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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담넘어 음악듣기] 2017년, 음악을 듣는다는 것

집에 오니 택배 보관실에 우편물이 도착해 있다. 20년 가까이 봐왔지만 여전히 가슴 설레고 기분 좋아지는 미소, 아마존(www.amazon.com)의 친숙한 로고가 인쇄된 상자다. 해야 할 모든 일을 끝내고 아이까지 재우고 나서야 상자를 마주한다. 마치 보물상자를 열 듯 한껏 부푼 마음으로 개봉하니 차곡차곡 쌓인 CD 여남은 장이 나를 반긴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미고스(Migos), 줄리 번(Julie Byrne), 자라 라르손(Zara Larsson), 빅 션(Big Sean), 스푼(Spoon), 켈라니(Kehlani) 등, 최근 썩 마음에 들었던 해외 신보 중 선별한 작품이다. 힙합부터 팝, 포크, 인디 록에 이르는 여러 음악 장르가 한데 모여 있으니 즐거움이 더하다.

어떤 것부터 들을까? 잠시 행복한 고민을 하다, 오늘처럼 상쾌한 봄날 저녁에 어울릴 듯한 줄리 번의 앨범을 골랐다. 비닐을 벗기고 CD를 플레이어에 넣은 후 리모컨의 재생 버튼을 누르니 맑고 투명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이어 아련한 안개를 머금은 듯 신비로운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려퍼진다. 더없이 멋진 밤이 이렇게 시작된다.

킹 크림슨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앨범 자켓

▶ 킹 크림슨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앨범 자켓

나는 아직도 CD를 산다. 구매 목록에는 가끔 LP가 포함되지만, 그리고 어쩌다 턴테이블에 올리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CD처럼 자주 꺼내 듣게 되지는 않는다. 아날로그(실물의 존재, 정서)와 디지털(기록 방식, 손쉬운 복제)의 경계에 자리한 콤팩트디스크라는 매체는 내게 음악 듣기의 종착역과 같다. 즉 음악 감상 방식과 그 형태가 아무리 진화하고 변한다 해도 평생 내 방에서 CD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주변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스트리밍의 시대에 CD를 구매해 전용 플레이어로 듣는 행위 자체를 굉장한 마니아의 습성 정도로 생각한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나 역시 CD를 듣는 날보다는 PC에 리핑해놓은 파일을 재생하거나 음악 사이트의 스트리밍으로 듣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편의성과 효율성이 거부할 수 없는 가치라 해도 때론 물리적 매체가 지닌 매혹 앞에서 힘을 잃고 만다. 적어도 음악을, 다른 무언가에 종속돼 기능적 효용만 지닌 대상 또는 일상의 장식물이나 소모품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음반은 흡사 사진첩과 같다

온라인 구매가 일상화된 이후 달라지긴 했지만, 음반은 흡사 사진첩과 같다. 거기에는 소릿골 또는 데이터 기록 면에 담긴 음악과 별개로 그 음반이 내게 온 시간과 공간, 상황과 감정 등이 묻어 있다. 앨범을 꺼내 드는 순간 해리 포터의 사진처럼 잠자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 꿈틀대는 것이다.

예컨대 영국의 록 밴드 록시 뮤직(Roxy Music)이 1975년 발표한 걸작 앨범 ‘Siren’의 커버에서 고혹적인 눈빛을 보내는 모델 제리 홀(Jerry Hall)의 모습은 나를 폭우가 쏟아지던 1989년 어느 여름날로 데려간다. 음악감상실에서 처음 듣고 그 짜릿함에 넋을 잃고는 투덜대던 여자친구를 끌고 바로 레코드 가게로 달려갔던 기억. 또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제네시스(Genesis)의 1971년 앨범 ‘Nursery Cryme’을 사 들고 돌아가던 버스 안에서 만난 초등학교 동창 녀석이 알고 보니 그 밴드의 광 팬. 신나게 얘기하다 몇 정거장을 지나치는 바람에 걸어야 했던 그 가을밤의 별빛 가득한 골목길은 또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던가.

내가 본격적으로 음반을 사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다. 그때 우리 집에는 턴테이블(소위 ‘전축’)이 없었다. 아들이 ‘음악 나부랭이’를 듣고 있는 걸 부모님이 늘 못마땅해하셨기 때문에 어학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로 만족해야 했다. 학교 앞 레코드 가게에서 LP를 사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대학 가면 사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씀 이후 틈나는 대로 LP를 사 모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나자 약속이 미뤄졌다. 들을 수 없는 LP의 재킷만 잡아먹을 듯 바라보면서 만지작거리고, 라이너노트를 외우다시피 반복해 읽고 들리지 않는 선율과 연주를 상상하며 보낸 시간이 1년여. 그 실망과 허탈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데뷔작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을 꺼내 보는데 거대한 붉은 얼굴의 크게 벌린 입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다음 날 매장으로 달려가서 직원의 추천을 받아 ‘월부’로 보급형 오디오 세트를 계약했다. 당시(1989년) 5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으니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어떻게든 메울 작정이었다. 집에 제품이 배달된 후 아버지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하지만 워낙 철딱서니가 없었던 터라, 눈물 나도록 혼이 나면서도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간 모은 100여 장의 LP 중 어떤 걸 제일 먼저 들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살짝 떨리는 손으로 턴테이블에 올린 킹 크림슨의 앨범에서 ‘21st Century Schizoid Man’의 강렬한 기타 리프가 흘러나오던 그날 밤의 짜릿함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용돈의 거의 전부와 숱한 책값, 학원비, 옷값 등이 LP로 바뀌어 방에 쌓였다. 내 방은 2층에 있었는데 저녁때 LP를 들고 들어가다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듣는 게 싫어서, 담을 넘어 2층 방 창문 아래에 음반을 살짝 갖다놓고 다시 밖으로 나와 초인종을 누르곤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담을 타고 한 손에 LP가 담긴 비닐백을 든 채 막 뛰어내리려던 참이었다. 하필이면 그때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나오시다 담벼락 위의 시커먼 그림자를 보고야 말았다. 어둠 속에서 도둑으로 오인받아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고… 며칠을 쥐죽은 듯 얌전히 지낸 적도 있다.

멈출 줄 알았던 컬렉션, 다시 상향 그래프를 그리다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 LP 생산이 중단되고 CD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내 컬렉션은 LP에서 CD로 바뀌었지만, 그것이 내게 주는 감흥은 변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학창 시절 대중음악을 좋아하던 여러 친구와 한때 음악깨나 들었던 많은 사람은 이렇게 얘기한다. “역시 그때 음악이 최고”라고, “요즘 음악은 별로고 들을 것도 없다”고. 며칠 전에도 어느 LP 바에서 지겹도록 비슷한 전형적인 ‘꼰대 멘트’를 들었다. 그런 말의 의미를 풀어보면 이렇다. “나는 내가 적극적으로 음악을 찾아 듣던 때의 옛날 음악만 알아. 최근 음악은 잘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뻔하지. 감히 어느 누가 레전드를 능가할 수 있겠냐고.”

모든 것은 시대와 함께 변화한다. 시대라는 건 항상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며 꾸준히 움직여 나아간다. 과거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본질적인 부분은 늘 통하게 마련이다. 지금은 음악 자체가 중심에 자리하는 시대가 아니고, 남녀노소 누구나 아는 거물급 스타나 영웅이 나오는 시대도 아니다.

그런데 국내외를 막론하고 헤아릴 수 없는 기성, 신인 아티스트들이 놀라울 정도로 멋진 음악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매주, 매월, 매년 쌓여가는 다양한 장르의 탁월한 앨범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문화예술의 사이클은 돌고 돌아 다시 창의력과 숨겨진 재능이 거대한 폭발을 이루는 시기에 들어섰다. 오래전의 현란한 기타 리프와 폭발하는 리듬, 서사적이거나 화사한 키보드 연주 대신 컨템포러리의 옷을 입고 보다 세련되고 확장된 실험을 펼친다. 록의 시대가 가고 힙합과 R&B, 일렉트로니카가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음악은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모습으로 짙은 감동을 전한다. 덕분에 어느 시점에서 자연스레 멈추게 될 줄 알았던 내 음반 컬렉션은 오히려 다시 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올해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도어스(Doors),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등 ‘전설’들이 데뷔 앨범을 발표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2017년에 음악을 듣는다는 건,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때만큼이나 멋지고 화려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꺼이 받아들여 즐길 준비만 됐다면 보다 쉽고 편하게 말이다.


김경진 |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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