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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단순함에 깃든 심오한 철학적 사유

이우환, ‘관계항-대위법’, 철봉(鐵棒), 자연석, 2004

언젠가 한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름 이름이 알려진 화가와 미술에 문외한인 지인 몇몇이 어울린 자리였다. “제 아들이 화가가 되고 싶다는데 유명한 화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자녀를 둔 부모가 화가에게 물었다. 화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아들이 정말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되길 원한다면 하버드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같은 대학 철학과에 보내세요! 물론 맘대로 되진 않겠지만….”
이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과거와 달리 동시대 예술은 형식보다 내용이 더 우선한다. 재기 발랄한 손재주, 기계적으로 뛰어난 기량은 부수적 요소다. 눈에 보이는 작품의 겉모습보다 이면에 담긴 알맹이가 더 중요하다. 작품을 창조하는 작가가 지닌 사유의 깊이, 즉 작품의 메시지와 의미에 더 가치를 부여한다. 그 화가는 현대예술의 이런 속성을 ‘철학(과)’이라는 상징으로 대답한 것이다.
어릴 적 첼로 연주로 천재 소릴 들었던 장한나. 그는 이제 첼리스트보다 마에스트로(지휘자)로 훨씬 유명하다. 현재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상임지휘자로 활약하는 장한나는 음악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철학을 전공했다. 그것도 하버드대학교에서. 첼로에서 지휘로 전향한 이유를 장한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첼로 연주는 현미경 같지만 지휘는 망원경 같아요. 나이가 들고 생각이 많아지면서 음악뿐 아니라 세상을 더 넓게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지휘자가 됐어요.”
세계적 명성을 얻는 동시대 예술인의 진면목은 바로 이런 것이다. 타고난 연주 실력보다 예술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내면의 정신성이 더 중요하다. 물론 이런 예를 일반화할 순 없지만 미술가 이우환과 그의 작품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우환, ‘선으로부터’, 캔버스에 돌가루 물감, 182×227cm, 1978(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소장)

글쓰기와 철학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이우환 작품을 처음 보면 열에 여덟아홉은 황당하거나 어이없어 한다. 그저 캔버스 위에 ‘점(點)’ 한두 개가 찍혀 있거나 물감 묻힌 붓으로 휙~하고 ‘선(線)’ 몇 개가 그어져 있거나 때론 넓적한 철판이나 쇠막대기 또는 큼지막한 돌멩이(혹은 바위)를 이리저리 배치하는 게 다니까.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이런 식이다. “이게 뭐야? 이게 작품이야? 이건 나도 하겠다!” 그런데 작품 하나 가격이 수억, 심지어 수십 억 원이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난감해하기 십상이다. 일반인 상식으론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미술시장에 관한 왈가불가는 접어두고 작가 이우환이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자.
1936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난 이우환은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했다. 이때부터 엄청난 독서광이었다.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에 입학했지만 우연히 인생의 갈림길에 맞닥트렸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어머니 심부름으로 일본에 계신 작은아버지를 병문안하기 위해 일본 땅에 발을 디딘 것이다. 정식 입국이 아닌 밀항이었다.
작은아버지 권유로 일본에 정착한 이우환은 1961년 니혼(日本)대학 철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철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미학이나 사회·사상사를 철저히 알아야 나중에 뭐든지 제대로 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쓰기와 철학 분야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보인 이우환은 일본에서 미술작품보다 평론으로 먼저 주목받았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예술 개념과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현상학, 그리고 일본 근대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의 이론을 연구했는데 1971년 일본어로 출판된 평론집 <만남을 찾아서>는 당시 일본미술계에서 필독서로 여겨졌다. 이 당시 이우환의 미술비평은 일본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경향인 ‘모노하(物派)’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이우환, ‘대화’(왼쪽), 캔버스에 유채, 291×218cm, 2007, ‘대화’(오른쪽), 캔버스에 유채, 227×182cm, 2006

“점(點)은 존재요, 산다는 것은 선(線)이다”
이우환의 영향력은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에도 전파됐다. ‘모노하’ 작품과는 형식 면에서 완전히 다르지만 우리 미술계 주류로 각광받는 ‘단색화’ 회화 작품 역시 그가 주창한 미학과 일정 부분 연결돼 있다.
한국 국적인 이우환은 여전히 일본에 거주하며 작업한다.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생존하는 한국 작가다. 특히 유럽에서 명성이 높다. 2014년엔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서 개인전이 열렸다. 프랑스 전통의 자존심인 베르사유궁전이 현대미술과 ‘대화’를 목적으로 2008년부터 세계적인 작가를 한 명씩 초대해 개인전을 열어주는 프로젝트다.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애니시 카푸어 등 최고 톱스타 작가가 참여했다. 이우환은 이 전시에서 깊은 철학적 사유의 결과를 단순하지만 심오한 표현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베르사유궁전과 완벽히 조화를 이뤘다는 찬사와 호평을 받았다.
‘만남의 미학’으로 일컬어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우환은 이렇게 설명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점(點)이요, 산다는 것은 선(線)이다. 그러므로 나 또한 점이며 선이다. 내 예술관은 한마디로 무한에 대한 호기심과 그 탐구 과정이다. 무한은 자기로부터 출발해 세상의 다른 존재와 얽히면서 만날 때 나타난다. 나는 타자(他者)와 관계 가운데 자기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 관계가 이루어지는 마당에서 세계를 지각하고 싶다.”
부산시립미술관에 가면 언제든지 이우환 작품을 볼 수 있다. 일본 나오시마에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우환 미술관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생긴 이우환 개인 미술관이다. 이름하여 ‘이우환 공간’. 건물 전체가 그의 작품으로만 채워져 있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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