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1일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직후 이뤄진 기자회견에서 대북특별대표에 임명된 성 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대행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연합
남북관계
그동안 교착상태였던 남북관계와 북미 대화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재개될 여건이 조성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월 21일(현지시각)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2018년 남북 정상이 약속한 판문점 선언을 존중하면서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공석이었던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에 한반도통인 성 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대행을 임명한 것은 적극적인 북미 대화 의지로 볼 수 있다. 한국계인 성 김은 과거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냈고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대북협상에도 참여하는 등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외교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한반도통 성 김, 대북특별대표 깜짝 지명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성 김 대북특별대표 임명을 환영한다”며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통한 외교를 할 것이며 이미 대화의 준비가 돼 있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과 나는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대화가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가는 데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재확인했다”며 “미국과 긴밀한 협력 속에서 남북관계 진전을 촉진해 북미 대화와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도 “긴장을 완화시키면서 우리 모두 목표로 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를 향해 다가가기로 했다”며 “대북 전략과 접근에 있어서 항상 한국을 긴밀하게 참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누리소통망(SNS)에 “성 김 대북특별대표의 임명 발표는 기자회견 직전에 알려준 깜짝선물이었다”며 “그동안 인권대표를 먼저 임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대북 비핵화 협상을 더 우선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한미 정상이 판문점선언을 존중한다고 밝히면서 교착상태인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국의 판문점선언 존중은 남북관계 운신의 폭을 넓히고 기존 남북간 합의를 바탕으로 남북교류가 계속 추진될 수 있는 동력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4·27 판문점 선언에는 종전선언과 완전한 비핵화 외에도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 전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수역 전환 등 다양한 남북협력 방안들이 담겨 있다.
양국 정상이 공동성명에 판문점 선언을 명시한 것은 남북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우리 정부에 일정한 독자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톱다운(위에서 결정해 실무진에 통보하는 방식) 식의 협상을 추구하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가 소외됐던 데 반해 바이든 행정부는 남북관계에 자율성을 인정하고 북핵문제 해결 여건과 대화 분위기부터 조성하겠다는 기조가 엿보인다.
“남북미 관계개선 여건 충분히 마련”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에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를 쓴 모습도 보인다. 북한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인권문제와 인도적 지원을 한 문장으로 엮었다.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데 동의하고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을 계속 촉진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히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인 5월 23일(현지시각)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외교를 할 준비가 돼 있다. 문제는 북한도 그걸 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라며 “공은 북한 코트에 있다”고 말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북한이 유엔에 의해 명백히 금지된 행동들에 계속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대북 제재는 유지하지만 외교적으로 이것(관여)을 추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은 ‘북한에 신중하고 조정된 접근법 위에서 외교적으로 관여하는 것’이라고 바이든 대통령은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남북관계 뿐 아니라 북미관계가 대화를 재개하고 평화를 향해 한발 나아갈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이 장관은 5월 24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한미 정상 간 공동합의 과정에서 외교를 통한 평화적 해결,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을 통한 실용적 해결, 우리 정부의 능동적 역할, 동맹에 대한 존중 등의 정신이 분명해졌다”며 “통일부 장관으로서 그동안 단절된 대화채널을 복원하고 대화를 재개하는 과정을 착실히 밟아가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북으로서도 내심 기대했던 싱가포르 북미 합의에 기초한 대화 접근 가능성도 분명해졌다”며 “북미대화 의지의 상징적 의미가 담긴 대북특별대표의 임명까지 종합적으로 보면 남북미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충분한 여건이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난 2월 미국이 평양을 노크했을 때 거부했던 것과 달리 최근 미국이 대북정책 검토를 완료하고 설명한다고 했을 때 북한이 거부하지는 않았다”면서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보고 북한이 모종의 판단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