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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는 인간이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다. 시간이 공평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만큼은 공평하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가끔은 그 공평함이 걸림돌이 되어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모두에게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인데 왜 나는 그 시간을 잘 쓰지 못하고 끌려다니고 삶에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걸까.
나는 다짐도 잘하고 계획을 만드는 순간의 가능성도 좋아한다. 해가 바뀌고 분기가 넘어가고 한 장의 달력을 넘길 때마다 계획을 새롭게 세우고 재정비한다.
2020년부터는 매일 만 보를 걷겠다거나 꾸준히 스트레칭을 하겠다는 계획, 책을 가까이하고 스마트폰 보는 시간을 줄이겠다는 다짐, 자세를 바르게 하고 폭식하지 않고 군것질을 적게 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생활 속 습관까지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의 목록은 길고 상세하다. 그런데 다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계획만 그럴싸하게 세워두고 지키지 못할 때가 많다.
단발성의 일회적 계획인 경우에는 어떻게든 해내는 편인데 오랫동안 지속해야 하는 일들은 금세 흐지부지되곤 한다. 지키지 못할 때는 결심이 흐트러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책하는 마음이 생긴다. 누구도 내게 뭐라 하지 않는데 내 안의 목소리가 실망스러운 말투로 비꼬며 말한다.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이런 일이 한두 번이야?
다른 사람에게 독설을 들어본 이는 그것이 얼마나 아프고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지 잘 안다. 인생을 조금 살고 보니 다른 사람의 말보다 내가 나에게 하는 거침없는 독설을 듣는 일이 더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패를 제일 먼저 감지하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가장 잘 아는 것이 바로 나다. 믿을 수 없고 믿어주지 않고 실망하고 실망하게 만드는 나와 함께 지내는 일은 힘들다. 나쁜 말을 하는 타인과는 관계를 끊을 수 있지만 스스로를 비꼬는 목소리와는 결별하기 어렵다.
어떤 때는 자책과 자괴를 넘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가기도 한다. 내게는 폭식과 군것질의 경우가 그랬는데 그것을 못 지켰다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더 안 좋은 쪽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막 먹어버리자, 있는 거 다 먹어 치우자, 부추기고 몰아붙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작심삼일은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삼 일을 못 간다는 뜻으로, 결심이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된다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작심삼일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삼 일에 한 번씩 결심하면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작심삼일파인 나는 이 우스갯소리가 참 좋았다. 또 결심하면 된다는 건 얼마나 유연한 말인지. 나에게 그 말은 지키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을 보듬어주는 말 같고 인생이 계속되어도 좋다는 의미 같았다.
나는 이 작심삼일의 정신을 삶에서 계속 활용하고 반복하는 중이다. 나는 안 되나봐. 내가 뭘 하겠어. 생긴 대로 살아야지. 자책하는 대신 마음을 다잡고 다시 또 시작한다. 오늘은 못 지켰네. 그렇다면 내일부터 다시. 어떤 것은 지금부터, 저건 월요일부터 꼭. 지금은 못했지만 결국에는 하게 될 나를 믿어주려고 애쓴다.
한 장의 달력을 넘기며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한 달이 가버렸네, 한숨 쉬고 있을 사람들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우리에게 공평한 시간은 다시 펼쳐졌고 해야 할 일들은 또 하고 다시 하면 된다고. 그 가능성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서유미_ 소설가. 2007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두 권의 소설집과 여섯 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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