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은 달콤할지언정 그 끝은 치명적인 예가 많다. 금기된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신부나 승려가 주인공인 애정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최근 들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는 바이러스의 ‘행각’이 그렇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략 2003년부터 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H5N1 바이러스의 횡행에는 ‘애정 행각’이 개입돼 있다. 바이러스가 불륜의 주인공이라니? 하찮은 곤충은커녕 온전한 생물 대우조차도 못 받는 바이러스를 두고 ‘정사’ 운운하는 게 말이나 될까? 최근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바이러스의 행태를 보면, 섹스(sex)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다. 전문가들이 흔히 ‘바이러스 섹스(virus sex)’라고 부르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에게 인종이 있고, 민족이 있고, 집안이 있듯 바이러스에도 다 계통이 있다. 헌데 ‘국제결혼’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바이러스도 드물지만 딴 종자와 몸을 합치기도 한다. 다른 부류 바이러스와의 만남은 일종의 ‘돌연변이’를 탄생시킨다. H5N1도 서브타입(subtype)이 다른 두 종류의 바이러스가 결합해 나온 것이다.
점잖게는 ‘혼혈 바이러스’의 탄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종 바이러스의 결합은 ‘몸을 섞는다’는 속된 표현이 보다 정확한 묘사다. 바이러스는 핵산, 즉 흔히 DNA·RNA 등으로 불리는 물질과 약간의 단백질로 이뤄진 ‘것’이다. ‘것’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생명체의 기본 핵심물질인 핵산은 있지만 혼자 힘으로는 자손 번식을 할 수 없는 등 생명체로서는 ‘결격’ 사유가 많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한마디로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존재다.
그럼에도 ‘섹스’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건 새로운 핵산 서열을 가진 바이러스가 이종 바이러스 간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탓이다. 사람이든 다른 동물이든 혹은 식물이든 생명체들의 섹스 결과물, 즉 자손은 새로운 핵산 서열의 탄생을 의미한다. 사람을 예로 들면 엄마·아빠의 결합에 의해 태어난 우리 모두는 핵산 차원에서는 부모와 다른 DNA 서열을 가진 생명체이다.
세상에는 지구상의 민족 숫자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겉모양만 대충 보면 실처럼 생긴 것도 있고, 다면체인 것도 있고, 나선형으로 꼬인 것도 있지만 세부적으로 따지고 들면 종류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종류가 다양하지만 각자 ‘살아가는 방식’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사람 체내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는 사람 체내에서만, 돼지 몸에 사는 바이러스는 돼지 몸에서만 살 수 있다. 식물인 담배에 증식하는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로 해당 식물에서만 주로 증식한다.
최근 들어 변형 바이러스들이 자주 출몰하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시원한 대답을 내놓는 전문가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변형 바이러스는 ‘우연에 의한 진화’의 소산물이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사람 몸에서도, 닭이나 다른 조류의 몸에서도 증식할 수 있다면 자신들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한층 유리할 것이다. ‘위험한 사랑’이 때로는 진화에 유리한 도구로 활용되는 셈이다. 물론 이런 바이러스에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극도의 위기감이 없을 수 없다. 2009년 유행했던 돼지 독감 바이러스(H1N1)는 각각 돼지·사람·조류에 독점적으로 기생하던 세 가지 바이러스들이 유전자 섞기를 통해 새로운 바이러스를 낳은 결과이다.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변형 바이러스의 기승에 사람들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좁은 우리에 수천 마리씩 닭이나 오리를 가둬두고 키우는 밀식 축산은 이종 바이러스들이 ‘밀회’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늘려준다. 변형 바이러스의 불륜을 필연으로 바꿔놓는 게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다.
글·김창엽(자유기고가) (도움말 : 서울대 의대 오명돈 교수)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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