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게티이미지뱅크인류는 언제부터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또 그렇게 살았을까? 이 세상 모든 것을 둘로 나눠 그 가운데 한곳에 자기를 가두는 방법. 이쪽이냐 저쪽이냐, 너냐 나냐, 틀린 것이냐 맞는 것이냐. 어느 쪽이든 편을 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흑백논리이고 극심한 이념 대결이다.
도무지 상대편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내 편의 주장이나 색깔과 다르면 아예 뭉개 버린다. 독단으로 치달아 중간 지대를 지워버린다. 만약 그 부분에서 어정거리는 자가 있다면 회색분자로 몰아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끼워주지 않는다. 오랫동안 내가 그런 사람으로 살았다.
너의 선명성을 보이라고 윽박지른다. 이것은 참으로 불편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융통성이 사라지고 삶의 형태가 외통수로 간다. 일방통행,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생각과 삶이 경직된다. 독선이 난무한다. 독선이란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아주 위험한 생각이나 행동들이다.
예전에는 그런대로 진실과 거짓이 제자리를 지켜줬고 진실이 더 큰 힘을 지녔다. 몽니를 부리던 거짓도 때로는 슬쩍 자리를 비켜주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가치 판단이 진위(眞僞)에 있는 게 아니라 호오(好惡)에 있는 것 같다.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기 전에 나한테 좋은가 싫은가부터 따진다.
자기한테 좋은 것이면 진실하지 않은 것이라도 가치 있는 것이라 여기는 추세다. 이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사태다. 그러다 보니 사회 현상이나 삶이 온통 흥밋거리 위주로 삐딱하게 흘러간다. 생각이나 삶이 경박으로 기운다. 특히 요즘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관심 있는 일, 재미있는 것만 골라서 본다고 한다.
인터넷에 나도는 여러 게시물을 봐도 그렇다. 게시물 아래에 의견란이 있다. 좋아요, 나빠요, 딱 두 가지의 반응을 묻는다. 제3의 의견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일들로 해서 더욱 우리의 마음은 좁아지고 각박해지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나 삶의 태도를 선호하지 않는다. 미리 예단하지 않는다. 사람을 두고서도 편을 가르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면 누구라도 좋다고 여긴다. 이념에 대해서도 낯가림이 없다. 보수든 진보든 그런 개념보다 사람이 기준이고 사랑과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 뿐이다.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그러할 터.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두고 판단을 미룬 채 살고 있다. 아니, 살고 싶다. 내가 정말로 아는 것이 얼마나 되고 내가 신념하는 것이 과연 옳기나 하단 말인가! 아직도 나는 그 무엇도 확신하지 못한다. 판단 보류.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더듬더듬 나의 인생을 나갈 것이다.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발간했으며 충남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