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노고단에서 뻗어내린 한 능선이 섬진강으로 흐르는데, 그 능선 아래 문수골이 있다. 문수골의 서쪽은 화엄사골이고 동쪽은 피아골이다. 지리산의 수많은 골짜기 중에서 가장 맑은 물이 흐르는 문수골 입구의 왕시루봉 자락에 나의 거처인 외딴 집 ‘피아산방’이 있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다랑논 바로 아래 깊푸른 못 문수제가 있고, 그 아래 구례군 토지평야와 섬진강이 멀리 내려다보인다. 풍수지리학으로 본다면 섬진강 물을 마시는 용의 목덜미에 해당하는 능선이 문수제 너머 눈썹 위에 걸려 있고, 그 아래 한국의 4대 명당 중 하나로 꼽히는 오미리의 운조루(雲鳥樓)가 웅크리고 있다.
아침이면 섬진강 물안개가 서서히 차올라 나의 몸을 가리고, 저녁이면 강 건너 오산의 노을이 나의 이마를 붉게 물들인다. 창을 열고 산아래 마을을 내려다보노라면 문득 가파른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리산 입산 8년 그 이전의 세월, 속진의 날들은 어느새 안개 너머 노을 너머 마치 전생의 일인 것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오늘처럼 일기예보에 없던 폭설이 내려 문득 고립되고 보니 더욱 그러하다. 세상으로 통하는 길이 막히면 더욱 세속의 일이 궁금하거나 안타까워야 할 터인데 오히려 더 편하니 이 무슨 심사일까. 고립된 며칠 간은 찾아올 사람이 없어 좋고, 문득 문득 바깥세상으로 향하던 마음과 몸마저 바로 여기 이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으니 더욱 좋다.
산중의 반달곰과 다람쥐들도 겨울잠에 들고, 나 또한 무욕의 겨울잠에 들기에 너무 좋은 조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고립은 홀로 외로운 ‘고립(孤立)’이 아니라, 홀로 높게 서는 ‘고립(高立)’인 것이다. 자본주의식 생존경쟁처럼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누르고 ‘외롭고도 높게’ 서 보는 것이니 이 얼마나 행복한 자족인가?
반달곰의 겨울잠은 지독한 추위를 이기는 방편으로서의 생존법일지 모르나 내게 자족의 겨울잠은 ‘탐진치(貪瞋癡)의 삼독(三毒)’을 빼는 겨울나무의 수행에 가깝다. 행복의 조건은 욕망의 무한질주가 아니라 자족과 달관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나날이 ‘자발적 가난’과 ‘청빈(淸貧)’을 즐기는 여유야말로 참다운 나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조금 건방진 말이겠지만 사실 한 달에 30만 원 정도면 지리산에서 내 한 몸 유지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무애의 경지가 뭐 별것이겠는가?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정해 놓고 그 이상이 되기를 애써 구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거침없는 삶이 아니겠는가?
지난 1년 동안 세상을 떠돌며 참 많이도 걸었다. 도법 스님 등과 함께하는 ‘생명평화탁발순례단’으로 300일 동안 8,000리를 걸었다. ‘걷자, 만나자, 만나서 생명평화를 얘기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리산 주변 5개 시군과 제주도, 부산과 울산, 그리고 경남지역의 모든 시군, 읍면을 걸어서 돌았다. 얻어먹고 얻어 자며, 대립과 갈등이 아닌 생명평화를 구걸하며 걷다 보니 한 해가 저물고 겨울이 온 것이다. 모두 “어렵다 어렵다” 말하지만 어쩌면 너무나 넘쳐 문제였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맛보는 문수골의 겨울잠이 너무 달다. 푹 자고 매화꽃이 피면 일어나 또 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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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