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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담넘어 음악듣기] 영웅들과 작별하기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경험할 수 없게 돼버린 짙푸른 하늘과 상쾌한 바람이 기분 좋게 풍경을 감싸주던 5월 마지막 주말, 한 뮤지션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로큰롤과 컨트리, 블루스 색채를 바탕으로 ‘흙내’ 가득한 전형적인 미국식 록 사운드를 들려준 서던 록 그룹 올먼 브라더스 밴드(Allman Brothers Band)의 보컬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 그레그 올먼(Gregg Allman)의 부고였다. 향년 69세, 사인은 간암으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그는 46년 전 스물넷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오토바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던 친형인 천재 기타리스트 두에인 올먼(Duane Allman)이 잠들어 있는 조지아 주 메이컨의 로즈힐 묘지에 나란히 묻혔다.

록 음악이 세상을 지배하던 때 음악깨나 들었다고 자부하는 이들이라면 올먼 브라더스 밴드가 1971년 발표한 걸작 라이브 앨범 ‘At Fillmore East’를 들으며 현란한 잼 세션, 그 탁월한 연주의 향연에 흠뻑 빠져들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오랜만에 그 LP를 꺼내 들었다. 가장 좋아했던 ‘In Memory Of Elizabeth Reed’를 포함해 80분 가까운 짜릿한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버렸다.

올먼 브라더스 밴드

▶ 올먼 브라더스 밴드가 1971년 발표한 걸작 라이브 앨범 ‘At Fillmore East’. 최근 이 밴드의 보컬 그레그 올먼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RECORDMECCA

시애틀 4인방 중 에디 베더만 남다

마치 진지하게 의식을 치르듯, 음반을 죽 늘어놓고 친근한 커버 아트를 새삼 꼼꼼히 뜯어본다든지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보고 유튜브에서 공연 영상 한두 개를 찾아보는 일은 세상을 떠난 아티스트에 대한 내 나름의 추모 방식이 됐다. 안타까운 건 그럴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전주에는 공연을 마친 후 호텔 방에서 목을 매 스스로 세상을 등진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의 거칠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온 방을 채웠다.

199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 록과 그런지가 세계적인 열광을 얻고 있을 때, 그 중심에서 너바나(Nirvana), 펄 잼(Pearl Jam),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와 더불어 소위 ‘시애틀 사운드’를 대표한 그룹 사운드가든(Soundgarden), 그리고 LA 출신 랩 메탈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세 멤버와 함께한 슈퍼 그룹 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의 리드 싱어 크리스 코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1990년대에 뜨거운 청춘을 보낸 수많은 이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줬다. 이로써 그는 머리에 산탄총을 쏴 목숨을 끊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과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앨리스 인 체인스의 레인 스테일리(Layne Stayley)의 뒤를 따르게 됐다. 1990년대에 속칭 ‘시애틀 4인방’으로 불리며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네 밴드의 프론트맨 중 이제 펄 잼의 에디 베더(Eddie Vedder)만이 유일하게 살아 있는 인물이다.

이렇게 올해도 걸출한 음악인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킹 크림슨(King Crimson)과 유라이어 힙(Uriah Heep), 아시아(Asia) 등을 거친 뛰어난 보컬리스트 존 웨튼(John Wetton)을 비롯해 목소리를 악기처럼 다뤘던 혁신적인 재즈/R&B 싱어 알 재로(Al Jarreau), 예쁘고 앳된 외모와 달콤한 목소리로 우리나라에서 특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꽃미남 가수 토미 페이지(Tommy Page), 로큰롤의 개척자이자 록 음악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위대한 전설 척 베리(Chuck Berry), 블루스 록으로 시작해 뉴웨이브 사운드로 정점을 찍었던 제이 가일스 밴드(The J. Geils Band)의 리더 제이 가일스(J. Geils, 송대관의 히트곡 ‘해 뜰 날’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 ‘Centerfold’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짐), 복잡한 코드 진행과 정교한 솔로, 멋들어진 기교를 선보이며 재즈 퓨전 및 프로그레시브 록계에서 손꼽히는 테크니션으로 평가된 기타리스트 앨런 홀즈워스(Allan Holdsworth) 등이 올해 죽음을 맞았다. 천수를 누린 이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하거나 암 등의 질병, 심장마비 등 사망 원인도 다양하다.

유난히 많은 거물 뮤지션이 떠난 2016년

죽음은 늘 낯설다. 누군가의 부고를 접할 때마다 슬픔과 허망함, 두려움, 회한 등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채 마음을 휘젓는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내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결국 인생의 가치란 나의 행복과 나를 둘러싼 타인의 행복에 있다는 깨달음에 이러이러하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개인적 친분과 무관한 유명인의 죽음이 내 안에 일으키는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오랫동안 좋아했던 뮤지션 존 웨튼의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 내 가슴속에서 일어난 감정과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사뭇 익숙해져 있는 것만 같아 깜짝 놀랐다. 어느새 앞서 언급한 ‘의식’을 준비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당혹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최근 몇 년간 여러 아티스트를 보내며 자연스레 이에 대한 심리적 기제가 생겨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원히 젊음을 간직할 것만 같았던 그들이 어느덧 노인이 되어 병마와 싸우는구나, 그렇게 옛 사람들이 하나둘 생을 다하고 본격적으로 시대가 바뀌어 완전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구나, 더불어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지난해 초에 하게 됐다.

왠지 모르게 ‘죽음’이라는 말과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던, 쇠하지 않는 젊음과 진보적 예술가의 아이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죽음은 꽤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연이은 거장들의 부고는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지난 12월 말, CNN에서는 ‘2016년: 음악이 죽은 해’라는 제목 아래 2016년 사망한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내보냈다. 정말이지 작년에는 유독 많은 거물급 뮤지션이 세상을 떠났다. 보위를 시작으로 이글스(Eagles)의 글렌 프레이(Glenn Frey),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모리스 화이트(Maurice White), 에머슨 레이크 앤드 파머(Emerson, Lake & Palmer)의 키스 에머슨(Keith Emerson)과 그레그 레이크(Greg Lake), 그리고 프린스(Prince)와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지난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를 ‘마지막 크리스마스’로 만들어버린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에 이르기까지, 1년간 숱한 영웅들과 작별을 해야 했다.

그건 정말로 ‘이별’의 감정과 가깝다. 물론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자리해온 이들, 저 먼 나라에서 나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아온 이들이 사라졌다 해서 내가 그들의 음악을 즐기는 데 지장을 받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가 이 영웅 부재의 시대에 내 감성과 정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얼마 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은 음악과 함께 내 추억의 일부를 이루고 있던, 때로는 같은 행성에서 동시대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주기도 했던 나의 영웅들이었다.

떠나가는 그들을 보내는 나만의 의식을 통해, 찬란히 빛나던 재능이 녹아든 매혹적인 음악은 마법처럼 나를 감싸고 그들의 흔적은 더욱 견고하고 뚜렷하게 가슴 한편에 새겨진다. 하지만 내 영웅들에게 가장 바라는 건, 끊임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새롭거나 혁신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상을 뜨기 직전, 전성 시절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백조의 노래’를 남긴 데이비드 보위(‘Blackstar’)나 레너드 코헨(‘You Want It Darker’)처럼 말이다.


김경진 |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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