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부모님들은 자녀의 학자금을 마련하느라 애들 쓰셨으리라. 스스로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방학 내내 알바를 ‘뛴’ 학생들도 생각보다 많았으리라. 반값 등록금을 비롯해 학자금에 대한 이런저런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이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해법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1960~70년대에 대학을 ‘상아탑’이 아닌 ‘우골탑(牛骨塔)’으로 지칭했던 저간의 사정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부모님의 등허리가 휠 정도로 힘들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국민은행(현 KB국민은행)의 광고 ‘학자금 대출’ 편(한국일보 1964년 3월 19일)을 보자. 이 광고에서는 학자금 문제를 손쉬운 은행 대출로 해결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학비 마련에 얼마나 고생하셨읍니까? 요다음 학비 조달에는 지금부터 국민은행을 이용하십시요”라는 헤드라인을 쓴 다음 지면을 45도로 경사지게 나누어 두 가지 경험담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겪어본 사람의 경험담을 증거로 활용하는 전형적인 증언형(testimonials) 기법을 적용한 광고다. 그 시절의 광고 제작자들이 증언형 기법을 알 리 없었겠지만 저절로 지혜롭게 체득하지 않았을까 싶다. 좀 길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증언 내용을 인용해 보자.
“올봄에 대학과 중학에 두 자식을 보낸 어미입니다. 바깟(바깥) 양반의 월급 수입에만 의존하든 저이들이(저희들이) 그분의 금주(禁酒) 선언과 함께 그날부터 매달 760원씩을 붓기 시작하였지요. 24회를 붓고난 지난 2월에 만기가 되어 2만원의 목돈을 찾게 되었읍니다. 밤낮으로 걱정되는 두 아이의 등록금을 한꺼번에 치르게 되니 마음이 후련합니다. 이렇게 서민층을 위하여 편리한 금융제도를 마련한 국민은행이 고맙기만 합니다.”
“저는 올봄에 시내 K대학 3학년에 유급한 학생입니다. 반년 전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형편을 생각하여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학업을 보충하기로 하였읍니다. 그러나 가정교사 수입으로는 등록금을 한꺼번에 마련하기란 어려웠지요. 생각 끝에 국민은행의 서민금융안내소를 차저가(찾아가) 의논하였읍니다. (중략) 월부 목돈을 797원씩 4회(넉달)를 붓고 지난 2월에 만원을 사전에 대부받어 등록금을 마련하였읍니다. 가난한 학생들을 위하여 이러한 월부 금융제도가 많이 발전하면 좋겠읍니다.”
두루 알다시피 국민은행은 서민경제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정부 시책에 따라 1963년 2월 1일 설립되었다가 1998년에 시중은행으로 전환되어 지금에 이른다. 당시 정부에서는 은행에 서민들의 학자금 대출을 독려했다. 은행은 바로 대출해 주지 않고 일정 기간 동안 월부금을 ‘붓게’ 한 다음에 대출을 해 주었다. 은행에서도 특별히 밑질 게 없었으니 서로에게 좋은 제도였다. “편리한 금융제도를 마련한 국민은행이 고맙기만 하다”거나 “월부 금융제도가 많이 발전해야 한다”거나 하는 주장은 좀 남세스럽지만 애교로 봐 줘야 할 것 같다. 1960년대의 학자금 대출 광고에서 ‘우골탑’의 흔적을 슬쩍 엿보면서 앞으로 금융권에서 더 낮은 저리로 학자금을 대출해 주는 파격적인 금융상품을 개발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아닐까?
글·김병희(한국PR학회 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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