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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담넘어 음악듣기] LP는 어떻게 젊은이들을 사로잡는가 ②

최근 일본 ‘소니뮤직’은 29년 만에 LP 공장을 가동하겠다고 밝혔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LP 생산 라인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장뮤직앤픽처스’라는 신생 회사가 국내 유일한 LP 제작 업체로서 몇 년 전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세계적인 품질의 LP 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다양한 작품을 기획 중이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LP는 다시 중요한 음악 매체가 됐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ST.쿤스트할레에서 LP판을 고르고 있는 음악 애호가들

▶ 서울 강남구 논현동 ST.쿤스트할레에서 LP판을 고르고 있는 음악 애호가들 ⓒ뉴시스

우리나라에서 ‘LP 붐’이라 할 만한 현상이 확연히 두드러지기 시작한 때는 미국과 유럽에서 LP 리바이벌의 열기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던 2012년 즈음이었다. 그 무렵 이미 이전부터 활발하게 진행돼오던 1970~1980년대 가요 앨범 재발매는 CD만이 아니라 LP로 확장되고 있었고, 김포에 새로운 LP 공장이 설립돼 가동을 시작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고 있던 가요 명반·희귀반 가격에 눈물을 머금어야 했던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소식이었다. 물론 LP 부활에 옛날 음반만이 역할을 한 건 아니다. ‘장기하와 얼굴들’과 ‘2AM’ 등이 젊은 층의 관심을 끌었지만 당시 최고의 화제는 ‘지드래곤’이었다. 최근 ‘음원’이 아닌 음원과 뮤직비디오 등을 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를 담은 USB 앨범을 발표해 이런저런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지드래곤은 2013년 자신의 두 번째 앨범을 LP로 선보였다. 포스터와 뮤직비디오 샷을 담은 사진, 배지 등 풍성한 내용물을 포함한 이 패키지는 8888장 한정반으로 발매됐고 출시 하루 만에 매진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물론 그 수요층은 충성도 높은 ‘팬덤’이었다.

LP를 들고 다니는 홍대 앞 학생들

그 이듬해 발매됐던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의 LP는 현재 수십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컬렉터스 아이템’이 됐다. 이런 경우처럼 한정된 공급량을 훨씬 웃도는 수요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가격이 높아지는 앨범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때로는 음악 애호가와 팬, 옛 추억을 반추하며 LP에서 아련한 그리움을 찾는 이들의 열망과 몇몇 ‘업자’들의 농간이 절묘하게 결합돼 터무니없는 가격이 형성되는 기형적인 현상이 펼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재기를 하든 ‘되팔이’(한정반을 여러 장 구매해 품절이 되면 곧바로 커뮤니티나 중고 거래 사이트 등을 통해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든, 기본적으로 수요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예전처럼 경제력이 있는 중년 남성이 회현동 중고 매장을 뒤지거나 경매로 매물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10대 학생부터 30대 직장인 여성까지 넓어진 구매층이 인터넷을 통해, 그리고 하나둘씩 늘어가는 음반 매장에서 LP를 구매하는 것이다.

20년 전, 강남이나 압구정, 명동 거리를 지나며 또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타워레코드나 신나라레코드, 파워스테이션 등 매장 로고가 새겨진 비닐 백을 들고 가는 이들을 보는 건 일상의 풍경이었다. 비록 비닐 백에 로고는 없지만 LP를 들고 다니는 학생들을 요즘 홍대 지역에서 종종 보게 된다. 마치 늘 그랬던 것처럼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그 모습은 우리 곁에 있어온 ‘음악’이라는 예술이 참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파생되며 다채로운 즐거움을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LP의 세계적인 유행과 문화를 향유하는 젊은 층의 가치관 변화, 그리고 직접 보고 만지고 듣고 고를 수 있는 레코드 숍의 증가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의 ‘레코드 스토어 데이(Record Store Day)’처럼 이런 풍경에 많은 영향을 준 행사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서울 레코드 페어(Record & CD Fair In Seoul)’다.

슬로 라이프의 행복을 전하는 LP

서울 레코드 페어는 2011년 늦은 가을, 서울 논현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현재 SJ.쿤스트할레)에서 처음 시작한 이래 지난 6월 셋째 주 주말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에서 일곱 번째 행사를 마쳤다. 이 행사를 만들고 주도한 이들은 오랫동안 국내 ‘음악의 신’에서 일해온, 그 자신이 음반 컬렉터이기도 한 ‘선수’들로 각기 독립 음반 레이블, 레코드 숍 등을 운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레코드 스토어 데이를 참고해 말 그대로 다양한 음반이 전시되고 판매되는 장을 마련해 디지털 음원이 아닌 음반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을 목표로 행사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중소 음반 매장과 판매업자, 인디 레이블 등이 참여하고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음악 축제의 분위기였으나 점차 ‘음반 마켓’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낯설던 이 행사가 회를 거듭하면서 ‘핫한’ 이벤트로 자리하게 된 데에는 LP 자체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다양한 음반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에 역시 ‘한정반’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레코드 페어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국내 앨범의 매력은 지난 몇 해 동안 숱한 젊은이들을 레코드 페어로 이끌었다.

2013년 제3회 페어에서 이상은, 미선이, 서울전자음악단 등 국내 대중음악 명반으로 손꼽히는 여러 작품을 포함한 6장의 LP가 첫 공식 한정반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이들이 열광을 보냈으나 레코드의 품질 결함으로 3장이 리콜되는 상황이 발생됐다. 새롭게 설립된 국내 LP 공장의 미숙함이 원인이었다. 김포에 있던 그 공장은 이 사건을 비롯해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 조용필 음반의 불량 등 몇몇 치명적인 리콜을 계기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고 결국 2014년 안타깝게도 폐업을 하고 말았다. 쉽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은 레코드 페어는 제4회 때 노브레인, 언니네 이발관, DJ소울스케이프 등 양질의 LP 5장을 선보였고, 제대로 된 한정반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로 장소를 옮긴 2016년에는 한정반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몰려든 젊은이들이 장사진을 이룬 진풍경이 펼쳐졌다. 원더걸스가 신곡 ‘아름다운 그대에게’를 레코드 페어 한정반 7인치(18cm) 싱글 레코드로 처음 공개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그런데 그 정도의 뜨거운 이슈가 없었던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빠른 번호표를 발급 받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줄지어 있었고 행사 시작 시간인 11시에는 이미 1000번대에 육박하는 번호표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지난 2014년 제4회 레코드 페어부터 개인 판매자로 줄곧 참여해왔다. 보유하고 있던 LP와 CD, 블루레이, DVD 등을 가지고 나가는데, 집 안의 공간 확보 및 용돈 벌이의 목적 외에 그곳에 오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도 페어에 참여하게 된 이유다. 레코드 페어에 오는 이들의 동선과 그들이 머무르는 곳을 보면 재미있다. 40대 이상의 남성, 즉 어린 시절부터 LP로 음악을 듣으며 록과 재즈와 클래식에 빠져들었던 이들의 타겟은 추억 속의 작품들, 명반이나 녹음이 잘된 레퍼런스급 앨범, 그리고 보다 싸게 살 수 있는 희귀반 등이다. 그들에게 페어 한정반이나 컬러 LP 같은 것은 흥미로운 양념 같은 존재다. 좀 더 젊은 층은 ‘힙한’ 작품들을 찾는다. 2000년대 이후의 인디, 힙합, 일렉트로닉 기반의 음악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음악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패션’과 무관하지 않다. 한정반을 사기 위해 번호표를 손에 쥔 채 뙤약볕 아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들은 대부분 20대부터 30대 초반이었고 그중 70%는 여성이었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이고 ‘예뻐서’ 또는 ‘멋있어서’, 그리고 ‘한정반이라서’ 산다고 해맑게 말했다.

최근 일본 ‘소니뮤직’은 29년 만에 LP 공장을 가동하겠다고 밝혔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LP 생산 라인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장뮤직앤픽처스’라는 신생 회사가 국내 유일한 LP 제작 업체로서 몇 년 전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세계적인 품질의 LP 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다양한 작품을 기획 중이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LP는 다시 중요한 음악 매체가 됐다. 세대별로 생각하는 가치가 다를 순 있어도 가로세로 12인치(30cm) 크기의 재킷과 까만 플라스틱 판이 지니는 가치는 이 시대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하기에 충분하다. 빨라져만 가는 첨단의 디지털 시대에 그 특유의 예술적 ‘물성’으로 슬로 라이프의 행복을 전하는 LP는 조금씩 조금씩 감성 풍부한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김경진 |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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