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틈에 서까래를 얹고, 골짜기를 파서 집을 지었다더니,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이곳은 정녕 도원이로다!"
안평대군이 도원을 거니는 꿈을 기록한 <몽유도원기>의 일부다. 조선 전기 회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몽유도원도>의 기록판이다. 그림과 글은 절묘하게 어우러져 상상력을 자극한다.
<몽유도원도>는 1447년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이다. 하지만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안평대군의 희생과 함께 사라진 뒤 1950년 덴리(天理) 대학이 소장한 것이 알려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책은 이 유명한 서화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어떻게 유랑했는지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안평대군은 어린 나이에 조선 최고의 갑부가 됐다. 세종의 아들이었지만 숙부(태종의 넷째 아들 성녕대군)의 후사가 되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학문과 예술을 추구하고 많은 문객을 거느리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안평대군은 자신이 도원의 꿈을 꾼 것에 대해 운명적이라 여겼다. “아마도 저의 천성이 그윽한 것을 좋아하고 산수를 즐기는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몽유도원도>에 대한 찬사는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안평대군은 세종조 최고의 문사들을 초청해 그림에 대한 찬문을 짓게 했다. 23명의 학자들이 쓴 찬문들에는 <몽유도원도>에 대한 돋보이는 해석과 예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몽유도원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1453년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 때문이다.
안평대군은 36세에 대역죄를 뒤집어쓰고 교동도에서 죽음을 맞는다. 특히 서재가 있던 비해당의 1만권에 달하는 서책과 고서화는 모두 불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대형 서화인 <몽유도원도>가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온전한 상태로 전해지는 건 그래서 의아한 일이다.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그림은 이후 일본을 전전했다. 그러다 1928~29년 무렵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된다. 교토대학교 나이토 교수가 <조선 안견의 몽유도원도>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역사 속에 묻힌 지 400여 년 만이었다.
1931년 일제강점기, <몽유도원도>는 도쿄부 미술관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이 전시에서 <몽유도원도>는 조선 최고의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예술품으로 가장 큰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을 대표해 출품됐다는 사실은 한국 역사의 그림자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1927년 세계 공황 때 사업가의 담보로 넘어가며 소유주가 바뀌었던 그림은 여러 거처를 전전한 끝에 오늘날 덴리대학교 도서관에 도착했다. 격정의 유랑에 잠시 쉼표를 찍은 셈이다. <몽유도원도>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직업외교관이었던 저자는 일본이 약탈해 간 <몽유도원도>의 존재를 알려 문화재 반환에 영향을 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가 정확한 문헌을 통해서 그림의 소유 이전을 추적하고 경위를 소상히 기록한 것은 큰 강점이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애정에 불을 지피는 책이다.
글·박지현 기자 2013.12.02
새로 나온 책
테크노 인문학
이진우 지음
책세상·1만7천원
인문학과 과학기술, 융합적 사유의 힘을 다뤘다. 과학기술이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 된 오늘날 인문학적 성찰의 중요성을 접목한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당연시되는 이 시대에 책은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시도한다.
붉은 실 생각법
데브라 카예 지음
다른세상·1만4,800원
브랜드 혁신 및 트렌드 전문가인 저자가 ‘반드시 만나야 할 인연을 이어주는 월하노인의 붉은 실 이야기’에 착안해 쓴 책이다. ‘붉은 실 생각법’은 연관능력이다. 아이디어란 주변에 흩어진 수많은 실 가닥들을 독창적으로 엮어낸 결과물이다. 관찰과 경험, 이미 존재하는 기술, 숨겨진 문화와 소비자의 욕구 등이 예상치 못하게 연결되면서 최상의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