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묵은 억울하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일이라고는 사람들 입을 즐겁게 해 준 것밖에 없는데 이름을 가지고 끝도 없이 조롱을 해 대니 말이다. 자신이 붙여달라고 해 본 적도 없는 호칭을 맛이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줬다 뺐다 하고…. 또 그 사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인간들이 원망스럽다.
도루묵이라는 명칭에 관해 가장 흔하게 회자되는 이야기는 ‘선조 명명설’이다.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함경도에 피난 갔을 때 먹을 것이 마땅치 않자 현지의 어부가 묵이라는 생선을 요리해서 바쳤는데, 생선맛이 너무 좋다며 선조는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환궁한 선조가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청해 먹었으나 그 맛이 실망스럽자 도로묵이라 하라고 해서 호칭이 ‘도루묵’이 되었다는 설화이다. 그런데 정사에 의하면 선조가 함경도로 피난 간 적이 없다니 이 설은 좀 수상쩍다.
다른 주장으로는 ‘이괄의 난’ 때 인조가 공주로 피신하는 과정에 있었던 일이라는 설도 있다. 이 고담들이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은 것이 그 무렵의 인물로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이식은 자신의 문집인 <택당집(澤堂集)>에 ‘환목어(還目魚)’라는 시를 남겼는데,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그 줄거리가 도루묵의 설화에 관한 것이다. 그 중 몇 구절을 인용해 보면,
“마침 목어가 수라상에 올라와서(目也適登盤) / 허기진 배 든든하게
채워 드리자(頓頓療晩飢) / 은어라는 이름을 특별히 하사하시고(勅賜銀魚號) /
두고두고 바치도록 하명을 하셨다네(永充壤奠儀)”
라고 했고, 궁에서 다시 먹어본 후에는
“바로 이름을 박탈당해 도로 목어로 떨어지고(削號還爲目) / 순식간에
버린 자식 취급받게 되었다네(斯須忽如遺)”
라 했다. 그러나 이 시에서 이식은 피난 갔던 임금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그냥 옛 임금이라고만 했다.
같은 시기의 인물인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처음 이름은 목어였는데 고려 때 좋아하는 임금이 있어 은어라고 고쳤다가 많이 먹어 싫증이 나자 다시 목어라고 고쳤다 하여 환목어(還木魚)라 한다”며 그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출간된 <고금석림(古今釋林)>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고려 임금의 일화로 소개되어 있다. 어느 임금의 사연인지는 몰라도 이 고사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인간의 간사한 심사를 풍자하고 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말짱 도루묵’은 애쓰던 일이 수포로 돌아간 상황을 속되게 표현하는 관용구가 되어 버렸다. 스스로 개명해 보겠다는 엄두조차 내 본 일이 없는 도루묵 입장에서는 언짢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름이 바뀐 것보다 더욱 참기 어려운 것은 맛이 없다는 오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루묵은 맛있다. 비늘이 없는 도루묵은 살이 부드럽고 맛이 담백하면서도 고소하다. 특히 알이 가득 차는 11~12월 초에 가장 맛이 좋은데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싸인 탱탱한 알을 입 속에서 톡톡 터뜨리며 먹는 맛은 자별하다. 임금이 맛이 없다고 한 것은 미각이 발달해 있지 않았거나 요리사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도루묵은 찌개나 조림도 훌륭하지만 굵은 소금을 뿌려가며 석쇠에 구워먹는 맛이 일품이다. 토막 친 도루묵을 넣고 담근 깍두기나 배추김치는 별미 중의 별미이며 도루묵식해도 빼놓을 수 없는 맛이다.
동해안에 도루묵이 풍어라고 한다. 어획량이 많아 가격이 싸져서 어민들 사이에 ‘도루묵 잡아봤자 말짱 도루묵’이라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다 돌 정도라고 한다. 수산시장에서 도루묵 한 상자 사다 지져먹고 구워먹고 김장에도 넣으면 진미도 즐기고 어민들도 돕는 일석이조가 아닐까.
글·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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