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농부 반 큐레이터 정광하·오남도 부부
육군훈련소가 자리한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 목·금·토요일 3일만 문을 여는 식당이 있다. 식당 주인은 농부이자 요리사인 정광하·오남도 부부이다. 귀농 11년 차인 부부는 직접 농사지은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사람들에게 농업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이 식당은 누리소통망을 통해 알려지면서 외지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
남편 정광하 씨는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하고 도시에서 일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있는 한국 회사에서 일을 했다. 같은 과 선후배로 만난 아내 오남도 씨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에서 산 지 3년 차에 아이가 생겼고 주변에서는 영주권도 얻고 시민권도 신청하라며 독려했다. 하지만 부부는 미국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출산했다. 가족을 더 자주 만나고 싶고, 농사를 짓고 싶어서였다.
“미국에 살면서 가족들이 얼마나 소중한 울타리였는지 알게 됐고 많이 그리웠다.” 오남도 씨의 말이다.
내 속도로 살아가기
정 씨는 “땅을 구하면 나무를 심고 천천히 농장을 가꿔가면서 아이가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길 바랐다”고 말했다. 부부는 차근차근 자신들의 속도대로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도시살이를 하면서 농사를 꿈꾸던 시절 수첩 귀퉁이에 메모해둔 ‘꽃비가 내리는 과수정원’이라는 뜻의 ‘꽃비원’으로 농장 이름을 지었다.
“풀밖에 없던 농장에 1년생 사과나무, 배나무 묘목을 심었다. 3년이 지나니 우리 키보다 훌쩍 자랐다. 봄바람에 넘어갈까, 태풍에 떨어질까 노심초사했던 시간들이 큰 보람으로 돌아왔다.” 오 씨는 지금도 첫 수확의 기쁨을 생생히 기억한다.
부부는 농사짓는 것을 가장 좋아하지만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다양한 협업을 한다. 도시에서 요리워크숍이나 팝업 식당(임시 식당)을 열고 식문화에 관심 있는 소비자를 만나기 위해 행사를 기획한다. 건강하게 농사짓는 농부들과 장터를 열기도 한다.
도시와 농촌이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누리소통망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부부가 반 농부 반 큐레이터로 농사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방법이다. 2022년에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이사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활동한 공로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부부는 그동안 흙에서 자연에서 얻은 이야기를 담아 <시골살이, 오늘도 균형>이라는 책을 펴냈다. 책에는 부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삶의 균형을 찾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부는 약 6611㎡(2000평) 땅에서 농사짓기에 적합한 균형, 일과 삶이 고되지 않을 만큼의 여유를 찾았다고 말한다.
삶의 균형을 찾아가기
이들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농사의 원칙은 ‘계절을 거스르지 않은 것’이다. 정 씨는 “농사는 자연의 일부를 취하기도 하지만 생태계의 순환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자연과 가까운 방식으로 다양한 채소를 농사짓고 있다”고 설명한다. “나무와 채소가 어우러지게 심고 농약과 화학비료는 사용하지 않는다”며 오 씨가 거든다.
이들은 다품종소량생산 방법으로 과일과 채소를 키운다. 노지에서 수확하는 농산물에는 그해의 기후 이야기가 들어 있어 스스로를 ‘지구 농부’라고도 일컫는다. 느리게 수확한 농산물은 서울의 직거래장터에서 판매를 하거나 자신들이 운영하는 식당 ‘꽃비원 홈앤키친’에서 사용하며 도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잎 달린 당근, 꼭지 달린 배, 목화송이 등 자연스러운 작물의 모습을 본 손님들은 마트에서 판매하는 농작물과 다른 꽃비원 작물의 가치를 알게 된다. 누가 키운지 알고 계절을 함께 느끼며 먹는 작물은 다르다. 이렇게 연결된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친구가 많다.”
책에는 계속해서 자립을 고민하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는 솔직한 고백도 담겨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시골생활을 시작했고 초기에는 육아와 농사를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가 자라면서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 좋다고 했다. 아들은 11세가 됐다. 농사와 요리, 여행 그리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의 삶을 보고 자란 아들은 행사 때면 나서서 그림과 홍보 영상을 맡는다.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겠지만 삶의 균형을 맞추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갈 계획이다.” 부부는 농사를 넘어 주체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꽃비원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