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언제 처음 잡아봤니?” 이성과 데이트 중인 젊은이들에게 흔히 묻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남녀가 손을 잡는 것은 신체 접촉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어 적지 않은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손 잡는’ 행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접촉이 이뤄지는 손이라는 게 신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탓일 것이다. 하지만 생리학적으로는 손을 잡는 게 그다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전신을 만지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사람의 몸은 물이 채워진 풍선과도 같다. 한 쪽을 살짝 누르면 풍선 전체에 그 여파가 미친다.
오묘한 ‘압력의 과학’에서 우리 몸 또한 예외가 아닌 것이다.
사체를 부검하는 검시관들만큼 몸의 압력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검시관 두 사람이 있다 치자. 한 사람이 사체의 폐 상부를 살짝 누르면 다른 검시관은 골반을 가로지르는 얇은 막 부위에서 압력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도 사람 몸은 압력에 반응한다. 진한 포옹 또한 접촉면인 가슴이나 등만 누르는 게 아니라 전신에 자극을 주는 행위인 이유이다.
압력은 생활 속에서도 큰 힘을 발휘한다. 대표적인 예가 유압이다. 유압은 인류가 압력을 가장 잘 활용한 사례로 꼽아도 그다지 틀리지 않다. 유압 장치가 없었다면 현대 문명은 오늘날과는 전혀 딴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압은 작은 주사기와 굵은 주사기의 끝이 가는 호스로 이어진 장치를 상상해 보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두 개의 주사기와 고무 호스에는 오일이 가득 차 있는데, 지름이 작은 주사기에 힘을 가하면 유압 때문에 큰 주사기 끝에서는 훨씬 강한 힘이 발생한다. 작은 주사기를 누를 때는 힘이 별로 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큰 주사기 끝에서는 힘이 증강되는 것이다. 유압 장치는 ‘힘=압력×면적’이라는 자연계의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 똑같은 압력을 가했음에도 굵은 주사기의 예처럼 단면적이 늘어나면 힘이 커지는 것이다.
자동차 브레이크는 생활 주변에서 유압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몸무게 50킬로그램도 안 되는 여성 운전자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중량 1톤이 넘는 차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건 순전히 유압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레이크 패드와 바퀴의 로터 간격은 넓어도 1밀리미터를 넘지 않는다. 브레이크 페달을 5~10센티미터 깊이로 밟아주면 무거운 브레이크 패드가 로터를 압박하면서 바퀴가 돌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브레이크 파열은 대형 자동차 사고의 주범인 경우가 많다. 이때 ‘파열’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오일이 채워진 가느다란 관 혹은 호스에 이상이 생겨 오일이 새는 상황을 가리킨다. 토목공사의 필수 장비인 굴삭기도 유압으로 작동하는 대표적인 중장비이다. 유압 장치는 등장한 지 200년이 넘은 오래된 발명품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기술 진보는 여러 과학기술 가운데도 가장 더딘 분야 중 하나이다.
유압 장치는 인류사를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지만 앞으로도 속성상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래된 미래기술’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사회적·기술적 파급효과는 지금까지의 기여로만 봐도 노벨 과학상을 몇 개씩이나 거머쥐어도 부족할 정도다.
압력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 가운데 가장 미묘하면서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한 예로 고기압과 저기압이 있어 바람이 불고 날씨의 변화가 생긴다. 그러고 보면 압력은 인간 생활의 필수 요소이다.
글·김창엽(자유기고가) 2014.03.17
(도움말 : 한국기계연구원 정동수 박사, 대덕대학 자동차학과 문병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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