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출근길 내내 지각할까봐 서두르게 된다. 괜히 끼어드는 차들에 경적을 울리며 짜증을 내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려고 차선을 몇 번이나 바꾸는 등 평소와 달리 난폭 운전을 한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 기간이 돼 벼락치기 공부를 할 때마다 ‘평소에 미리 공부해둘 걸’ 생각한다. 월급날 기대에 부풀어 기분이 좋아진 것도 잠시, 각종 공과금과 함께 카드값이 빠져나가고 통장의 잔고가 얼마 남지 않으면 뒤늦게야 ‘평소에 아껴 쓸 걸’ 후회한다.
시간과 돈의 공통점이 있다. 많을 때는 아군이지만 적을 때는 적군이 된다. 돈과 시간이 많을 때는 마음이 크고 넓어지지만 적을 때는 작고 좁아진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건강할 때는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일을 하든 별 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술 마시고 과식하고 담배를 피워도 별 탈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다 어디가 이상해지면 그제야 ‘평소에 관리할 걸’ 뒤늦은 반성을 한다. 건강을 해치고 나서는 무엇을 하더라도 힘이 든다. 몸이 아프면 마음까지 아파진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보면서 하루에도 비슷한 상황을 수십 번이나 겪는다. 잔뜩 긴장한 채로 진료를 받으러 와서 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다고 하면 얼굴이 활짝 밝아지며 기존에 해왔던 것처럼 계속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과식을 한다. 나쁜 결과가 나오면 그제야 금연을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찾고 나쁜 습관을 고치기 시작한다.
2년 전에 받은 폐암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고 계속 담배를 피우던 환자가 있다. 이번에는 안타깝게도 정상 판정을 받지 못했다. 그제야 환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제부터라도 금연하겠다”며 진료의뢰서와 함께 금연약을 받아갔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와 수술을 받게 될 것이고 계속해 암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게 될 것이다.
문득 중국의 손자(孫子)가 한 말이 떠오른다. “참혹한 전쟁을 거쳐 이기더라도 그것은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말이다. 또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라는 말도 있다.
명장이란 참혹하게 전투를 벌여 가까스로 이기는 장군이 아니다. 진정한 명장은 평소에 강한 군대를 만들어 다른 나라가 침입할 엄두조차 못하게 만드는 이다.
시간과 돈은 항상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건강 또한 마찬가지다. 몸은 아플 때가 아니라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 질병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빛나는 외모만큼 눈부신 마음을 가진 의사.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2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작가이기도 하다. 〈히틀러의 주치의〉를 비롯해 7권의 책을 썼다. 의사가 아니라 작가로 돈을 벌어서 환자 한 명당 진료를 30분씩 보는 게 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