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난 소백산 자락길 7구간 ‘십승지 의풍옛길’에 봄을 시샘하는 눈이 내렸다. 십승지 의풍옛길은 충북 단양군 영춘면사무소에서 시작해 동대리, 의풍옛길을 지나고 베틀재를 넘어 의풍리, 김삿갓묘로 이어지는 18.2킬로미터 거리의 길이다.
시작점 영춘면사무소부터 걷지 않고 종점 김삿갓묘에서 시작했다. 영월로 귀농한 지 3년이 되는 초보 농부와 그의 아내가 함께 걸었다. 초보 농부의 집 가까운 곳에 3도(경상도·충청도·강원도)가 만나는 길이 있다고 해 무척 흥미로웠다. 그래서 부부의 새 고향이 된 영월부터 걷게 됐다.
골짜기를 깨우는 물소리에 봄이 가득
소백산 자락길 7구간 종점 표지판은 노루목교 근처에 있다. 김삿갓로에서 김삿갓문학관으로 이어주는 제일 큰 다리가 노루목교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오른쪽을 잘 살펴보면 표지판과 무인 안내소가 있다. 무인 안내소에는 단양 구간 지도가 배치돼 있는데, 우리가 간 날은 텅 비어 있었다.
지도는 포기하고 길을 나섰다. 노루목교부터 시작해서 김삿갓로를 따라 단양 의풍1리까지 2.4킬로미터를 걸었다. 도로 옆의 협소한 길이다. 차가 많이 다닐 때는 걷는 게 불편하리라. 다행히 이른 시간이라서 차가 띄엄띄엄 다녔다. 길은 김삿갓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골짜기를 깨우는 물소리에 봄이 가득 담겼다. 그러나 계곡 바위에는 여전히 얼음이 엉겨있다. 하지만 조만간 봄물이 얼음을 녹여줄 것이다.
소백산 자락길은 전체 길이가 141.6킬로미터로 모두 12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경북 영주시에서 시작해 충북 단양군, 강원 영월군, 경북 봉화군을 거쳐 다시 영주시로 돌아오는 코스다. 1·2자락, 3자락 죽령마루까지가 영주다. 죽령마루 너머부터 4·5·6·7자락은 단양이고, 7자락 끝인 김삿갓묘가 영월이다. 8자락 3도접경공원에서 단양·영월·영주가 만나고, 다시 8자락에서 영주가 이어진다. 9·10자락에서 봉화길 일부 구간을 걷고, 11·12자락을 끝으로 완주가 이뤄진다. 결코 짧지 않은 길이다. 12구간을 모두 걸으면 39시간이 걸린다. 하루 8시간씩 잡아 5일은 부지런히 걸어야 종점에 닿는다. 욕심 부리지 않고 한 자락씩 차근차근 걸으면 자락(自樂)이라는 이름처럼 스스로 즐기며 걸을 수 있다.
노루목교부터 30여 분 걸으니 삼거리가 나왔다. 삼거리는 영월·단양·영주로 갈라진다. 영월 김삿갓로를 등지고 서면 오른쪽이 단양, 왼쪽이 영주 가는 길이다. 의풍1리에 소백산 자락길 전체 지도가 있고, 지도에 현 위치가 표시됐다. 그런데 8자락 시작점은 김삿갓묘가 아니라 의풍마을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지도가 잘못된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확인 결과 맞았다. 소백산 자락길 4·5·6·7구간은 단양군청이 코스를 만들었는데, 도보 여행자가 의풍마을에서 끝내는 것보다 김삿갓묘에서 끝내 관광과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단다. 8자락은 (사)영주문화연구회에서 코스를 만들었고, 옆길로 샌 김삿갓묘는 뺀 것이다. 주체가 달라지자 생각이 다르고 길도 달라졌다.
소백산 자락길 지도 뒤에는 ‘의풍1리 마을 자랑비’가 눈에 띈다. 자랑비에서 이 구간 이름인 ‘십승지 의풍옛길’에 대한 내력을 유추할 수 있다. 고려 말부터 <정감록>을 믿는 사람들이 난을 피해 이 곳으로 들어와서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정감록>에는 전쟁이나 재앙이 미치지 않는 십승지(10곳)를 언급했는데, 그 중 한곳으로 이 곳을 꼽았다. 양백지간(兩白之間), 소백과 태백의 사이에 자리 잡은 까닭에 피난처 중 으뜸이요 삼풍지간(三豊之間), 물·산·땅이 모두 좋으니 십승지가 아닐 수 없다는 요지다.
우리는 마을 유래를 찬찬히 보고 있었다. 때마침 마실 가려고 집을 나서던 양재향(76) 할머니를 만났다. 의풍마을은 행정구역이 단양이지만 생활권은 영월이다. 할머니는 병원이나 시장을 영월로 다녔다. 그런데 의풍리와 영월을 오고 가는 버스가 없다. 우리는 의풍리가 3도가 만나는 곳인지 할머니께 여쭸다.
할머니는 “의풍리 소들은 3도 풀을 먹는다!”라고 답하며 곱게 늙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3도가 얼매나 가까워. 저 뒷산 넘어가 영월 미사리인데, 거기서 여기로 시집 왔어. 요맹큼밖에 못 왔어!” 동글동글한 사투리로 산 하나 넘어오는 길, 요만큼밖에 못 왔단다. 세월이 지나서야 요만큼 된 것이지 새색시가 산 하나를 넘어왔을 그 시절은 떨림과 두려움으로 천리길은 됐을 것이다.
초보 농부가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는 귀농 몇 년이 돼야 농부 소리 들으려나?” 그의 아내가 “여보, 우리는 요맹큼밖에 못 왔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우리는 할머니와 웃음꽃을 피우고 인사를 나눴다. 영주로 가는 아스팔트 도로 위 녹은 눈에 아침 햇살이 반사돼 은빛으로 빛났다. 할머니는 그 길을 따라서 영주로 마실을 간다. 부부는 할머니와 정반대 길을 걸었다.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 의풍리에서 베틀재까지는 3.6킬로미터로 구불구불 오르막 길이다. 의풍리에서 영춘면으로 넘어가는 일반 도로다.
베틀재는 충북·경북·강원 3도를 잇는 고갯길이다. 소백산 형제봉 1,177미터와 마대산 1,050미터 사이 해발 651미터에 자리한다. 그 옛날 봇짐 장수들이 소금짐을 지고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 이 재를 넘어 경상도와 강원도에 소금을 팔았다.
차가 다닐 수 없게 만든 임도, 의풍옛길
베틀재에서 영춘면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200미터 정도 걸어 내려가면 왼쪽에서 의풍옛길이 시작된다. 무인 안내소에 소백산 자락길 단양 구간 지도가 넉넉하게 놓여 있다.
의풍옛길은 임도이다. 입구는 차가 다닐 수 없게 막아놓았다.
김삿갓묘부터 베틀재까지 보지 못했던 붉은 끈이 간간이 나무에 묶여 있다. 길은 샛길이 없는 한 길이다. 무척 호젓하다. 사방팔방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데,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혹여 낙엽을 뚫고 올라오는 복수초를 밟을까 조심스럽게 걸었다. 영춘면사무소에서 출발하면 오르막 길이지만 베틀재에서 출발하면 편안한 내리막 길이다. 버들강아지가 보송보송한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두릅나무·자작나무·참나무는 아직 봄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두릅나무 뿌리에 이제 봄이 도착했을까? 잎이 돋지 않은 덕분에 나무 사이로 건너편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마대산과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병풍을 펼쳐놓은 듯 둘러서 있다. 산 중턱 베틀재에서 영춘면으로 구불구불 기어가는 도로에 트럭이 달렸다.
온통 갈색의 숲에서 간간이 작은 초록잎이 눈에 띄었다. 초록색이 너무 고와서 저절로 발이 멈췄다. 그런데 잎이 아니고 고치다. 숲이 무성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어떤 곤충의 고치인지 무척 궁금하다. 새소리를 들으며 가뿐하게 걸었다.
의풍옛길 입구를 벗어나 동대리로 향했다. 무인 안내소에서 가져온 지도에는 의풍옛길 입구에서 동대리까지 거리가 2.7킬로미터이다. 그런데 임도통행제한구역 인근의 표지판에는 3.1킬로미터로 표기돼 있고, 의풍옛길 입구에는 3.6킬로미터로 적혔다.
그리고 동대리 표지판에는 의풍옛길 입구 2.7킬로미터로 씌어 있다. 의풍옛길 입구에서 동대리로 이어지는 길도 일반 도로다. 7구간은 절반 가까운 길이 도로였다. 도로 옆의 협소한 길들을 걸어야 했다. 이 구간들은 버스로 이동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동대1리~영춘면사무소 산길은 호젓
동대1리로 안내하는 자락길 표지판은 전봇대에 붙어 있다. 드디어 동대1리에서 도로를 벗어났다. 수발교 근처 전봇대 옆에 영춘면사무소 방향 5.9킬로미터가 적힌 표지판이 있다. 마을 집들을 등지고 북쪽으로 올랐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오솔길이 산으로 나 있었다. 오솔길 아래는 밭이다. 길이 한적하다는 생각이 들 때에 ‘119 소백산 자락길 위치 표시판’이 꽂혀 있다. 동대리 안내판에서 다음 안내도가 나올 때까지 1킬로미터 거리다. 이때부터는 산길이다. 영춘면사무소까지 4.9킬로미터, 산길은 약 3.3킬로미터 구간으로 소나무길이 이어졌다. 길은 느릅실로 가는 콘크리트포장 도로를 만났다. 이제부터 콘크리트 포장 길로 계속 내리막이다. 동쪽으로 온달산성 한 자락이 보였다. 영춘면사무소가 저만치에 있다. 종점을 향한 부부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체력이 약하거나 일반 도로를 걷고 싶지 않은 분들에게는 베틀재에서 시작해 영춘면사무소까지 걷는 코스를 추천한다. 계속 내리막 길이 이어져서 덜 힘들다. 영춘면과 의풍리를 오가는 버스가 베틀재를 넘는다. 버스를 타고 가다 베틀재에서 내려 걸으면 된다.
글과 사진·김연미(여행 칼럼니스트) 2014.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