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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추억 넣은 책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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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아버지라는 존재는 살아가는 동안 나의 정체성과 같았다. 평소에 식사도 잘하고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병원에 가자마자 의식을 잃고 그렇게 갑자기 떠나실 줄은 아무도 몰랐다. 믿을 수 없는 이별에 충격을 받은 나는 지난 1년을 무척이나 힘겹게 보냈다.
살아 계실 때 아버지는 많은 이들과 소통이 어려웠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더 그랬다. 보청기를 해드렸지만 몹시 불편해해서 그냥 빼고 지냈다. 그런 아버지의 유일한 즐거움이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이었다. 아버지 방에는 <논어>나 <중용>, <장자> 같은 책들이 책꽂이에 늘 꽂혀 있었다. 바람 같은 젊은 시절을 보낸 아버지가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도 생각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많은 일을 했지만 원하는 바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래서 가족들과 갈등도 많았다. 어린 시절 나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 많은 일을 겪은 후에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했다. 노년의 아버지 일상은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점심 식사를 하러 집으로 왔다가 다시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커다란 가방을 사고 즐거워하면서 “얘, 이 가방 어떠냐?”라고 내게 물었다. 아마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넣어오는 용도로 구입하신 것 같았다. 아버지의 그 커다란 가방은 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으로 가득했다. 그 책들은 아버지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기도 했을 것이다.
언젠가 본가에 들렀다가 아버지가 자주 다니시는 도서관의 작은 열람실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열람실의 널찍한 책상에 책을 펼쳐놓고 앉아서 읽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버지와 한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었다. 여름이 한창이어서 밖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매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학교 수련회를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보물찾기 시간에 숲에서 아버지와 보물을 찾으며 들었던 그 매미 소리가 생각났다. 그때 우리는 그 숲에서 보물을 찾았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 커다란 가방은 내가 가져왔다. 가방은 아버지가 내게 준 마지막 선물이 됐다. 일단 나는 그 가방을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쓸 생각이다. 아버지와 도서관에서 만났던 그날,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숲에서 찾아 헤매던 그 보물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가방을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을 꺼내보기도 하고 아버지가 내게 준 삶의 가치들을 넣어보기도 할 것이다. 이제 아버지의 유산과 함께 새롭게 살아갈 생각이다.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과 더불어 아버지처럼 힘들게 살아온 이들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정종민 강원 원주시 중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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