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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내가 살던 서울에서 470km 떨어진 제주 집│우희덕

정기 차량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냥 지나치던 일상적인 풍경이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2021년 12월 31일. 나는 마흔셋에 대학을 졸업했다. 나이만 놓고 보면 남들보다 늦었다고 어쩌면 빨랐다고 말할 수도 있다.
누구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기와 장면, 공간이 있다. 내게는 대학이 그렇다. 그것은 시절이면서 장소이고 공식적인 기록이면서 개별적인 추억이다. 대놓고 자랑할 만한 명문대를 입학한 것도 아니고 첫사랑과 이어진 것도 아니고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아니지만 대학을 빼놓고 내 삶을 말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내가 대학과 반대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학원 진학을 포함한 진로상담을 하며 교수님이 물었다.
“우 군, 혹시 학문에 뜻이 있나?”
“없습니다.”
“그래, 자네 뜻을 존중하네. 졸업 잘 하게.”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학점은 알파벳에 불과한 것일까? 대학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주로 강의실 밖에서 진리를 탐구하던 나는 이타주의를 몸소 실천하며 학우들의 장학금 수혜를 돕는 디딤돌이 됐다. 나보다 잘나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오만함을 버리고 낮은 자세와 겸손함을 배웠다. 그저 학사경고 기준보다 높은 학점으로 졸업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여전히 대학을 빼놓고 내 삶을 말할 수 없다. 그런 내가 대학 교직원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스스로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기자를 준비하던 나는, 일간지에 필기시험 보는 사진이 실리기도 했던 나는, 시험 과목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응시한 대학에 얼떨결에 붙고 말았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와 15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대학원을 다닐 때는 일하는 곳도 대학, 사는 곳도 대학(기숙사), 공부하는 곳도 대학이었다. 삶 자체가 대학이었다.
2021년 12월 31일. 나는 마흔셋에 대학을 졸업했다. 두 번째 대학 졸업. 교직원을 그만두었다. 실상을 알고 보면 남들보다 빨랐다고 어쩌면 늦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이를 떠나 나는 처음부터 대학과 반대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도시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기로 했다. 제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제주 시골 마을. 제주행 선박에 차를 싣기 위해 완도로 출발했다.
그냥 지나치던 일상적인 풍경이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학교 후문 주차 게이트에서 기계적인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나를 환송했다.
정기 차량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우희덕 코미디 소설가_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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