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마흔이 됐다. 공자 왈, 불혹이 되면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다고 하였거늘 어째서 나는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며 보톡스를 맞아야 하나 고민에 빠지고, 비트코인 시세에 따라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것일까. 혹시 마흔은 ‘불혹’이 아닌 ‘현혹’ 아닐까? 이런 내가 걱정스러워 죽겠건만 엄마는 마흔이 된 내가 징그럽다며 불 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딸내미에게 어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냐며 역정을 내자 엄마가 쓴웃음을 웃었다. “네가 마흔이면 내가 일흔이니까 징그럽지. 나도 엊그제 마흔이었는데 눈 감았다 뜨니까 이렇게 된 거야, 글쎄.”
엊그제 스물이었던 내가 금세 마흔이 되었으니 엊그제 마흔이었던 엄마가 돌연 일흔이 되었다는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더욱 빨리 흘러간다고 하니 나의 일흔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올 것 같기도 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나는 취미로 사주 공부를 시작한 친구에게 복채 몇 만 원을 쥐여 주며 나의 미래를 물었다. 금생수, 해묘미, 신자진, 희한한 주문을 외던 친구는 결국 뻔한 멘트를 늘어놓았다. 내년은 좋고 후년은 더 좋다. 말년으로 갈수록 좋은 운이다. 역시 인생은 육십부터 아니겠느냐. “야, 그런 소리는 나도 하겠다!” 코웃음을 치는 내게 친구는 반격을 가했다. “그게 아니라 인생은 진짜 육십부터라니까?”
친구의 말은 이러했다. 작년은 계묘년이었고 올해는 갑진년이며 내년은 을사년이다. 이렇듯 각 연도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다. 이것은 땅을 지키는 열두 동물인 십이지와 하늘의 시간을 나타내는 열 개의 십간을 조합해 만들어 낸 것으로 총 육십 개가 존재하는데 그 시작은 갑자년이다. 고로, 육십 년의 세월을 보내면 다시 갑자년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이를 환갑이라 하는 것이다.
명리학에서는 인생이 육십 년을 주기로 순환한다고 본다. 첫 육십 년은 인생에 대한 공부를 하는 시기였다면 그다음 육십 년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뜻대로 살아가는 것. 이 얼마나 희망찬 새출발이란 말인가. 그러니 나이 먹는 일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이다.
오늘의 불안함이 다가올 미래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밑거름이라 생각하니 어느 정도 위안이 됐다. 언젠가 맞이하게 될 인생 2막을 위해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들기도 했다. 자꾸만 흔들리는 마음을 탓하는 대신 매서운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갈대처럼 유연하게 살아가야지.
한결 편안해진 내 표정을 간파한 친구가 복채를 조금만 더 얹어주면 결혼 운에 재물 운은 물론 인생 총운까지 봐 주겠다며 나를 유혹했다. 아니, 이것이 어디서 약을 팔아! 어림도 없지. 테이블 위에 있던 지갑을 가방 깊숙한 곳에 넣고 지퍼를 꽉 닫았다. 불혹이 맞기는 맞나 보다.
이주윤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다. 어쩌다 보니 맞춤법을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출간했다. 국어사전 속에서 온종일 헤매는 일이 싫지 않은 걸 보면 아무래도 체질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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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