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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조선 궁궐·왕릉 이야기] 정조의 왕권강화 의지,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

창덕궁 후원에 가면 단청을 하지 않아 민간의 집과 같은 연경당(演慶堂)이 있습니다. 연경당을 왜 지었는지는 그 설이 분분합니다.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의 40세 기념 잔치 장소로, 또는 민간의 삶을 체험하고자 지었다는 설이 있지요. 그러나 세도정치 때문에 백성들이 먹고 살기 힘들던 당시, 성군의 자질을 보이던 효명세자가 부모의 잔치를 위해 그런 큰 건물을 지었다는 것은 믿기지 않습니다. 또 민간의 집은 99칸을 넘을 수 없는데 연경당은 120칸이나 되기 때문에 민간 체험이라는 추측도 신빙성이 없어 보입니다.

승재정

▶연경당 뒷문 끝 언덕을 넘으면 반도지 연못과 정자들이 어우러져 있다. 정자들 중 하나인 승재정. ⓒ윤상구

연경당

▶소박한 모습의 연경당은 사랑채와 안채, 서재, 농수정으로 구성돼 있다. 더위를 피했다는 정자 농수정 그리고 순서대로 서재로 쓰인 선향재, 안채.ⓒ윤상구

여러 설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것은 순조가 효명세자에게 선위한 뒤에 살 집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순조는 효명세자를 전면에 내세워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막아보려 했습니다. 두 사람이 협공으로 세도정치에 대항하려 했던 것이지요. 상왕이 궁궐 안에 함께 있으면 아들 왕이 마음대로 뜻을 펼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순조는 후원에 지은 연경당에 머물며 아들 효명세자를 지원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소박한 모습의 연경당은 사랑채와 안채, 서재인 선향재(善香齋), 더위를 피하는 정자 농수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선향재는 벽돌로 지은 중국풍의 집으로, 맞배지붕의 앞면에는 동판을 얹은 차양을 달았고 다시 그 안에 창호지 문으로 된 차양을 달았습니다. 창호지 문 차양에는 도르래가 연결되어 있어 차양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게 하였지요. 서향(西向) 집이라 여름철 따가운 오후 햇살을 막기 위해 차양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관람정

▶관람정은 궁궐에서 유일한 마루가 부채꼴 모양으로 된 정자이다.ⓒ윤상구

연경당 뒷문으로 나가 언덕을 넘으면 연못 반도지와 4개의 정자들이 있습니다. ‘반도지(半島池)’는 그 모양이 한반도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이 구역에는 승재정(勝在亭), 폄우사(?愚?), 존덕정(尊德亭), 관람정(觀覽亭) 등의 정자가 있습니다. 관람정은 궁궐에서는 유일한 부채꼴 정자이고, 존덕정은 지붕이 육각형이고 처마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처마를 받치는 기둥을 따로 세운 독특한 모양의 정자입니다. 안쪽 천장에는 궁궐의 정전처럼 보개천장으로 만들었고 그 안은 청룡과 황룡으로 장식했습니다.

존덕정

▶존덕정은 22대 임금 정조가 특히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스스로 쓴 글을 나무판에 새겨 정자 안에 걸어두었다.ⓒ윤상구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는 특히 존덕정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정조는 친히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글을 나무판에 새겨 정자 안에 걸어두었지요. 세상의 모든 시냇물이 품고 있는 밝은 달의 주인공이라는 뜻을 가진 ‘만천명월주인옹’은 정조가 재위 22년 되던 해에 스스로 지은 호입니다. 이 글은 그 호에 대해 설명하는 글로서, “수많은 개울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지만 달은 오직 하나다. 나는 달이고 너희는 개울이니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에 합당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왕권 강화와 개혁을 거침없이 밀고 나가겠다는 정조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느끼게 하는 글이지요.

존덕정 옆을 지나 고갯마루에 오르면 취규정(聚奎亭)이 서 있고 그 앞쪽에 옥류천(玉流川)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습니다. 계곡 안에도 취한정(翠寒亭), 농산정(籠山亭),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청의정(淸?亭) 등의 정자가 있습니다.

농산정에는 마루방은 물론 온돌방과 작은 부엌도 딸려 있습니다. 임금이 후원에 행차했다가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면 머물 수 있도록 만든 시설입니다. 1795년 2월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에 참배하고 화성 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를 했습니다. 을묘원행(乙卯園行)이라 불리는 이 행차를 앞두고 먼 길에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가마꾼들의 예행연습을 후원에서 실시했습니다. 정조는 연습에 직접 참여하고 농산정에 이르러서는 행차를 수행한 신하들에게 음식 대접도 했지요.

옥류천

▶소요정 밑으로 흐르는 옥류천은 북쪽의 북악산과 동쪽의 응봉에서 내려오는 물과 어정을 파서 나오는 물이 합해진 작은 개울이다.ⓒ윤상구

소요정 밑으로 흐르는 옥류천은 북쪽의 북악산과 동쪽의 응봉에서 내려오는 물과 어정을 파서 나오는 물이 합해진 작은 개울입니다. 어정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가 소요암인데 그 앞쪽에 둥그런 홈을 파서 물이 돌아서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어놓았지요. 이것은 인조 때 조성했는데, 소요암 아래에는 인조의 친필로 ‘玉流川(옥류천)’이라 쓰여 있습니다. 또 소요암의 윗부분에는 숙종이 쓴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후원의 가장 구석에 있는 정자는 청의정(淸?亭)입니다. ‘청의’는 맑은 잔물결이라는 뜻입니다. 청의정은 궁궐 안에서 유일하게 초가지붕으로 된 정자입니다. 청의정의 지붕은 둥근 초가지만 기둥은 네 개고 천장은 팔각입니다. 사각형의 기단 위에 둥근 지붕의 집을 올린 것으로 보아 여기에도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청의정 앞에는 벼를 심은 논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농사짓는 노고를 임금이 체험해보기 위해 만든 일종의 실습장이지요. 청의정 지붕에 얹은 볏짚도 이 논에서 수확한 벼에서 얻은 것입니다. 청의정의 겉은 소박해 보이지만 내부 천장은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들보를 중심으로 화려한 단청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황인희 |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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