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내설악 백담사에서 대청봉에 오르는 산길에는 계곡물이 고여 만들어진 수많은 못이 있다. 일설에는 대청봉에서 100번째 못이 있는 지점에 지은 사찰이 백담사(百潭寺)라고 한다. 예전에는 물 위에 비친 별을 보며 하늘에 기도를 올리던 풍습이 있었다. 산의 정상과 절을 잇는 100개의 못은 산을 오르며 기도를 올리던 100번의 간절함이었을지 모른다. 오래전 이 길을 따라 새벽 산행을 하며 나는 이 말의 뜻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난히 하늘이 맑았던 그날,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산길을 밝혀주는 것은 못 위에서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별들이었다. 수많은 못 위에는 못의 수만큼 서로 다른 모양의 밤하늘이 담겨 있었다. 자연의 신성한 아름다움 앞에 마음이 경건해지는 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이때의 풍경과 어울리는 문장을 발견했다. ‘천강유수천강월(千江流水千江月)’. 1000개의 흐르는 강물에 1000개의 달이 비춘다는 뜻의 글이었다.
달빛은 넘실대는 바다에도 비치고 졸졸 흐르는 강물에도 비친다. 주고받는 술잔에도 비치고 밥상 위의 작은 간장 종지에도 비친다. 비치는 곳에 따라 달은 달라 보이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의 모습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주어진 환경에 따라 맑아졌다 탁해졌다 작아졌다 커졌다 할 뿐이다. 불교에서 달은 사람의 본성에 비유되곤 한다. 감정으로 뒤얽힌 마음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본성이라는 달은 마음의 변화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고 맑아지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달은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백담의 별들처럼 아름답게 마음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미워질 때마다 나는 1000개의 강에 떠 있는 1000개의 달을 떠올린다. 요즘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낮 도심 한가운데서 ‘묻지마 범죄’가 하루에도 몇 건씩 일어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남이 행복한 모습이 싫어서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상대를 골라 이유 없는 폭력을 행사한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특별한 이유 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경계하게 될 때가 많다. 단순한 호의나 나에 관한 따뜻한 관심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게 된다. 이런 마음이 조심을 넘어 상대에 대한 편견으로 굳어지려 할 때 1000개의 달을 떠올린다. 아무리 흉악한 사람이라도 마음 깊은 곳에는 달처럼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본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다만 흙탕물 같은 환경을 만나 지금은 탁하게 흐려진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상대에게 화를 내며 합당한 죗값을 치르게 할지라도 다른 한 편에서는 증오가 아닌 공감과 연민을 갖기 위해서다. 미워하는 마음은 자동차의 액셀처럼 밟을수록 점점 속도를 높이며 가속이 붙는다. 그렇게 폭주하는 감정은 다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며 나 자신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공감과 연민은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한다. 그런 노력은 상처받은 내 마음을 치료하는 묘약이 될 수도 있다. 상대의 마음에 떠 있는 달을 알아보는 눈은 방향을 돌리면 내 마음에 떠 있는 달을 볼 수 있는 따듯한 시선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처주려 해도 상처받지 않는 청정한 달이 마음 위에 떠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치유는 시작된다.
신기율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인드풀링(Mindfuling) 대표이자 ‘마음 찻집’ 유튜브를 운영하며 한부모가정 모임인 ‘그루맘’ 교육센터장이다.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구독신청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