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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명저로 읽는 과학세상]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섹스 고고학 <섹스의 진화>

동물 수컷은 대부분 암컷에 비해 육아에 거의 또는 전혀 공헌하지 않는다. 육아를 암컷에게 맡기고 사라져버린다. 또 다른 상대를 찾아 정자를 퍼뜨리기에 바쁘다. 육아를 하면 다른 유전적 이익을 만들 기회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려서 흘레붙은 개를 많이 봤다. 동네 골목을 개 두 마리가 엉덩이를 붙이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막아서 있다. 초등학생인 나는 그때마다 당혹스러웠다. 맞닥뜨리기 싫은 장면. 개들은 왜 저러나? 왜 떨어지지 않는지? 어린 마음에 잘은 모르지만 백주에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쁜 개들이었다. 어떤 아이는 지나가다가 그걸 보면 떨어지라고 개들에게 돌을 던지기도 하고 막대기로 때리기도 했다. 그래도 개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책_섹스의 진화

<섹스의 진화> 저자인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그런 인간의 시선을 ‘종차별주의’라고 말한다. 다이아몬드는 1937년생으로 <제3의 침팬지>, <총, 균, 쇠>를 쓴 미국 UCLA 교수다. <섹스의 진화>는 1997년에 나왔다. 다이아몬드는 개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성 행동의 정상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지와 관련해 인간 중심적 관점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이아몬드는 “인간의 섹스 습성이 다른 3000만 종의 지구상 동물의 관점에서 볼 때 너무나도 비정상적”이라고 한다. 그는 개의 시선으로 인간의 성 행동을 생각해보자고 주문한다. 철수와 영희네 집 애완견이 보는 이들 부부의 성생활 얘길 들어보자고.

 “저 구역질 나는 인간들은 한 달 중 아무 때나 섹스를 하더군. 영희는 말이지 자기가 뻔히 임신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을 알고도, 그러니까 생리 직후 같은 때에도 남편을 꼬이더라고. 철수는 어떻고. 허구한 날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어요. 애를 만들려고 그러는 건지, 헛짓거리를 하려는 건지는 전혀 관심 밖이야. 진짜 황당한 얘기 해줄까? 저 부부는 말이지, 마누라가 임신을 하고 있을 때에도 그 짓을 하더군.(…) 진짜 이상한 건 이거야. 영희와 철수도 그렇고 철수의 부모도 그렇고 다들 문을 닫아걸고 아무도 모르게 섹스를 하지 뭔가. 마치 무슨 죄라도 짓는 것처럼 말이야. 우리 같으면, 자존감을 가진 개라면 누구든 떳떳하게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관계를 가질 텐데 말이야.”

<섹스의 진화>는 섹스의 고고학 책이다. 다이아몬드는 조상의 섹스 관련 신체나 특징, 행동이 변화해왔으며, 그 변화를 진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섹스가 인간이 불을 사용하고, 언어와 기술을 발달시키고, 문자를 발명하는 데 직립 자세나 커다란 뇌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왜 동물은  짝짓기 방식이 서로 다를까?

나는 섹스의 고고학에 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알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모든 게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다이아몬드는 ▲배란(排卵) 여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여성이 거의 항상 섹스를 할 수 있는 상태라는 점 ▲섹스가 쾌락의 원천이라는 점을 인간의 기묘한 성(性)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이 밖에 ▲장기적인 성적 파트너 관계의 유지 ▲부부의 공동 양육 ▲다른 부부와 가까이 지내는 것 ▲여성의 폐경이 인간의 주요 성적 특징이라고 한다.

과학자는 참 대단하다. 내가 보기에는 익숙한 문제를 낯설게 본다. 그 익숙함에 새로운 이해의 빛을 비춘다. 그 결과 인간의 과거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더 드러낸다. 이런 게 좋다.
 
왜 동물은 짝짓기 방식이 서로 다를까? 왜 인간은 일부일처제와 일부다처제를 발달시켰을까? 이게 이 책이 답하고자 하는 질문이다.

영장류의 짝짓기 방식은 비르기타 실렌툴베리(스웨덴 생물학자)와 안데르스 묄레르(덴마크 연구자)가 1993년에 연구했다. 이들은 영장류 68종의 배란 특성과 짝짓기 시스템을 들여다봤다. 조사된 대상 중 절반에 가까운 32종이 인간처럼 배란을 알리는 눈에 띄는 신호가 없었다. 인간과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보노보 포함), 고릴라, 오랑우탄을 살펴봤다. 오랑우탄은 배란 여부가 감춰지고, 고릴라는 약간 눈에 띄는 정도의 신호를 보내며, 침팬지는 드러내놓고 광고한다. 이들의 공통 조상은 약간 눈에 띄는 정도의 배란 신호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고릴라는 선조의 그 특징을 보존한 것이고, 인간과 침팬지는 각기 새로운 특징을 개발한 셈이다.

짝짓기 시스템도 다양하다. 유인원의 공통 조상은 난교로 추정된다. 유인원의 후손인 고릴라와 침팬지, 그리고 인간의 공통 조상은 하렘(일부다처제) 형태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고릴라는 하렘을 그대로 유지하고, 침팬지는 난교를 하며, 인간은 하렘을 유지하나 일부일처제란 새로운 시스템을 발명했다. 짝짓기 시스템에서도 배란 신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침팬지는 정반대 방향으로 진화했다.

<섹스의 진화>는 나온 지 20년 됐다. 나는 최근 연구를 찾아봤다. 영국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옥스퍼드 대학)가 쓴 <멸종하거나 진화하거나>를 보니 “일부일처제는 막다른 골목이었다”고 말한다. 짝짓기 방식에서 일부일처제를 택한 동물은 ‘난교 방식’이나 ‘일부다처제(하렘) 방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2011년 발표한 수잰 슐츠(영국 리버풀 대학)와 키트 오피(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연구에서 드러났다. ‘일부다처제’에서 ‘난교 방식’으로 또는 그 반대로 짝짓기 시스템에 변화가 일어나나 “일부일처 혼은 종착역인 것으로 보인다”고 책에서 밝혔다.

수컷이 암컷에 비해 육아에 많이 기여하지 않는 이유

섹스의 고고학은 왜 이리 복잡할까? 풀리지 않은 문제가 아직 많다. 하지만 그 이유는 비교적 명료한 듯하다. 양성 간 전쟁 때문이라고 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수컷과 암컷은 유전적 이익이 상충하며, 진화 역사에서 둘은 그 접점을 찾아서 ‘장미의 전쟁’을 해왔다. 다이아몬드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성적 습성은 다른 면에서는 독특하지만 양성(兩性)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평범하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다이아몬드는 “유전적 관점에서 남성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이 배우자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 역도 성립한다는 것은 진실이다. 이 잔인한 사실은 인간 불행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고 말한다.

자연선택이 많은 자손을 남기는 수컷과 암컷을 선호한다면 자손을 많이 남기기 위한 암수의 전략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은 배우자 간 갈등을 불러온다. 남녀의 이익, 즉 유전적 이익이 다른 건 이렇다. 새끼를 잉태시키는 초기 투자부터 차이가 난다. 우선 정자와 난자의 크기가 다르다. 난자가 정자보다 훨씬 크다. 여자는 임신 동안에 체내 영양분 등 막대한 투자를 한다. 사람의 경우 무려 10개월이다. 수유도 여자의 몫이다. 투자가 많으면 쉽게 버리지 못한다. 반면 남자가 투자한 건 “고작 성관계를 하는 데 들인 몇 분의 시간과 1밀리리터의 정액뿐”이다.

그 결과, 포유류뿐만 아니라 동물 수컷은 대부분 암컷에 비해 육아에 거의 또는 전혀 공헌하지 않는다. 육아를 암컷에게 맡기고 사라져버린다. 또 다른 상대를 찾아 정자를 퍼뜨리기에 바쁘다. 육아를 하면 다른 유전적 이익을 만들 기회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혼한 아버지도 자녀 부양을 책임지는” 인간의 태도는 “동물 세계, 특히 포유류 관점에서는 정도(定道)를 벗어났다.”

한 가지, 인간이 왜 숨어서 섹스하나에 대한 설명을 다이아몬드는 들려주지 않는다. 다른 책을 보니 다른 남자의 질투를 불러일으킬 행위를 드러내놓고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럴듯하다.

또 한 가지. 개는 섹스를 왜 그리 오래 했을까 하는 궁금함이 남아 있다. 그 모범 답안은 다른 책(매트 리들리가 쓴 <붉은 여왕>)에서 봤다. 다른 수컷의 유전자가 자신이 교미한 암컷에게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매트 리들리는 이렇게 말한다. “수캐나 호주산 토끼나 쥐 수컷은 교미 후에 자신의 생식기를 암컷의 몸에 끼워놓고 잠시 동안 암컷과 떨어지지 않는다. 이로써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미하지 못하게 한다. 인간의 경우 남성은 불완전한 가미카제식 정자를 많이 만들어 뒤에 올 수 있는 다른 남성 정자를 여성의 질 입구에서 막아버리는 일종의 마개 역할을 하게 한다.”

오묘한 번식 경쟁이 아닐 수 없다. 과학 공부로 오래된 궁금증을 풀었다.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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