학 간다.”
아이는 당근 희희낙락, 삼번을 선택했고, 친구는 두말않고 전학을 시켰다. 다들 어안이 벙벙했으나 이상하게 마음은 통쾌하여 실실 웃음이 나왔다. 그렇구나. 사람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기를 쓰고 살았네.
시골 내려와 참으로 할 일 없는 세월을 살고 있다. 개밥이나 주고, 강아지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음박질치고, 여름이면 손바닥 만한 텃밭이나 일구고, 달밤에 달이나 보러 나온다. 요즘에는 군불 지피는 일이 하나 늘었다. 처음에는 찬바람 쐬며 군불 지피는 게 골치가 지끈거리도록 귀찮더니 요즘은 것도 취미가 되었다. 정히 심심하고 외로운 밤에는 달구경 별구경 핑계로 소줏병 들고 아궁이 앞으로 나간다. 개는 저 좀 만져달라 칭얼대고, 불은 활활 타오르고, 알코올이 핏속을 돌며 몸을 데우고, 그러거나 말거나 달은 높이 솟는다.
서울서는 늘 나를 팔고 산다. 지식을 팔든 물건을 팔든 자존심을 팔든. 여기서는 팔 것 하나 없다. 내 지식 사 줄 사람도 없다. 그러니 알아주는 이도 없다. 처음에는 무색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아주는 이 없으니 더욱 자유롭다. 사회적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불가에서는 독각(獨覺)이라 한다던가. 자연에 파묻혀 자연의 일부가 되니 예서 보인다. 서울에는 없던 것이다. 스스로 버렸으니 도태도 아니다. 도태면 또 어떤가. 서울서는 버려졌을 못난 개들, 여기서는 제 맘대로 사방 쏘다니며 봄밤이면 나비와 희롱하며 사는데.
글·정지아(소설가) 201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