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3월 1일·춘분. “봄은 언제부터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 대답해야 할까. ‘정답’을 내놓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입춘도 맞고, 3월 1일도 틀리지 않고, 춘분도 답이 될 수 있는 탓이다. 달력으로 계절을 나누면 봄은 통상 3~5월이므로 그 시작은 3월 1일이다. 하지만 국내 달력 정보를 총괄하는 정부 출연연구소인 한국천문연구원은 봄의 시작을 똑부러지게 정의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예컨대 입춘이 될 수도 있고 음력 정월을 봄의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이나 적잖은 유럽 국가에서는 3월 21일께, 즉 춘분을 봄의 시작으로 여긴다. 북반구 온대지역을 기준으로 할 경우 이 시기 날씨가 대체로 가장 ‘봄 같아지기’ 때문이다.
아시아권에서는 입춘을 봄의 시작으로 간주하는 곳도 적지 않은데, 입춘과 춘분 사이에는 대략 한 달 반이라는 격차가 있다. 봄이라는 시기에 대한 사회적 통념 차가 나라마다 상당한 것이다.
우리 기상청도 그 나름 계절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다. 기상청의 계절 기준은 천문학적 관점과는 다르다. 말 그대로 천문이 아니라 기후가 잣대여서 그렇다. 기상청이 최근 발간한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봄의 기준은 이렇다. “1일 평균기온의 9일 이동평균값이 섭씨 5도 이상으로 올라간 뒤 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첫번째 날을 봄의 시작으로 친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기준이다. 다소 부정확하지만 단순하게 얘기하면, 일정한 수준으로 온도(섭씨 5도)가 오른 뒤 그 수준 이하로 9일 동안의 평균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 날을 봄의 시작으로 한다는 말이다. 이쯤 설명을 들으면, 소상하게는 몰라도 아무튼 “봄이 시작되는 날이 있겠구나”하고 짐작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기상학적으로 봄이 시작되는 날짜는 없다. 기준 온도를 10년 동안의 평균치로 잡는 데다 ‘이동값’을 쓰기 때문이다. 기상학적으로는 이론적인 봄의 시작점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지나간 나날들, 예를 들면 2013년이나 2001년 봄이 시작된 날짜를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봄은 최소한 네 종류쯤 존재한다. 기상의 봄, 천문의 봄, 달력의 봄, 체감의 봄이 그것이다. 이들 가운데 천문의 봄과 달력의 봄은 국제적으로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천문의 봄은 24절기를 통해 이해될 수 있다. 달력의 봄은 익히 알려진 대로 3~5월이다.
그러나 기상의 봄과 체감의 봄은 지역마다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세계기상기구(WMO)의 계절 구분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나라마다 기상의 봄을 잡는 기준을 달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느끼는 체감의 봄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4개의 봄 가운데 어느 기준을 택하든 1개 계절의 지속기간을 3개월로 잡는 것은 온대지방에서는 대체로 공통적이다.
봄이든 여름이든 혹은 가을이든 겨울이든, 계절은 참으로 ‘애매모호’한 존재이다. 이는 지구상의 어느 국가도 계절을 공식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규정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엄밀히 말하자면 봄은 한 해에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계절도 아니다. 한 예로 체감 날씨로 친다면 겨울이 첫 계절일 수도 있다. 한 주의 시작을 월요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 달력에서는 일요일로 표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정하기 나름, 즉 어떤 잣대를 가져다 대느냐에 따라 계절의 시작은 달라질 수 있다.
글·김창엽(자유기고가) 2014.03.10
(도움말 : 기상청 허진호 통보관, 조구희 주무관, 한국천문연구원 민병희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