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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담넘어 음악듣기] LP는 어떻게 젊은이들을 사로잡는가 ①

최근 LP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레코드 스토어 데이(Record Store Day; RSD)’라는 ‘꼬리표’를 보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년 4월 셋째 주 토요일에 개최되는 이 연례 행사는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됐는데 이제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등 10개국 이상으로 확대돼 그야말로 세계적인 독립 음반 매장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음악 비즈니스의 장(場)인 미뎀(MIDEM)이나 여느 박람회와 다른 점은, 이 행사가 특정한 한 장소에서 개최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 1400개, 세계 수천 개에 이르는 각각의 참여 매장 자체가 이벤트 공간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날 하루를 위해 각 매장은 차별화된 음반의 특별 할인 판매를 비롯해 자신들만의 음악 상품을 무기로 골수 음악 팬을 유혹한다. 공식 대사로 선정된 스타 뮤지션을 비롯한 수많은 유명 아티스트들이 매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재미난 이벤트나 공연과 전시, 음식 등 여러 즐길 거리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레코드 스토어 데이 한정반’이다.

레코드스토어데이

ⓒ레코드스토어데이

컬렉터의 구미를 당기는 특수성과 희소성

2008년 1회 행사 때 알이엠(R.E.M.)과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 등 약 10종의 한정반이 발매돼 여러 컬렉터들을 즐겁게 한 이래 그 수는 매년 늘어났다. 올해 RSD는 무려 500종이 넘는 타이틀을 선보였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도어스(Doors), 예스(Yes),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모터헤드(Motorhead), 유투(U2), 프린스(Prince), 스팅(Sting), 아트 오브 노이즈(Art Of Noise), 아이언 앤 와인(Iron And Wine), 로라 말링(Laura Marling), 워 온 드럭스(War On Drugs), 빌 에반스(Bill Evans), 자코 파스토리우스(Jaco Pastorius) 등 다양한 장르와 시대를 아우르는 여러 아티스트들의 음반이었다. 신곡과 미공개, 라이브, 앨범 미수록 음원 등을 비롯한 여러 작품이 7인치 및 12인치 싱글과 10인치, 컬러 LP, 픽처 디스크 등의 형태로 소개됐다. 도를 넘은 상업성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많은 이가 환호했다. 아티스트의 디스코그래피에 포함되는 정식 발매작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음악인의 새로운 또는 숨겨졌던 작품을 레코드로 소유한다는 즐거움, 그리고 ‘행사 기념반’이라는 특수성과 희소성은 레코드 컬렉터의 구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음반은 적게는 300장에서 많게는 수천 장이 생산된다. 지금도 이베이에서는 100달러에서 500~600달러까지 가격이 뛴 수많은 RSD 한정반이 거래되고 있다).

이토록 다채로운 한정반 발매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은 이 행사의 위상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2013년 6회 레코드 스토어 데이가 있었던 4월 셋째 주, 닐슨 사운드스캔(Nielsen SoundScan; 빌보드 차트에 음반 판매 자료를 제공하는 음악 및 뮤직비디오 판매량 조사 업체)은 그 주에 24만 4000장의 LP가 팔림으로써 1991년 회사 설립 이래 최대 주간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당시 막 불어닥친 세계적인 LP 리바이벌 붐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역시 RSD와 그 한정반의 효과였다. 많은 전문가가 RSD가 LP 붐에 일조했다고 인정하며 상업적.사업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숱한 음반사와 레이블의 적극적 행사 참여와 후원, 음반 발매는 이에 대한 방증이다. 전 세계 LP 판매량은 2000년을 기점으로 급격한 하향세를 기록하다 2007년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해 2012년에는 1996년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에서는 매년 큰 성장 폭을 보이고 있는데, 2013년 2억 1370만 달러 수익을 거두며 전체 음반 매출의 9.1%를 차지한 미국 내 LP 시장 규모는 2014년 3억 1890만 달러로 14.8%, 2015년 4억 2060만 달러로 22.1%를 기록했고, 2016년에는 1200만 장이 넘는 4억 3510만 달러(약 5000억 원)로 전체 음반 시장의 27% 수준까지 올랐다(미국 음반산업협회; RIAA  자료 기준).

음악 외적인 부가가치, 일종의 패션 같은 것

물론 이는 2015년 11억 5880만 달러에서 2016년 22억 5830만 달러로 두 배 가까이 성장한 월정액 스트리밍 규모에 비할 바는 아니다. 편리한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게 보편화됐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LP라는 매체에 대한 관심 또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의미다. 아니, 엄밀히 얘기해서 LP를 구매하는 이들이 온전히 ‘음악 감상’을 위해 이 크고 불편한 물건을 사는 건 아니다. 물론 여전히 초판(first pressing)을 찾아 헤매고 모노 녹음과 그 사운드의 질감에 민감해하는 골수 애호가들에게 LP란 디지털 매체가 줄 수 없는 감흥의 원천 역할을 하지만, 많은 신세대 소비자에게 LP는 오히려 아티스트와 그 음악에 관련된 상품(merchandise) 개념에 더 가까이 있다. 많은 재발매 또는 신보 LP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자. 거기엔 ‘180그램 중량반’이라는 걸 알리고 이를 통해 좋은 음질이라는 걸 강조함과 동시에 ‘MP3 다운로드 쿠폰 동봉’이라는 모순적 상황이 펼쳐져 있다. 이는 레코드 구매자 역시 디지털로 음악 듣기에 익숙해져 있으며 2010년대에 LP란 ‘음악을 담은 매체’라는 본질적 가치 외에 음악 외적인 부가가치를 지니는 상품으로서 의미를 지닌다는 걸 의미한다. 그건 일종의 ‘패션’과 같다.

흔히 접할 수 있는 ‘따뜻한 아날로그적 감성’이라는 표현이 있다. LP를 홍보하기 위해 자주 쓰이는 말인데, 추억과 판타지를 버무려 감성을 건드리고자 하는 더도 덜도 아닌 홍보 문구다. LP가 CD보다 음질이 좋다는 환상은 말 그대로 무의미해졌다. 오래된 그 논쟁은 음악을 담은 그릇(매체)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녹음됐으며 레코딩과 믹싱, 마스터링(커팅)의 상태와 조화, 그리고 하이파이 시스템에 따른 문제로 귀결되기에 더 나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게 정답이다. 젊은이들이 LP를 대하는 태도는 과거의 것과 사뭇 다르다. 그들은 아날로그로 녹음됐나 디지털로 녹음됐나 또는 CD와 같은 디지털 마스터를 썼나 하는 따위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들은 음반에 잔뜩 먼지가 끼고 그루브에서 바늘이 튀고 카트리지를 정기적으로 교체할 정도로 턴테이블을 혹사시키지도 않는다. 같은 음반이라도 일반적인 검은색 LP가 아니라 빨갛고 노랗고 투명하거나 알록달록한 컬러 LP를 선호한다. 재료의 특성상 색이 들어간 컬러 또는 픽처 LP가 검은색보다 음질이 떨어진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컬러 바이닐이나 픽처 디스크의 숫자는 급격하게 늘어만 가고 있다. 올해의 레코드 스토어 데이 한정반 중에도 컬러,픽처 LP 수십 종이 포함된다.

음악을 듣는 방식의 측면에서 LP는 지금 같은 시대에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매체다. 음악을 듣기 위한 과정이나 그걸 다루는 방식, 보관 등 여러 불편함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거 LP로 음악을 들었던 세대는 물론 10대 청소년부터 30대 초반 직장인까지 ‘불편함’과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LP 구매층이 늘고 있다. 지난해 8월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LP 구매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그중 50%가 지난달에 산 LP를 듣지 않았고 41%가 집에 턴테이블이 있지만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으며 7%는 아예 플레이어가 없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적극적 음악 감상이 아닌 소유와 시각적 만족을 위한 구매자일수록 새롭게 발매되는 음반을 좋아한다. 모든 이가 듣고 즐기는 음악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나 흔히 누리지 않는 ‘힙한’ 문화생활의 향유, 이것이 2017년 현재 어떤 이들이 LP에 매혹을 느끼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계속)


김경진 |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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