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사랑의 깊이나 관심의 정도와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 부부의 경우에는 음악 취향이 그렇다. 아내와 나는 매일 아침을 함께 시작하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다. 그녀는 주로 차트에 오르는 최신 히트곡이나 리듬감 있는 팝송을 좋아하고 나는 합창이나 클래식, 그리고 아카펠라처럼 화음이 좋은 장르를 즐긴다. 문제가 되는 건 운전대를 잡고 차 속에 둘밖에 없는 순간이다. 서로가 원하는 음악을 먼저 틀기 위한 소리 없는 신경전이 펼쳐진다.
가끔 서로의 음악을 듣고 마지못해 “괜찮네”라는 말을 하긴 하지만 그 감동의 깊이는 너무나 다른 것 같다. 이따금 생각해본다. 왜 우리는 이렇게 다를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음악 취향은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경험과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음악,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마음을 울렸던 노래들, 그리고 특정한 순간 배경으로 흐르던 곡들이 한 사람의 음악적 정체성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아내와 나도 아마 각자의 인생에서 다른 순간과 기억을 통해 음악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녀가 밝고 경쾌한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젊은 시절 기억 속에서 이 음악들이 행복한 추억의 배경음악이어서일지 모른다. 나의 경우엔 어릴 때부터 조용한 클래식 선율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줬고 아카펠라의 화음이 잔잔한 감동을 주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모든 게 옛일이 되고 말았다. 우리 부부의 음악과 관련된 오래된 갈등과 암투를 단 한 번에 해결해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늘에서 기계 장치를 타고 내려온 신을 일컫는 연극 용어)’가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아이들의 존재다. 이제 차에 오르면 가장 먼저 들리는 건 내가 사랑하는 오케스트라 합창곡도, 그녀가 좋아하는 팝송도 아닌 “아기상어 뚜루루 뚜루”다. 우리의 음악 전쟁은 ‘아이의 승리’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그러고 보면 부모가 된다는 건 결국 음악 취향마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가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멋쟁이토마토’를 듣는 아이를 보면서 우리는 함께 웃는다. 누가 클래식을 좋아하고 누가 팝송을 좋아하는지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음악 취향조차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부모의 마음가짐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다르다고 생각했던 음악 취향도 결국은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또 다른 조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서로 다른 음색의 멜로디가 한 곡의 노래가 되듯 서로 다른 음악 취향은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모니를 이뤄가고 있다. 아이의 웃음소리에 맞춰 “나는야 케첩 될 거야~”를 따라부르면서 우리는 새로운 음악 취향으로 대동단결하고 있다.
원요환
프로N잡러 중동 파일럿. 국내 경제지 기자 출신으로 지금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민항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다. 이외에도 작가, 리포터, 콘텐츠PD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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