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 가면 거대한 크루즈 여객선이 뱃고동을 울리며 겨울바람 뚫고 미끄러지듯 대교를 지나는 그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예향의 도시이자 호남선 철도의 종착지, 경부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의 시작점인 목포는 언제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목포는 1897년 개항부터 1940년대까지 부산·인천과 함께 3대 무역항으로 큰 발전을 이뤘다. 제주와 신안, 진도, 완도의 관문 역할을 하며 호남 최고의 무역항 역할을 했다. 비록 지금은 인구 20만 명의 작은 소읍으로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목포는 여전히 풍미와 매력을 뿜어낸다.
개항 이후 유달산 아래 해안으로 일본인 거주지가 형성됐다. 일본인들은 내륙에서 생산된 곡식과 자원들을 빼앗아 급여도 제대로 주지 않고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켜가며 수탈을 일삼았다. 이 아픈 역사는 근대문화유산 거리에 남아 있다. “일제의 잔재를 모두 없애자”는 말도 있었지만 아픈 역사도 우리들의 역사다. 아픈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자 일본영사관으로 쓰였던 ‘목포근대문화역사관 1관’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붉은색 벽돌로 지은 2층 건물이다. 아치형 창문·현관을 가진 이 건물은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TV 드라마 <호텔 델루나>를 촬영하기도 했다. 내부에는 다양한 주제로 역사가 담긴 전시가 이뤄졌다. 당시 사용한 물건들도 함께 볼 수 있다. 건물 양쪽 끝에는 일제가 파놓은 방공호 입출구가 설치돼 있다.
1관 아래쪽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사용됐던 목포근대역사관 2관이 있다. 근대 목포의 생활상과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살필 수 있는 자료를 전시 중이다. 근대문화역사관 주변으로는 아직도 적산가옥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곳들은 현대적 감각으로 내부를 개조해 카페나 식당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래된 건축물이 갖는 특별한 분위기와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을 것만 같은 고재목(古材木)들의 질감 때문에 현대식 건축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깊숙이 스며 있다. 복고풍 근대문화유산들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어 명소 역할을 한다. 역사관을 나와 목포역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을 걸어볼 것을 추천한다.
바보마당과 시화골목
영화 <1987>의 인기에 힘입어 세상에 알려진 목포 서산동 달동네는 바보마당과 시화골목으로 탈바꿈해 젊은이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연희네슈퍼 앞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벽마다 시화와 그림이 빼곡한 골목길을 걸었다. 오래돼 글씨가 지워진 빈칸에 내 마음을 적어넣다 보면 옛 향수가 가득한 골목길은 금세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흑백사진관을 운영하는 젊은 주인은 목포에서 나고 자랐다. 이 주인은 서산동의 카페, 꽃집, 소품숍 가게들은 대부분 목포의 젊은이들이 운영하고 있어 요즘 젊은 세대의 감각을 고스란히 담아낸다고 말했다. 소소하고 조용한 풍경들이 위안이 되는 이곳을 두고 어떤 이들은 “시화 몇 개 붙여놓고 별로 볼 것도 없다”며 투덜거리기도 한다.
여행의 완성은 생각의 전환이라고 하지 않던가. 강렬하고 짜릿한 것들로 마음에 굳은살이 가득해 어지간한 것들로는 감정조차 흔들리지 않는 도시인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치유를 통해 굳은살도 부드러운 피부로 되돌아가듯 감수성은 작은 것을 보는 행복에서 시작한다.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한 여행자다.
목포해상케이블카
목포의 진산(鎭山)이자 작은 황산을 연상케 하는 유달산은 목포 어디에서나 그 늠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달산 입구의 노적봉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명량대첩을 마친 이순신 장군은 유달산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을 정탐하는 왜군에 대응하기 위해 위장전술을 펼쳤다. 노적봉에 볏짚을 쌓아 군량미가 많아 보이게 한 뒤 주민들에게 강강술래를 하게 함으로써 조선 수군의 병력이 많은 것처럼 해 왜군의 기선을 제압했다. 2019년에는 유달산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목포해상케이블카가 설치돼 목포의 명물이 됐다.
북항에서 출발해 유달산을 지나 고하도까지 이어지는 3.2㎞의 해상케이블카를 타면 발 아래로 시원스레 펼쳐지는 목포 앞바다를 볼 수 있다. 또 높은 곳에서 유달산의 정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꼭 한 번 경험해야 할 코스다. 북항과 고하도에서뿐만 아니라 케이블카 중간 기점인 ‘유달산스테이션’에서도 승하차가 가능해 손쉽게 유달산 일등바위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바닥까지 유리로 된 ‘크리스탈캐빈’을 타고 높이 155m의 해상 주탑을 넘을 때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짜릿하다.
고하도는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106일 동안 머무르며 수군 재건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던 군사 요충지다. 지금은 판옥선을 겹겹이 쌓은 모습의 전망대가 섬 한가운데에 우뚝 세워져 있어 전시관과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전망대를 중심으로 섬 양쪽 끝까지 해상데크 길이 설치돼 있다. 이곳은 숲속을 가로지르는 산책길이기도 한데 길목에 시화가 전시돼 있어 걷는 게 지루하지 않다.
슬로시티 목포
‘섬들의 고향’으로 불리는 목포는 ‘슬로시티(slow city)’이기도 하다. 이 명칭은 1999년 이탈리아에서 패스트푸드에 반대하며 처음 시작됐다.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전통문화와 자연을 잘 보존하며 느림의 삶을 추구하려는 국제운동이다. 전 세계 33개국 287개 도시가 가입해 있다. 목포는 2019년 국내 16번째, 세계에서는 253번째 국제슬로시티로 공식인증을 받았다.
원도심 일대 근대문화유산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 유달산, 외달도, 달리도 등 자연경관도 매우 훌륭하다. 여기에 맛의 고장답게 밥상마다 슬로푸드로 가득해 다른 고장에선 볼 수 없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달리도, 외달도는 목포항에서 뱃길로 40분이지만 목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바다풍경 너머로 목포 유달산이 손에 잡힐 듯 지척으로 보인다.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은 목포의 시가(市歌)라고 할 만큼 목포인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노래다. 도시 곳곳에서 가사가 적힌 비석을 볼 수 있고 산책길 스피커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삼학도는 특별한 전설이 내려온다. 한 무사를 사랑하던 세 처녀가 기다림에 지쳐 죽어서 학이 돼 날아올랐다고 한다. 이 무사는 그 사실을 모른 채 활을 쏘아 이 학들을 모두 떨어뜨렸고 그 새들이 떨어진 곳에서 섬이 솟아올랐다는 이야기다.
한때 새마을운동 등으로 전국 바닷가를 매립하던 때가 있었다. 삼학도도 이 때문에 원형이 훼손되고 매립을 통해 육지와 연결됐다. 2000년도 들어 목포 시민들이 삼학도의 원형 복원을 간절히 원했고 다시 섬의 형태를 살리고 섬 주변으로 수로를 만들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삼학도에는 우리나라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노벨평화상 기념관’이 있다. 또 목포요트마리나, 어린이과학관, 삼학도공원, 이난영공원 등이 들어서 휴식공간도 갖췄다. 배를 타고 유유자적 목포를 감상할 수 있는 ‘삼학도크루즈’가 출항하는 곳이기도 하니 밤바다의 낭만적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좋다.
맛의 고장 목포
호남 지방은 맛의 고장이다. 그 중에서도 목포는 으뜸 중의 으뜸이다. 호남 최대 항구도시인 목포에는 입맛 돋우는 귀한 생선도 많다. 한여름에만 잡히는 민어는 목포에서도 최고로 쳐줘 ‘민어의 거리’까지 생겨났다. 겨울에는 이에 버금가는 별미인 삼치가 있다. 고향이 목포인 가수 남진의 이름을 따 ‘남진야시장’이라고도 하는 자유시장에는 삼치회가 유명하다. 가격도 저렴해서 단돈 4만 원이면 두세 명이 배부르게 먹는다. 두툼한 삼치회를 양념간장에 쿡 찍어 김 위에 올리고 파김치 한 쪽, 마늘 한 조각 그리고 따뜻한 밥을 얹어 입안에 넣으면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회를 먹고 나면 삼치구이와 삼치조림이 나오는데 하나 같이 싱싱하고 맛깔스럽다. 쫄복탕, 육회전복낙지탕탕이, 게살비빔밥, 홍어라면, 쑥꿀레, 준치회 등 기막힌 음식들이 목포에 있다. 구경은 하루에 할 수 있어도 음식은 하루에 다 맛볼 수 없으니 이 겨울, 멋과 맛의 예향 목포를 찾아 느긋하게 낭만을 즐기는 건 어떨까?
글·사진 박동철 사진작가/여행작가
박동철
<여행이 즐거워지는 사진찍기> <대한민국 주말가족여행> <사진의 구도 구성> <슬로시티 걷기여행> <신께서 허락한 나만의 별> <베트남 사진여행> <가볼까 두근두근 문화유산 여행> 등 40년을 넘긴 작품 활동을 통해 많은 책들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