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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죽기 전에 나도 한 번은’ 나빌레라

tvN <나빌레라>

우리말 제목의 영화·드라마

나빌레라
<나빌레라>, 오랜만에 잔잔하고 느긋한 드라마 한편이 눈길을 끕니다. 70세에 발레를 시작한 한 할아버지와 그의 23세 발레 선생이 서로의 꿈을 찾아주고 지켜주며 완성해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인데요.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선 어떤 용기들이 필요한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사실 처음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가진 건 제목 때문인데요. 정확한 뜻은 기억나지 않아도 학창시절 한번은 접해본 ‘나빌레라’는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에 나오는 말입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이하 생략)
이 시에서 나빌레라는 ‘나비’와 추측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ㄹ레라’가 합쳐져 ‘나비 같다’ 또는 ‘나비처럼 살포시 앉은 자세’란 의미를 지닌 순우리말입니다. 시인 조지훈이 승려의 춤사위와 의상의 움직임을 보고 반해 지었다는 이 시는 그가 읊은 한 단어 ‘나빌레라’로 그 현장의 모습을 완벽하게 묘사했는데요. 드라마 역시 “죽기 전에 나도 한 번은 날아오르고 싶어서”라는 대사를 통해 드러난 할아버지의 꿈을 ‘나빌레라’라는 순우리말 제목이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육룡이 나르샤
이렇게 순우리말로 된 드라마 제목으론 <육룡이 나르샤>도 있습니다. ‘나르샤’는 용비어천가 1장 구절에 나오는 말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날다’의 옛말인 ‘날(‘ㅏ’는 아래아)다’가 ‘날-+-으샤-+(-아)’로 활용된 것으로 보는데요. ‘나르샤’가 ‘날아오르다’라는 뜻이라고 알려졌지만 이보다는 ‘나셔서(날으셔서)’ ‘나시니(날으시니)’로 해석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워낭소리
영화 <워낭소리>도 순우리말 제목입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삶을 조명한 영화로 약 30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독립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사랑받았는데요. 워낭은 ‘마소의 귀에서 턱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를 말하는 순우리말로, <워낭소리>는 여기서 나는 소리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한 노인과 40여 년의 세월을 함께한 소의 교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순우리말 제목은 우리 민족만이 느낄 수 있는 깊은 의미와 여운이 함축돼 있는데요. 최근엔 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등의 세계화 추세로 순우리말보다 외래어, 외국어로 된 제목의 드라마나 영화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 단체에서 의미있는 공모전을 개최해 관심을 끌었습니다.
언어문화 개선을 위한 홍보 등 사회활동을 하는 ‘우리말가꿈이’가 진행한 ‘영화제목 우리말 순화 공모전’인데요. 공모 결과 ▲<라라랜드>는 ‘천사들의 도시에서 춤을’ ▲<엑시트>는 ‘끝까지 달려라 초록빛 질주’ ▲<인터스텔라>는 ‘별똥별이 한울(우주)에 닿을 때’ ▲<인사이드 아웃>은 ‘또바기(한결같이) 내 마음 거울’이 선정됐습니다. 어떤가요? 이렇게 바꾸니 단번에 이해될 뿐만 아니라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다시 한번 느껴지는데요.

미나리
영화 <미나리>가 해외에서 처음 상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한 점은 미나리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영어 원제목도 ‘MINARI’여서 등장인물 이름 혹은 심오한 뜻을 담은 신조어 아니냐는 의문들이 있었는데요. 감독의 대답은 단순하고 명쾌했습니다. “한국에서 많이 먹는 채소 미나리”라고. 영화 제목을 굳이 한글로 한 이유는 받침 없이 영어로도 발음하기 쉬운 아름다운 우리말 그대로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나리>의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에 독일 dpa통신도 “미나리는 강인함을 상징하는 한국의 전통 약초에서 제목을 따왔다”며 “미나리는 (한인 이민자) 가족이 고난 앞에서 찾아낸 끈기와 신뢰에 대한 은유”라고 소개했는데요. 이번 수상으로 <미나리>는 아카데미상 시상 목록에 등재되는 최초의 한국어 제목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흔한 미나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어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K-팝, K-푸드, K-컬처 등의 한류가 확산하는 가운데 그 원동력은 한글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말을 더 많이 사용하며 지켜나가는 게 세계화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앞으로 더 많은 우리말 제목의 영화, 드라마가 나오길 바라봅니다.

백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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