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새학기가 시작된 고3 교실, 눈빛들이 간절하다. 처음 맞닥뜨린 거대한 장애물을 넘어서고자 모두들 진짜 열심히 공부한다. 그들은 교사를 구원 투수로 믿고 의지한다. 어느새 교사들도 고3 학생들과 같이 변한다. ‘내가 너희들을 승리의 주역으로 만들어주마.’ 무엇인가를 해 보겠다는 의지들로 온통 가득하다.
유감스럽게도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3월 중순에 치러지는 첫 모의고사를 보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문제를 푸는 학생들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진다. 시험을 다 본 뒤에 정답지를 확인하면서 긴장감은 절정에 이른다. 그리고 순식간에 열패감으로 바뀐다. “아, 난 안돼!”라는 탄식과 신음이 교실 가득히 괴어든다. 이런 식으로 3월부터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매년 늘고 있다.
3월에 모의고사를 보는 까닭은 출발점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다.
이 시험의 성적은 수능 성적과 비슷하다. 고3의 성적은 적어도 3개월 정도, 이를테면 ‘백일 기도’를 해야 올릴 수 있는 법이다. 3월 모의고사 성적은 지난해 수능 이후 대략 100여 일간 어떻게 공부해 왔는가를 보여주는 잣대가 된다. 최근까지 열심히 해 온 학생이라면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것이라는 점에서 비슷하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3월 모의고사 성적=수능 성적’ 식의 공식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상관성’을 ‘필연성’인 양 너무나 강조하다 보니, 막상 3월 모의고사를 보자마자 포기하는 학생들이 나타난다. 가뜩이나 공부하기 싫은데 성적이 안 나오니 좋은 핑곗거리로 삼아 자발적(?) ‘대포(대학 포기자)’가 되는 것이다.
더욱 결정적인 문제는 고3 교실의 학생과 교사 모두가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오해하는 데 있다. 공부란 자신을 넓고 깊게 만들고 키워서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드는 노력이다. 그런데 3월 모의고사 성적순대로 대학 입시의 성패가 결정된다는 말에 현혹돼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과 세상을 위한 진정한 공부를 하지 않으니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3월 모의고사 성적이 잘나왔다고 희희낙락할 고3들도 매우 걱정스럽다. 이런 형태의 시험을 잘보았다고 해서 진짜 실력이 있다고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믿기 어렵다면 이번에 치러진 시험 문제를 직접 확인해 보라. 모두 45개인 국어 문제 가운데 36개가 ‘적절한/적절하지 않은’ 것을 찾으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작년 3월 모의고사의 경우는 43개나 됐다.
좀 더 분명히 말해 보자. 수능시험 형태의 객관식 문제를 풀 때는 새로운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다 풀었다고 해서 새로운 상상이나 창조, 지식 등이 창출되지도 않는다. 그냥 지문 안에 있는 것을 찾는 활동이며, 다만 이를 정답으로 쉽게 찾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걸림돌을 만들 뿐이다.
국어 교사로서 정말 가르쳐주고 싶은 언어 능력은 이러하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늘 글을 즐겨 읽는 태도를 지녔으면 좋겠다. 울적하면 시를 읽고 심심하면 소설을 읽고 일상의 갈피에서 수필을, 험한 구비에서 희곡을 읽는 제자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고3 교실의 교사는 단순히 인생을 승부로 보는 구태의연한 입시 전쟁의 구원 투수가 아니다. 피폐해진 우리네 삶을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로 가는 동반자다. 기성의 벽에 어느새 갇히고 벽을 만들어온 우리 교사들이지만, 푸른 영혼들의 순수함과 생동감이 더해진다면 현실을 아름답고 훌륭하게 만들 수 있는 길라잡이로 아직 건재하다.
자, 푸른 영혼의 친구들! 대학의 문을 가뿐히 통과해 세상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길까지 함께 터보자!
글·허병두(숭문고 교사·책따세 대표) 2014.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