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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조선 궁궐·왕릉 이야기] 정조와 효명세자가 사랑했던 창덕궁 후원

창덕궁 후원은 언덕과 물길, 숲 등의 자연물을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고 거기에 정자 등 휴식 공간을 세워 아름다움을 더한 정원입니다. 자연 친화형으로 우리 전통 정원의 전형이기도 하지요. 후원은 한때 ‘비밀의 정원’이란 뜻의 비원(秘苑)이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비원은 일제강점기 동안 관청의 이름으로 사용됐습니다. 원래 이름은 궁궐의 뒤편에 있어서 후원(後苑), 궁궐 북쪽에 있어서 북원(北苑), 임금의 허락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해서 이름 붙인 금원(禁苑) 등입니다.

부용지

▶ 창덕궁 후원 부용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의 우주론을 따른 조화로운 형태다 ⓒ 윤상구

후원 입구에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부용지(芙蓉池)라는 연못이 나옵니다. 부용지는 네모난 인공 연못으로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방지원도(方池圓島)입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론에서 비롯된 조화로운 형태이지요.

후원을 가장 애용했던 사람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와 그 손자인 효명세자입니다. 정조는 1795년 을묘원행(乙卯園幸)을 마치고 신하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부용지 부근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을묘원행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顯隆園 : 지금의 융릉)에 다녀온 행차를 말합니다. 6000명이 함께했던 대대적인 이 행차 때 아버지 묘에 참배를 하고 화성 행궁에서 어머니의 회갑 잔치를 성대하게 베풀었지요.
 
부용정은 연못 남쪽에 있는 정자입니다. 부용정은 누각의 일부가 물 위에 서 있어서 마치 정자가 물에 두 다리를 담그고 있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부용정의 지붕은 아(亞) 자형으로 처마가 사방으로 트여 있습니다. 

주합루

▶ 부용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주합루다. ‘주합’은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뜻.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우주가 돌아가는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 담겼다. ⓒ 윤상구

부용지 주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주합루(宙合樓)입니다. ‘주합’은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정조는 우주가 돌아가는 순리에 따라 정치를 한다면 백성을 다스리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조는 그런 생각을 담아 건물 이름을 짓고 현판 글씨도 스스로 썼지요. 주합루 아래층은 규장각(奎章閣)입니다. 규장각은 역대 임금의 글씨 등 기념할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건물입니다. 왕실 도서관 격인 주합루와 규장각은 정조의 인재 양성 산실로서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주합루로 들어가려면 어수문(魚水門)을 통과해야 합니다. 어수문은 3개의 문으로 이뤄져 있는데 가운데는 임금의 문이고 양옆은 신하들이 드나드는 문입니다. 어수문은 임금은 물이고 신하는 물고기인데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닌 이름이지요. 부용정 쪽 연못 가장자리 벽에도 그런 메시지를 담은 물고기 모양이 역력하게 돋을새김되어 있습니다.
주합루를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의 건물은 서향각(書香閣)입니다. ‘서향’은 책의 향기를 말합니다. 서향각은 규장각에 보관된 어진이나 임금의 문적을 내다 말리는 곳입니다. 책에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바람을 쏘이고 손질하는 행사는 넉 달에 한 번씩 실시했습니다.

영화당

▶ (왼쪽부터) 2영화당. 임금들은 영화당 앞 춘당대에서 과거 시험이나 종친의 잔치 등 야외 행사를 열고 지켜보곤 했다. 하나의 돌을 문 모양으로 깎아 만들었다는 불로문. 불로문 안으로 들어가면 임금의 휴식처인 애련지가있다. ⓒ 윤상구

주합루 아래쪽에 있는 영화당(映花堂) 앞에는 춘당대(春塘臺)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대(臺)’는 높고 평평한 곳을 말하지요. 춘당대를 쌓기 위해 그 앞쪽의 땅을 팠는데 그때 판 구덩이에 물을 채운 것이 창경궁의 춘당지(春塘池)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창경궁의 담이 가로막혀 있어 널찍한 춘당대의 모습을 가늠할 수 없지요. 임금들은 춘당대에서 과거 시험이나 종친의 잔치 등 야외 행사를 베풀고 영화당에서 그 행사를 지켜보곤 했습니다. 춘당대에서는 임금이 활쏘기 연습을 하거나 기우제를 열기도 했습니다.

영화당을 등지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금마문(金馬門)이 나옵니다. 금마문 안쪽에는 단청도 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 2채가 북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의두합(倚斗閤)과 운경거(韻磬居)입니다. 의두합에는 기오헌(寄傲軒)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이 집들의 용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것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조용히 독서하기 위해 지은 집이라는 것입니다.

효명세자는 4세 때 세자로 책봉된 이래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맞서기 역부족이라고 생각한 순조는 효명세자가 19세 되던 해에 대리청정을 명했습니다. 효명세자는 정사를 시작하자마자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고 정치적으로 소외당했던 어진 인재를 널리 등용했습니다. 또 옥사를 신중히 처리하고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푸는 등 성군으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효명세자는 임금이 되지 못하고 2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답니다. 그의 요절은 기울어가던 조선이 스스로의 힘으로 회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의두합 뒤쪽에는 언덕 위로 이어진 계단이 있습니다. 그 계단 끝의 문을 나가면 주합루로 이어집니다. 효명세자는 할아버지인 정조와 같이 강력한 왕권으로 개혁정치를 펼치는 임금이 되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계단을 통해 할아버지의 의지가 담긴 주합루에 자주 오르곤 했답니다.

애련정

▶ 애련정은 임금과 그 가족의 휴식처로 이용되었다. 애련은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 윤상구

금마문으로 다시 나와 담장을 따라가면 불로문(不老門)이 있습니다. 불로문은 하나의 돌을 ‘’  모양으로 깎아 만든 문입니다. 불로문 안에는 애련지(愛蓮池)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애련’은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이지요. 이 연못 안쪽에 있는 애련정(愛蓮亭) 부근은 임금과 그 가족의 조용한 휴식처로 안성맞춤인 공간입니다.


황인희 |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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