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릴 때 읽은 동화책에 <나무노래>라는 것이 있었어요. 대략 이런 식이었습니다.
“나무나무 무슨 나무, 너랑나랑 살구나무, 바람 솔솔 솔나무, 십 리 가도 오리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푸르러도 단풍나무, 입맞추자 쪽나무, 방귀 꼈다 뽕나무….”
저의 나무 이야기는 바로 이 방귀 뀌는 뽕나무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사실 뽕나무만큼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나무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뽕잎은 누에의 먹이로, 열매인 오디는 영양가 높은 먹거리로, 또한 뿌리는 한약재로 두루 쓴다고 하니까요. 뽕나무는 원래 크게 자랄 수 있는 나무이지만, 주변에서 뽕나무 거목을 잘 볼 수 없는 것은 누에 먹이로 잎을 해마다 따기 때문에 크게 자랄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요. 강원도 정선군청 앞에는 드물게 나이를 600살이나 먹은 뽕나무 거목이 두 그루 있답니다. 혹시 정선에 갈 기회가 있으면 꼭 한번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산에서 만나는 뽕나무는 대부분 산뽕나무입니다. 산뽕나무는 뽕나무보다 잎이 약간 작고 끝이 뾰족하며 열매의 크기도 작은데, 뽕나무류의 열매를 통틀어서 오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편 이것 말고도 우리 산하에는 돌뽕나무와 몽고뽕나무라는 유사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만, 나무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아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군요.
뽕나무라는 식물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실생활과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부터 뽕나무와 관련한 문헌 기록이 많이 보입니다. 임경빈 박사의 <나무백과>(일지사, 1977)라는 책 속에도 뽕나무와 관련된 흥미로운 지명(地名)의 유래가 나오네요.
“서울의 남산은 생김새가 누에를 닮아 잠두봉(蠶頭峯)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풍수 이론에 따라 서울의 정기를 돋우려면 누에의 먹이인 뽕나무가 많아야 되므로 서울에는 뽕나무를 많이 심게 되었다. 지금의 잠실(蠶室)은 원래 뽕나무가 많았던 동네인 것이다.”
비단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천금의 가치를 지닌 귀중품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누에나방의 애벌레인 누에가 고치를 짓기 위해 체내에서 뽑는 섬세한 실로 짠 천이 바로 비단입니다. 따라서 비단을 짜려면 누에를 키워야 하는데 누에의 먹이가 다름 아닌 뽕잎이랍니다. 뽕나무를 사용한 누에 사육법은 5세기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서양에까지 전파되지만, 서양 역시 그 이전에도 뽕나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해 오고 있었습니다. 가령 뽕나무는 봄이 완연해서야 비로소 잎을 내는 모습이 현명하다고 여겨진지라 고대에는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에게 바쳐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뽕나무와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일화는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드(Ovid)의 시집 <변신>에 나오는 티스베(Thisbe)와 피라무스(Pyramus)의 슬픈 사랑 이야기일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이 비극적인 전설을 <로미오와 줄리엣>의 처절한 최후 장면에 그대로 차용하였답니다. 티스베와 피라무스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도 또다시 극중극(劇中劇) 형태로 등장하지요. 그런데 이 <한여름밤의 꿈>에도 뽕나무가 보입니다.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는 남편 오베론의 농간으로 마법에 걸린 탓에 당나귀 머리를 한 기괴한 몰골의 사내(Nick Bottom)에게 반해 버리게 되는데, 사랑에 눈이 먼 여왕은 부하 요정들에게 이렇게 분부를 내리죠.
“이 신사분께 상냥하고 공손하게 대하거라. / 걸어가시는 앞에서 춤을 추고 즐겁게 뛰놀거라. / 이분께 살구와 나무딸기, 잘 익은 포도와 푸른 무화과, / 그리고 오디를 따서 대접하거라.”(3막 3장)
서양에서도 뽕나무의 오디는 요정들이 즐기던 진귀한 별미였나 봅니다.
글과 사진·김태영(자연생태연구가, <한국의 나무> 공저자) 2013.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