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하고도 며칠이 흘렀다. 뜻밖에도 해가 있을 때 퇴근한다. 다행히 미세먼지와 황사도 걷혔다. 겨우내 타던 버스 대신 다른 노선의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싶다. 뒷산으로 이어지는 언덕을 일부러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중턱을 길고 느리게 이어가는 길은 얼마 전 이름이 붙여졌다. 고산길. 처음 이 길의 이름을 보았을 때 퍼뜩 고산자 김정호의 이름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길을 어깨에 얹은 산의 이름이 노고산임을 깨닫고는 이내 웃었다. 아마도 동네를 길로 만들 듯이 노고산을 고산으로 줄였나 보다. 아닌가? 확인하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길에 의미를 붙이고 한정하는 순간, 그 길은 하나다. 하지만 그냥 두면 길은 무수히 늘어나리라. 더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제대로, 온전히 검증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왜 아이들은 여전히 힘들게 공부해야 하는가. 왜 그렇게 공부하고도 즐겁지 않은가. 아이들 문제만도 아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도 행복하지 않은가.
예전에는 이름도 없던 고산길을 걸으려면 노고산을 올라야 한다. 서강대를 품고 숭문고를 자락에 두고 있는 노고산, 그 언저리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시네마 파라디소’의 극장이 있었다. 대흥극장. 이제는 거대 글로벌 기업의 수리센터로 바뀐 곳에서 대흥극장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비밀스러운 행복이다.
대흥극장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길 건너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고산길이 나온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숨이 살짝 가빠 오는 벽 같은 길을 거쳐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걷다 보면 내 몸 속에 갇힌 또 다른 내 몸들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깨닫는다. 웬만한 골칫거리 따위도 그냥 사라지고 만다.
언덕을 넘어가면 이제 고산길을 거꾸로 만나게 된다. 발끝에 집중됐던 시선들이 길 하나로 풀려나가는가 싶다가 사방으로 풀리는 순간이다. 거대 도시의 크고 작은 빌딩들에 어둡게 둘러싸인 가운데 오래된 동네의 모든 것들을 찬찬히 본다.
왼쪽으로 글자가 떨어진 유리창의 국악연구소. 서도 민요와 남도 민요, 장구와 국악, 판소리가 식당 메뉴처럼 붙어 있다. 집 앞에서 잠깐 멈춘다. 생선을 담았던 듯한 스티로폼 박스들, 말라 비틀어진 흔적의 식물이 담겨 있는 화분 두엇, 겨우내 물도 없이 얼어붙었다 풀렸다를 반복했을 물뿌리개 하나. ‘중요무형문화재’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문득 예인의 소재와 근황이 몹시도 궁금해진다.
3층방 2개를 임대한다는 휴대폰 번호 광고가 펄럭거린다. 짓다가 만 채로 방치된 건물 한 귀퉁이가 봄바람을 쌀쌀하게 버텨낸다. 쌓다가 그만 두었다고 해도 이 정도 봄바람에 무너질 까닭은 전혀 없다. 하지만 늘 이런 풍경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리어카와 모래더미, 방수제와 청소 도구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그 옆 건축 자재상의 소란스러움이 마음을 더 흔든다.
해는 어느덧 서녘 하늘을 멀리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사념에 갇혀 걷는 산책자의 발 아래 거대 도시의 부도심이 펼쳐져 있다. 서쪽으로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길, 길은 하나인 듯 보이지만 수많은 골목들을 뿌리처럼 도시 한가운데로 내리고 있다. 그 길을 무수히 많은 이들이 오르고 내리며 도시를 움직이고 있다.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골목마다 서 있는 점집들의 깃발이 다시 펄럭인다. 어둠을 향해 달리는 고양이 몇 마리들이 보인다. 얼어붙었던 화분들 속의 뿌리들은 다시 하루 낮과 밤만큼 몸을 풀 것이다.
그렇다. 이렇게 봄은 왔고, 다시 갈 것이다. 눈앞의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봄이면 좋겠다. 따져야 할 것들과 따지지 말아야 할 것들을 분별하는 지혜를 얻는 봄이라면 더욱 좋겠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을 되뇌는 대신 봄다운 봄을 한껏 만끽하고 싶다. 봄은 봄이다.
글·허병두(숭문고 교사·책따세 대표) 2014.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